영화 <상류사회>를 보고 나서
오랜만의 '야한 영화 일기' 매거진을 쓰니 기분이 간질간질합니다. 제 영화 후기에는 뭐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는 미쟝센이나 프레임 등 그런 미적 구도 같은 건 죄송한 말씀이지만, 없습니다. 대신 제가 영화를 보며 강렬하게 잔상에 남아 있는 메시지에 집중해서 글을 씁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 제가 영화를 보는 방식이랑 연결이 되는데요.... 극장에서 막 개봉한 영화를 보기보다 철 지난 영화를 다운 받아 봅니다. 다운로드해서 보면 좋은 건, 역시 내가 임의로 재생 건너뛰기를 시전할 수 있단 거 아니겠어요?! 드문드문 보면서 내용의 대략을 파악한 뒤, 다시 보면 좀 더 감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캐치하는 데 용이하단 것이 저만의 생각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본 영화 중 오늘 소개할 것은 '상류사회'입니다.
작년 추석 즈음 개봉했던 영화로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혹평을 받으며 일찍 극장가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영화 플롯상의 허술함이나 자극적 내용은 일단 여기서는 차치해 두겠습니다. 오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재벌가와 정계로 대변되는 상류층에 입성하기 위한 중산층 부부의 노력 그리고 후반부에 재벌가에 흠집을 내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기꺼이 드러내는 여주인공을 보며 느낀 '씁쓸함'입니다. 이 감정은 얼마 전 제가 썼던 가해자/피해자 글과 맥락이 이어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속 재벌들의 모습은 겉으로만 보면 고귀함,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영화를 더 보면 그들의 이면이 얼마나 추악한지는 금세 드러납니다. 제가 위에 쓴 글 속에서도 나오죠? 역사적으로 가해자였던 이들이 대한민국의 격변기 속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거나 모범시민 코스프레로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처단의 시기를 놓칩니다. 그 가해자들은 빠르게 자신들의 성벽을 공고히 쌓고, 가해자로 비난받아야 할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어 버린 거죠. 모든 재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근현대사를 조금만 공부해 봐도 현재 재벌과 정계의 조상들이 가해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과 한 통속이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습니다. 오히려 이용만 당하고 버려질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인지한 부부는 반격을 준비합니다. 반격의 형태는 소위 말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민낯을 먼저 까고 그 민낯 못지않게 너희 역시 추한 민낯을 갖고 있지 않느냐며 비난합니다. 소위 말해 김두한이 국회에 똥물을 투척했던 것처럼 너나 나나 다 더러우니 고고한 척 하지 말자고 얘기하는 격입니다. 아마 감독은 이 지점에서 관객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하길 바랐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관객 중 한 명인 저는 카타르시스보단 슬펐습니다.
특히 이 장면이 영화의 후반부라는 것이 더더욱 속상했습니다. 결국 재벌이나 정계는 주인공들의 발악에 살짝 눈살을 찌푸릴 뿐, 그 다음 날에는 아마도 똑같이 일상을 보낼 게 뻔합니다. 갖고 있는 부로 똑같이 호의호식하며 살아가겠죠? 뭐 레미제라블처럼 그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을 순 없더라도 뭔가 권선징악적 요소가 더 나왔더라면 앞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이 어느 정도 상쇄되었을 거란 생각도 듭니다.
친하게 지내는 카페 사장님과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을 곧잘 하곤 합니다. 대화가 한창 불을 뿜다가도 제가 이런 말을 하며 브레이크를 겁니다. "우선 우리가 이 시스템의 꼭지점에 서자."고 말이죠. 지금의 기득권층도 이전에는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변혁하겠다고 분기탱천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세상을 컨트롤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바뀌어도 같은 실수는 반복됩니다. 왜일까요? 그 기득권의 맛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역시 현재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이런 전투적 마인드일 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지금 마음은 그렇습니다. 꼭 최고의 자리에 선 뒤, 내 손으로 그 체제를 부숴 버리겠노라고. 영화 '상류 사회'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사이다 감정을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기적을 맛보고 싶노라 생각하며 해당 영화의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