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한 느낌을 내주는 손에게 감사를-.
무언가에 홀린 듯 물건을 3일 연속 흘리고 다녔다. 고작 3번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어난 자리도 다시 볼 정도로 꼼꼼하고도 꼼꼼한 내겐 다소 충격적인 일이다.
그저께 아침부터 시작됐다.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버스가 곧 온다기에 서둘렀다. 뛰어 가고 있는데 갑자기 손바닥이 휑한 느낌이었다. 거금 '만원'을 흘린 것이다. 뒤돌아 걸어 온 길을 쭉 스캔했다. 초록색 종이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을 살펴보며 길을 떠나는 중년 아저씨를 의심했다. 혹시 돈 못 보셨냐고 물을까 했지만 시간도 없었고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헛.. 2층 남의 집 계단 앞에 고이 떨어져 있었다. 휴, 일단 살았다.
어제 오후 8시쯤. 집으로 돌아가려고 지하철을 타려는데 또 손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아차! 우산을 옷 가게에 두고 왔다. 피팅을 해보느라 장우산을 벽에 기대놓은걸 깜빡했던 것이다. 허겁지겁 뛰었다. 하늘색 장우산은 착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줬다.
대미의 오늘자 분실품일 뻔 했던 물건. 법원에 들리고 나오는 길. 버거킹 쿠폰이 있어 간만에 버거를 먹기로 했다. 버거킹을 눈 앞에 두고 신호등을 건넜는데 또 손이 휑한 느낌. 제발.. 제발 아니길 스스로에게 속삭이며 가방을 다 뒤져봤지만 교통카드가 없었다. 왠지 그곳의 책상일 것 같다며 거기로 냅다 뛰었다. 때는 6시 5분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직원들이 퇴근하면 내일부터 일요일까지 긴 연휴동안 버스카드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카드에는 남자친구와의 사진이 새겨져 있어 남자친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줬다. 3일 연속 꼼꼼한 내가 흘리고 다니는게 스스로 실망스러웠다. 갑자기 뭐에 홀린 것일까? 요즘 머릿 속에 다른 생각들로 가득차서 육체 총 보존 질량이 한도 초과해 손으로 빠져나가는 것일까?
그나마 잃어버린 장소를 떠올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어디서 흘렸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빠트리면 손이 휑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이든, 나갈 때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든, 해야할 일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몸이 기억하는 이 신기한 현상에 그나마 감사했다.
내 남자친구도 꽤나 잘 물건을 흘린다. 내가 그에게 이렇게 물들어가나 싶은 생각에 미소가 머금어지기도 했다. 앞으로는 좀 더 주의하며 다녀야겠다. 이 글을 바로 그저께 체크카드를 잃어버려 재발급을 받은 남자친구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