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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라 말하는 순간 깨어진다.

단정짓는 것은 한정시키는 것

우리가 자주 하는 말,      



‘걱정마! 우리 사이에 절대 그럴 일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절대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영원할 것 같은 사이도 이 되고,

죽어서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이해가 가게 되고

있을 수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느새 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해 ‘절대’라는 단어를 붙여

‘난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을 강조하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 내가 정해놓은 틀에 맞춰 사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분위기에 취해 내가 아닌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했던 행동을 내가 하고 있기도 하고,

내가 쫓던 이상이 아닌 현실에 쫓겨 아닌 걸 알면서도 끌려가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라는 단어로 무엇인가를 단정 짓는 순간,

오히려 ‘한정’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란 단어를 쓰는 건 

그걸 지키고 싶은 의지와 소신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의지와 소신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내가 나와의 약속을 하는 순간, 

무의식의 세계에선 그걸 지키고자 하는 무언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내 의지와 소신과 반대되는 상황이 다가오면 오히려 나를 옥죄고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단정 짓기보다 그냥 물 흐르듯 내버려두는 것이 

모든 것에 있어 더 자유롭고 지속성 있고, 편안한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너와나 = OO사이 

이런 정해진 틀 말고, 아무 사이 아닌 것 같은

그냥 뭐라 말하기 힘든 그런 사이가 더 오래가듯,

서로에게 우린 OO사이니까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라는 기대감도 버리고,

그저 서로에게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때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알아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한 관계’가 아닐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내버려둬요. 

지금의 내가 다른 내가 되어도 

지금의 당신이 다른 당신이 되어도 괜찮도록.’       





친절한 세인씨의 세인생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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