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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주 엄마 Soul mate, Elieen

하늘에 계신 아이린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ㅣSomething Old, Something New, Something Blue     


호주에 있을 때 내가 호주 엄마라 부르던 분이 있었다.

이름은 Elieen, 아버지의 오랜 비즈니스 파트너인 Brian 아저씨의 와이프였다.

나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의 딸로서 아버지 대신 집에 방문 했는데,

앵무새가 지저귀는 정원에 오븐에서 갓 구워나온 각종 구운 야채와,

치즈가 듬뿍 올려진 포테이토,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스테이크의 맛과 멋에 매료되어,

'이게 진짜 호주구나!' 하며

너무 맛있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었다.     

그런데 식사 후 디저트로 나온 초코 무스 케이크는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듯!

어마어마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먹어달라 아우성거렸고,

결국 난 청바지 단추를 한 개 풀러낸 채로 접시를 비워대며, 먹을 것 앞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 이후로 늘 갈 때마다 산처럼 음식을 내어주셔서 늘 한 끼를 굶고 작정하고 집에 방문했다.;)          

시드니에 아는 이라곤 브라이언 아저씨네 가족 뿐이었기에 나는 종종 엄마 집밥이 그립거나, (영어를 못해도 이해해주는)사람과 말하고 싶을 때면 아저씨네 집을 찾았다.

뵐 때마다 Elieen은 영어가 서툰 내게 아이를 가르치듯 틀린 발음과 문장을 고쳐주시는 훌륭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조금씩 시드니 생활이 익숙해지고

영어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차차 Elieen 아줌마와 둘이 데이트도 종종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한국 사람과 똑같이 아줌마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자식 걱정이었다.

철없이 행동하는 자식에 속이 상해 때론 눈물을 보이시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난 진심을 다해 공감하고 함께 울고 위로했다.

아줌마는 진담인듯 농담인듯 나이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도 넌 오래본 친구같다며 나를 특히 아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이언 부부는 유럽여행을 가셨고,

긴 여행 일정이라 한동안 못뵙겠다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빠르게 귀국하셨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병원에 계시단 이야기를 듣고 

놀라 달려가보니,

아이린 아줌마가 환자복을 입고 병실 침대에 앉아계셨다.     

난 아줌마가 돌아오시면 선물하겠다고 

미리 사뒀던 예쁜 핸드백을 들고 병문안을 갔었고, 다 나으시면 이 가방들고 같이 놀러가자며 선물을 전해드렸는데,

선물을 받는 아줌마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 보였고, 아저씨 또한 표정이 굳어지셨다.     

하루이틀 뒤 알게 된 사실인데,

아줌마의 병명은 뇌종양이었고...

수술로도 회복이 불가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상황이었다.

철없는 내 말과 행동이 얼마나 큰 상처를 드렸을까 생각하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자주 찾아뵈야지 하면서도 겁이 났다.

아줌마의 큰딸이 가끔 소식을 전해주었는데, 아줌마가 점점 기억을 잃고 있고, 

5살 아이와 같이 떼를 쓰고, 소리지르고 울고 있다고 했다.     

아줌마 곁에 조금이나마 기억에 남아 있을 때 뵈러가겠다 결심하고 병원에 다시 찾아가

터져나오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침을 꿀꺽 삼키고 병실 문을 열고 아줌마를 향해 애써 웃으며 이름을 불렀는데,

아줌마는 날 보자마자 너무나 환하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날 맞이해주셨다.     

'아.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아서...'     

그런데 그순간 곁에 있던 브라이언 아저씨와 큰 딸이 크게 놀라며,

'Amazing!'

'Miracle!' 을 외쳤다.     

이유인즉, 

상태가 악화되어

아이린이

표정도 잃고,

언어도 잃어

늘 무표정에 단 한마디도 못하고, 

가족 중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날 보고 너무나 기적같이 활짝 웃었다는 거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가 아줌마의 손을 잡자,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지작 만지작 

꼼지락 꼼지락 거리며

내게 말을 하듯 의사 표현을 했고,

내게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또렷이 시선을 맞추셨다.

...

..

.

그리고 그게 아이린과의 마지막 인사였다.          

그후 난 아이린 아줌마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극도의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빈몸으로 한국으로 도망나왔다.     

하루는 꿈 속에서 아이린 아줌마를 만났는데,

너무 환하고 예쁜 미소를 지으시며,

앵무새 소리가 나던 그 정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해주셨던 그 요리를 해주시며 많이 먹으라고 접시 한가득 요리를 얹어주셨다.

오늘도 벨트 풀고 먹겠다며 까르르 농담을 주고 받고 너무나 행복한 만찬을 즐겼다.

아줌마의 꿈을 꾼 날은 내 생일이었는데,

그 꿈이 너무 생생해 깨어나서도 아줌마 생각이 나 가슴 한켠이 쓰려왔다.     

그 다음 날인가?

브라이언 아저씨에게 메일이 한통 왔다.

아줌마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그것도 내 생일날 말이다.     

그날 꿈에서 본 아이린은 꿈이 아니라

진짜 나를 찾아온 거였다.

그 생각을 하니 울음이 마구 터져나왔다.

좀 더 길게 꿈꿀껄,

더 많이 이야기 나누고,

사랑한다 말할걸...     

급히 호주에 살고있던 알고지내던 분께 부탁해 장례식에 내대신 참석해 꽃을 전해달라 부탁했다.     

아이린의 장례식 추모사에서 그녀가 너무나 아끼던 한국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참 많이 그리워했다...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뒤 미안함에 죄책감에 또 많이 울고야 말았다.          





4월 27일은 나의 생일이자,

호주엄마 아이린의 기일이다.     

매년 생일날 나는 호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오늘이네요. 아이린이 그리워요.'     

답변으론 늘 이렇게 답이 온다.     

'아이린도 그럴꺼야.

잊지않고 기억해줘서 고마워.

생일 축하해 세인.'     

살아생전 아이린에게 받은 손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Something New,

Something Old,

Something Blue.     

결혼할 때 새 것과 오래된 것 그리고 푸른색을 몸에 지니면 행복하게 잘 산다며,

본인이 결혼할 때 했던 진주 목걸이를 두딸이 아닌 내게 선물하며 나의 행복을 빌어줬다.     

유품이 되어버린 진주목걸이는 

내내 소중히 간직하다 

첫째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린을 대신해 진주 목걸이를 전해주었고,

이젠 내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          

진심이 통하고 사랑하는 사이의 사람은

영혼까지 연결된다는 것을 

아이린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잊지 않도록

평생 기억할 수 있는 나의 생일날 

하늘나라에 간 그녀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사랑받고

아낌받은 아이린과의 기억은 나의 자존감의 씨앗이다.     

낳아준 엄마가 아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진심이 오갈 수 있는 사이...

영혼이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하는 소울메이트...

하늘나라에 있는 나의 호주엄마 아이린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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