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롤러코스터

제대 후, 다시 시작되는 세상과 서울 본사 발령

by 신현창

Chapter 12 – 서울대공원 로러코스터


제대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입은 사복이 어쩐지 낯설었다. 푸른색 제복을 벗어던졌지만, 마음 한켠엔 여전히 제식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자유를 얻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하루가 길게 늘어지고, 시간은 공허했다. 친구들은 대부분 타 지역 근무하는 탓에 함께 어울릴 사람도 없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볼까 생각해봤지만, 막상 실행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복직신고는 제대 후 한 달 이내면 된다고 했지만, 그 일을 미루고 며칠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고 싶었다. 그때 문득, 어릴 적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법대에 다니는, 현수의 자랑 같은 친구였다.


복직신고도 할 겸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서울은 늘 멀게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그날은 마음이 가벼웠다. 복직신고는 싱겁게 끝났다. 전역증 한 장, 희망 근무지를 적는 서류 한 장—고작 십여분이면 되는 절차였다. 그렇게 간단히 끝이 나버리자, 어쩐지 허무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는 실감이 조금은 들었다.


그는 대림동의 한 햄버그 가게로 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성당까지 함께 다녔던 친구였다. 공부면 공부, 운동이면 운동—무엇을 해도 늘 1등이던 아이. “서울대 법대 다니는 친구가 있다”는 말이 보통 엄친아 라고 하지. 현수에게는 늘 은근한 자랑거리였다. 햄버그를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두 사람은, 오래된 시간의 틈을 아무렇지 않게 메워갔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었던 서울대공원으로 출발을 한다. 자기가 ‘네가 서울 온 김에 내가 구경시켜줄게.”
서울대공원은 생각보다 컸다. 대구에서 자라온 현수에게 그곳은 거의 또 다른 세계였다. 입구에서 ‘빅3’ 티켓을 끊었다. 세 가지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자유이용권이었다. 우리는 미리 3가지를 먼저 정해 놓았다.


첫 번째는 롤러코스터였다. 천천히 오르던 열차가 정점에 닿자마자, 눈앞이 무너지는 듯 떨어졌다. 바람이 귀를 때렸고, 심장은 몸보다 먼저 아래로 쏟아졌다. 현수는 그 짜릿한 공포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으로는 바이킹, 마지막으로 급류타기. 세 번의 비명을 지르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렸다. 둘은 근처 주막에서 파전에 막걸리를 시켰다. “제대 기념이니까 괜찮지?” 친구의 말에 현수는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막걸리의 톡 쏘는 맛이 혀끝에 남고, 그 안에서 묘한 해방감이 피어올랐다.


그날 밤, 친구의 집에 머물렀다. 친구 어머니는 현수를 반갑게 맞았다. “아이고, 현수 왔구나! 제대했다며, 고생 많았다.” 정갈하게 차려진 밥상 앞에서 현수는 ‘서울의 집밥’이라솔직히 우리집이랑 같지만 뭔가가 다른 그 따뜻한 식탁 위의 공기 속에서, 어딘가 잊고 지냈던 세상의 냄새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왔다. 평범한 일요일 오후,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수야, 전보 왔다!” 하얀 봉투에는 파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복직 통보서 – 서울 본사 발령.’ 순간 손끝이 떨렸다. 기대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출근일까지 고작 사흘. 마음의 준비도, 짐을 꾸릴 시간도 없었다. 서울 본사 발령이라니—초급 출신에게는 꿈같은 자리였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었지만, 막상 현실이 되자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기흥의 직원숙소가 있다는 간단한 안내 표시와 함께. 낯선 도시, 낯선 숙소, 낯선 시작이었다. 그날 밤, 현수는 책상 위에 전보를 올려두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TV에서 보던 여의도 광장이 문득 떠올랐다. 늘 그 넓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가 저기 서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이제 그곳이 바로 자신의 출근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전율이 일었다.


‘그래, 이제 진짜 시작이야.’ 현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창밖에서 바람이 스며들고, 멀리 기차의 기적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마치 “이제 출발해도 좋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짐을 싸기 시작했다. 마음 한켠의 긴장을 꾹 눌러 담았다.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시간이었다.


서울 본사 발령 통보를 받은 후, 현수는 사흘 동안 짐을 꾸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낯선 도시, 낯선 숙소, 그리고 낯선 사람들. 그 모든 것이 그를 설레게도, 두렵게도 했다.

기흥 직원숙소의 문을 처음 열던 날, 좁은 복도 끝에서 희미한 형광등이 깜빡이고 있었다. 방 안에는 새 비누 냄새와 철제 책상의 차가운 감촉이 섞여 있었다.
그 냄새가 이상하게도 군대 내무반을 떠올리게 했다.


훗날 알게 된 일이지만, 그때의 서울 발령은 특별함 때문이 아니라 단순한 인력 사정 때문이었다. 신입사원 대부분이 그랬듯, 현수도 그저 정해진 흐름 속에 있었을 뿐이다


그는 창문을 열었다. 바깥의 공기는 싸늘했고, 멀리 고속도로의 불빛이 흐르고 있었다.
그 불빛 사이로, ‘이제 진짜 사회로 나왔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현수는 다림질한 셔츠를 입고 출근길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태평로의 유리 빌딩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 안에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했다.


“그래, 지금 부터는 혼자서다. 내가 내 이름으로 살아보는거다.”

이전 12화바다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