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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Sep 01. 2020

세상에나, 세상에 이런 게 다 있다 야~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바짝 쳐들었다.

해외는 고사하고 국내 여행도 어렵겠구나.

6개월? 1년? 2년? 언제쯤이면 다시 자유롭게 세상 구경을 떠날 수 있을까?

내년에는 어디 시원한 곳에 가서 올해를 추억하며 옛이야기로 한 여름을 날 수 있으려나...


옴짝달싹을 못하는 갑갑한 마음이 뿌연 안갯속에 갇힌 듯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가 하늘나라로 소풍을 가시고 그렇게 후회한 것이 '미룸'이었는데...


돌대가리


그새 또 까먹고 '잠깐만, 잠깐만'하다가 후회를 한 사발 들이키고 앉았다.

그 '잠깐만'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찰나의 순간들이 스치는데...

강여사가 나이 들고 쇠약해진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


예전... 아빠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강여사는 꼼짝없이 아빠 붙박이 신세가 되었었다.

일하러 나간 자식들 퇴근 후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아빠를 돌보느라 여간 진을 뺀 게 아니었다.

그것도 모자라 2012년 겨울 문턱에서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우리 가족은 패닉 상태가 되었고

6개월 가까이 동생의 재활을 지켜보며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을 버텨야 했다.


동생이 퇴원을 하고 가족 모두 안정을 찾으며 한 숨 돌릴  때쯤, 동생이 여행 제안을 했다. 다친 자식을 지켜보며 수백 수만 번은 더 가슴이 녹아내렸을 엄마를 모시고 누나들이 여행을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미처 엄마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빠와 동생 걱정에 내켜하지 않는 강여사를 엄마가 답답한 마음을 틔우고 숨을 좀 쉬어야 마음의 치유가 되고, 그래야 아빠도 더 오래오래 간호할 힘이 생기고 동생도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설득했다.  


2013년 7월. 우리 세 모녀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강여사 67년 인생 첫 해외여행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치유의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했고 그 여행을 온전히 만끽하며 충분히 숨을 쉬기로 했다.


2013년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강여사


7박 9일간 강행군을 필요로 하는 바쁜 일정에도 강여사는 지치지 않았다.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이탈리아의 유명 도시를 돌 때마다 신기해했고 신나 했다.

같은 여행팀에 민폐라도 끼치면 안 된다고 최고 연장자였던 강여사는 항상 제일 먼저 선두에서 걸었고

가이드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며 하나하나 기억에 아로새겼다.


같은 여행팀에서는 모두 강여사를 '어머니'라 부르며 자신들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우리 세 모녀를 부러워하며 효녀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언니와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효녀'라니 부끄러운 단어였다.  엄마와 여행을 왔다고 '효녀'면 세상 많은 효녀 효자가 울겠다 싶었다.  

‘효녀 되기 쉬운 거구나’

동생 제안이 아니었다면 생각지도 못했을 여행이 아니었던가. 소녀처럼 호기심에 들떠 다른 세상에 신기해하고 감탄하는 강여사를 보니 더욱 부끄럽고 미안했다.


세상에나. 세상에 이런 게 다 있다 야~


어머나,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이거 봐라 이거 봐. 와~


강여사에게는 모든 게 너무 멋지고, 너무 예쁘고,  너무 신기한 것 투성이었다.


이탈리아, 강여사의 첫 다른 세상


나는 세상의 중심에서 나만 외치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나만 다른 세상이 궁금한 줄 알았다.

숱하게 여행을 다니면서도 엄마를 떠올리지 못했다. 저 먼 곳에서 통화를 하면서도 나의 안전만을 걱정하는 강여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한 번도 같이 오면 좋았겠다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는 여기 이 곳에서 변함없이 내 걱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참 이기적이었다.


엄마도 한 번쯤 훌훌 털고 다 벗어던지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을 텐데...

다른 세상이 한 번쯤 궁금했을 텐데...

내가 이곳저곳 얘기할 때마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을 텐데...

세상의 중심에서 정말이지 외쳐 보고 싶었을 텐데...

 

왜 그런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을까.

강여사가 열심히 걷고 열심히 듣고 마냥 신기해하는 만큼 가슴에 미안함이 차올랐다.

마음이 울컹 거려 눈물이 왈칵했던 순간이 여행 내내 찾아왔다.


최소 2년에 한 번은 강여사와 여행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짧게라도 틈틈이 강여사에게 가슴을 트이고 숨 쉴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 후 싱가포르, 일본을 다녀왔다.


그러나 2년에 한 번 여행을 계획하는 사이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를 기리고 추억하는 사이 시간은

또 다시 흘렀고 강여사는 나이가 더 들었으며 기력은 그만큼 더 떨어졌다.


평소 다리가 아팠던 강여사는 이제 비행기 타는 것을 겁내 한다. 해외여행의 즐거움보다 비행기에서 고통스러울 다리 때문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비행시간부터 물었다.  내 여유만 생각하다 강여사의 몸이 늙고 쇠약해지는 걸 또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돌대가리'


안 되겠다 싶어 또 미루다 후회하지 말자고 생각한 끝에 올해 국내 여행을 계획했다.

전주, 경주, 제주도... 예약도 미리 해놓고 계획도 짜두었었다.

이젠 내 여유가 우선순위가 아니라 강여사의 마음과 몸 상태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란 놈이 연초부터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이다.  모든 예약을 취소하고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좀 움직일만하다 생각하니 또다시 기승을 부리는 이 못된 녀석 때문에 올해 계획은 요원해지고 있다.


작년에 미루었던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된다.  멈추니 후회되는 미룬 세상 구경이다.

이 썩을 놈의 전염병 말고라도 언제든 다른 일이 생길 수 있는 건데..

왜 한 치 앞을 보는 줄 착각했을까.  


가끔 지인들이 강여사와 떠나는 여행을 부러워한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돈을 모아 부모님과 여행을 가거나 보내드리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열변을 토한다.  당신이 돈을 모으는 사이 부모님은 여행 갈 기력도 없이 쇠약해진다고. 그러니 모을 능력이 있다면 할부라도 끊어서 지금 당장 다녀오고 나중에 돈을 갚으라고.  정말 마음이 있다면 순서를 바꾸라고 전한다.  '풍수지탄(風樹之歎)'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소식이 들리던 날 강여사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이탈리아 여행이 첫 해외여행이었잖아.  그때 좋았어?"


"좋았지.  너무 좋았지."


"뭐가 제일 좋았어?"


"뭐가? 글쎄.  난 모든 게 다 좋았는데. 왜 있잖아. 소풍 가기 전날 아이 마음 같은 거. 너무 설레서 갈 때는 비행기 멀미 나는 것도 모르고 갔잖아. 그때 생각하면 진짜 너~~ 무 좋았어."


"그래도 제일 기억나거나 좋았던 이유가 있지 않아?"


"몰라 그런 거.  그냥 다 기억나. 그냥 다 좋았어.  뭐라고 이유가 없는데..."


PS. 기도

두 손을 모아 본다.  뭐라고 이유 없이 그냥 다 기억나는 좋은 기분을 강여사에게 꼭 다시 선사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그 날이 오면 당장 떠나리라.  땅 치고 후회하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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