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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Jan 23. 2024

"걱정했잖아"

이 나이 먹은 딸을?

집에 있는 날은 살이 푹푹 찌는 소리가 보인다.

날로 중앙집중형 배가 되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의지박약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다.


추운 겨울에는 별일있이 나가기도 여간 귀찮은 게 아닌데,

하물며 운동을 하러 나가기란 말해 뭐 하겠나

하지만 볼록 솟은 배에 둔해진 움직임에는 별 수 없다.


뛰자.

당장이라도 마라톤 경기를 뛸 것처럼 단디 복장을 챙기고

밖으로 나서려는데 강여사가 주무신다.  


강여사가 깨실라 조심조심하며 문을 닫고 나섰다.

얼굴로 스며드는 찬 공기가 상쾌하긴 하지만

영락없이 감기로 반응하는 부실한 몸을 생각해 공기를 완전 차단했다.


동네를 두서너 바퀴 돌았을까.

간헐적 달리기에도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못 뛰어 못 뛰어, 좀 걷자 하는 순간에 강여사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엄마~
 어디야?
  지금 동네서 운동하고 있는데, 왜?
 운동 갔어?
 어. 왜?
아니, 자다 깨어보니까 없어서. 좀 기다려도 오지도 않고 해서 걱정했잖아.
어? 아, 어 그랬구나.  나오려는데 엄마 주무시길래 조용히 나왔지.
근데, 뭐가 걱정이 돼, 엄마. 하하하하
걱정되지.  집에 있던 사람이 없어졌는데.



강여사 말에 뭔가 농담조의 말로 대꾸하려다 그냥 삼키고

"아, 그러셨구나. 알았어요, 운동하고 곧 들어갈게요~"하고 말했다.

"그래, 조심히 하고 어여 들어와."


"네~~"

애써 피식 새어 나올뻔한 웃음을 참고

상냥한 목소리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피식, 결국 웃음이 나왔다. 참았던 말이 생각나서였다.

'아니, 이 나이 먹은 딸이 뭐가 걱정되신다고 이 대낮에'

예전 같았으면 나이 먹은 딸 '집에 안 들어오는 게 고마운 일 아닌가'하고 농담하지 않았겠나.


그런데 금세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아니지, 아니네.  걱정되는 세상이긴 하네'

요즘 어디 그런 농담을 할 수 있는 세상인가.


대낮에 길을 걷다, 산책을 하다, 집에 있다가도

평범하게 살던 사람들이 해를 입고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는 세상이 아니던가

강여사의 걱정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가 스치는 생각에 얼른 웃음을 삼켰다.


그래 걱정하는 마음에 나이가 어딨고, 남녀노소가 어디 있겠나

사랑하면 걱정하는 거지.

사랑하니까 걱정이 되는 거지.


강여사 덕에 몽글몽글해진 마음을 안고 동네 한 바퀴를 더 더 속력을 내어 달렸다.

이 나이 먹은 딸을 걱정해 주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부시게 감사한 일인가.

이러니 내가 강여사를 놓치고 싶지 않을 수밖에. 그러니 내가 더 더 건강해져야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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