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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녀책빵

인생의 의미

토마스 힐란드 에릭센 ㅣ 이영래 옮김 ㅣ 더 퀘스트

by 친절한 마녀

#시작


혼자서 멋진 일몰을 볼 때면 뭔가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스타그램에 일몰 사진을 올리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감상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편없는 행동이다.

책, <인생의 의미> 중에서


혼자서 멋진 일몰을 볼 때면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을 찍는다.

인스타에 일몰 사진을 올려 인친들과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과연 의미가 없을까?


인공지능에 친숙해지고 SNS를 통해

인생 친구를 만나는 사람도 있다는데

과한 폄훼가 아닌가? 의문을 품으며

책, <인생의 의미>를 읽기 시작했다.

한창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때라서.


이어진 연휴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게임도 하고 외식도 하며 망중한을

즐긴다. 마침 커피 한 잔 하고 있다는

친구의 카톡 메시지를 받고는 몇 마디

더 나누고 서로의 오후를 응원한다.


이 순간이 느리게 흘러갔으면 한다.

잡을 수만 있다면 꼭 붙들어 매고

싶을 만큼 포근하고 아늑해 삶의 의미를

다시금 질문해 본다. 좋은 삶은

어떤 삶일까?



삶의 의미는 지속 가능하고 중립적이며 자유롭다.
삶의 의미는 관계로 이루어진다.

책, <인생의 의미> 중에서



혼자서 일몰을 보는 데 그치고

일몰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고 그만이면

어쩐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 한 통을 걸고, 사진을 보며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을 때 더 충만해지니까.



관계가 빠지면 의미가 퇴색될 수 있지만

관계 속에선 형편없는 행동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내가 관계에 의해 창조되며 그 관계 속에서 계속 재창조된다.

책, <인생의 의미> 중에서



가족과 시간을 공유하며 안온한 즐거움을

느끼고, 휴일 친구의 일상적 메시지에

연결되어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창조된다. 이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은 우리가 관계되어 있어 의미 있으리라.



하지만 이 관계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면

안온함과 연결된 기쁨도 알지 못하겠지.



갈증을 모르는 사람은 물의 가치를 모른다.
결핍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
.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평가는 그것의
결핍을 경험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책, <인생의 의미> 중에서



잃어보지 않으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다른 소중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저 보통의 하루를, 아주 보통의 하루를

기원하는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를

결핍을 통해 알게 된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타인의 관심과 시간,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믿을 수 있는 실, 나 자신을 알게 되는 느린 시간 그리고 그 실에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책, <인생의 의미> 중에서



오늘 이 시간은 흘러가면 그만이다.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되새기고 기억할 수는 있다. 관계 속에

놓인 나와 우리가 조금 더 세심하게 자신을,

서로를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책, 인생의 의미


#중에


"어서 오세요 마녀책빵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곧 오면 좋겠다.


요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막연하게 품었던 희미한 희망이 봉긋

솟으며 '이게 내 꿈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미쳤다.


며칠 전 다녀온 '서울 국제도서전'에서 평산책방이나

독립서점들을 보며 희망의 끈은 더욱 요동치며

'이게 내 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로 이어졌다.



수면 중에 우리를 찾아오는 꿈이든 깨어 있을 때 소환되는 꿈이든,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꿈은 기대와 추억, 두려움과 희망이 뒤얽힌 증류수다.
- 책 내용 중에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지금 이런데 어떻게?'

'꿈만 가지면 뭐 할 거야,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돈은 있고?' 이걸로 내 미래가 보장돼?' '하면, 자신은 있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두려움이 '무슨 꿈이냐?',

'주제 파악이나 해'라고 콕 쥐어박았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나 해결해. '뭔 놈의 꿈?'


극복될 수 있는 결핍은 삶에 의미를 불어넣는다. 숨 가쁜 우리 시대에 가장 결핍된 것이 있다면 바로 느림일 것이다. 나 자신을 알아가거나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만 느림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느림 없이는 상상력도 상공으로 이륙할 수 없다.


'안될 건 또 뭐야?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지.'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 거 맞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계속 한탄만 하고 안될 이유만 찾고 있는 내게

마음에 촛불 하나가 켜졌다. 노력은 배신한다.

알지, 그렇지만 또 일어설 용기가 있다는 것도 알지 않는가


희망이 꼭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꿈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희망은 보통 내 주변 세계 안에서 존재하니까.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테러보다 내 아이가, 베네수엘라의 초인플레이션보다 당장의 대출금이 더 중요하듯 말이다. 세상이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보통의 삶을 거부하면 희망의 화살이 아래로 향한다. 그런 상태는 의미도 없고 삶의 질을 높이지도 못한다. 어둠을 저주하기보다는 촛불을 켜는 것이 항상 더 나은 법이다.
꿈과 희망은 비현실적일지라도 결국엔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낙관주의에 불을 붙인다. 상상력을 위한 트램펄린인 꿈과 희망은 시야를 확장시켜서 우주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우리의 능력, 지금 이 순간의 의미 그리고 먼 미래와의 관계 속에서 삶을 이끄는 잠재력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 맥락에서 느림이 인생의 네 번째 의미다.

- 책 내용 중에



늦었지만, 더 늦어 더 후회하기 전에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숨을

고르며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 힘을 내어

삐죽이 나왔다.



중년 이전에 삶과 정점에 도달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느린 성장과 성숙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다. 여름 꽃을 두고 전나무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책 내용 중에



아마도 나는 대기만성형일 거야.

인생의 기회가 다 지나갔다고 생각하기보다

아직 인생의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스스로에게 낫지 않은가, 말이다.



길고 느린 시간의 개념을 제화하려면 운동선수가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 전 훈련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이고 단련할 필요가 있다. 느림이 없으면 삶은 숨이 막히고,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머리와 꼬리도 구분할 수 없이 급히 꿰매진 조각이 되고 만다. 나무는 뿌리에서 위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나는 나무는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생존에 필요한 휴식을 취하며 위쪽만큼이나 아래쪽으로도 자란다.

느림은 규칙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리는 삶의 근육이다. 삶의 두께와 풍요로움은 당신이 묶을 수 있는 실의 질과 양에 달려 있다. 시선을 더 높은 위치로 올린다고 해서 가깝고 친밀한 것들이 상실되지 않으니 걱정 마시길.

- 책 내용 중에


조급히 생각하지 말자('네가 지금 여유 부릴 때야?')

괜찮아, 이미 늦은 걸. 조금 더 천천히 생각한다고

될 일이 안되고 안될 일이 되지는 않아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중요하지.


암 전문의가 말기 환자에게 하는 전형적인 조언은 "여기, 이 순간을 살라"는 것이다. 언젠가 너무 늦어버린 순간이 될지 알 수 없으므로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일을 미루어서는 안 된다. 지금의 긴 시간도 순간으로 쪼개질 수 있다. 때문에 당신은 모두와 함께 지금 여기에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시간은 지금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책 내용 중에


생각에 그치지 말고 행동만 해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다음에 보면 되겠지.

_

꿈 하나를 키우는 사고의 흐름



#마침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내 마음 같구나, 싶어 귀를 기울이게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게 화가 나

지나간 시간들이 아쉬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과 세상에 떠다니는 나

늙어 간다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닌데

저 멀리 지는 석양과 닮아서 맘이 서글퍼"


나이가 든다는 건 자연의 섭리인데

요즘 나는 그 섭리에 몹시도 화가 난다.

언제든 무엇이든 나는 할 수 있다,는 건

내 생각 내 마음뿐이고, 사회적 제약과

고정관념에 부딪히며 길을 종종 잃는다.


왜일까? 왜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나이 먹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곰곰이 생각하니, 나 스스로가 만족하고

사회적으로 이루고자 한 것들 중에

뭐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안 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순간순간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아주 크게 착각하며 살았나 보다,

볼멘 생각에 이르니


나이 드는 게 창피한 일도 아닌데

서글프고 참 허무하네, 싶다.

내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내 인생, 참 잘 살았고 잘 살고 있고

잘 살아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불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은 균형을 찾는 데 매우 중요하다.

후기 고대 사회에서 삶에 중요치 않은 것들을 뜻하는 아디아포라,라는 용어가 있었다.
기독교인과 스토아학파에게 이 단어는 삶에 진지한 사람이라면 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나타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사로운 것들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몰두하는 걸까?

- 책 내용 중에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불필요한 생각을 없애는 것이리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중요치

않은 일들에 몰두하는 것을 그만두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리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의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되며,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인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사람들에게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쾌락과 재미를 좇아 살았다면,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일이 고통스럽고 어려울 것이다. 목표가 없고, 쌓이지도 않고, 성취에 이르지도 못하는 활동으로는 삶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더 큰 이야기의 일부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
긴 지금과 큰 여기라는 관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날개 밑에 숨을 불어넣고 앞뒤, 위아래를 모두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책 내용 중에



사실 나이 드는 게 가장 화나는 이유는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고

쌓아 성취를 이루기에 너무 늦지는 않았나

조마조마하기 때문이다.


이 무섭고 두렵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물리치고 가장 중요한 지금 여기에서

나는 나아갈 방향을 찾아 길을 계속

걸을 수 있을지. 기필코 찾아 걸어

나아가길 소망한다.



- 삶은 책, 읽어가는 날에 '인생의 의미'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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