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한가(可)
요즘 바쁘지요? 많이 바빠 보이던데요.
나름입니다만, 프리라 프리합니다.
고객이든 지인이든 종종 나누는 대화 내용 중 하나다. 바쁠 때야 모르겠지만 한가할 때 누군가 바쁘지 않냐고 물으면 으레 프리라 그런지 아주 프리하다고 대답을 하곤 한다. 상대는 늘 박장대소를 하며 재치 있는 농담쯤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이다.
자발적 백수. 남들이 이해 못할 퇴사를 하고 심신을 건사하며 대략 일 년 반 정도를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지냈다. 스스로 백수인 것이 즐거웠다. 심지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번아웃을 겪은 후 내린 과감한 결정이었으니 그렇지 않았겠는가. 퇴직금이 떨어지고 통장에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쯤 다시 들어간 회사의 공기는 업무 책상에 앉자마자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너무 빤히 보이는 회사 내부의 역학관계. 모순적 상황. 너무 잘 알아도 탈이라 했던가. 발휘되지 않아도 될 혜안이 발휘된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직장 생활로 돌아가는 게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이 엄습하며 보름 만에 퇴사를 했다.
선택적 프리랜서의 길이 시작되던 순간에 잠시 내가 모자란 사람이 아닌가 자책도 들었지만 싫은 사람 안 봐도 되고, 싫은 일 하지 않아도 되고, 내부 정치에 휘말리지도 않아도 되며 상사, 동료, 후배 신경 쓰느라 발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되는 등 안 해도 될 일들이 머릿속에 열거되며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편할 때 나 혼자 스스로 결정하면 얼마나 속 편할지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자유가 느껴졌다. 다 내 마음먹은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넓게 펼쳐진 초록 들판에서 이리저리 기분 좋게 뛰어다니는 한 마리 망아지가 드라마 장면처럼 그려지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 장면에서 내가 빼먹은 게 있다면 자유를 지탱할 마음가짐과 재정상태였다. 아주 중요한 걸 빼먹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여러 번 시행착오를 겪은 후였다. 영어 단어 프리(free)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유로운, 공짜의, 없는’이란 뜻이 있다. 얼핏 보면 다른 뜻 같지만 일맥상통하는 의미들이다. 이 의미들을 종합해 보니 프리의 자유에는 공짜가 없다. 즉 ‘프리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란 나름의 해석에 도달했다. 충분히 자유롭게 일하며 잘 먹고 잘 살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필요하다. 한 순간 지나가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자신을 다잡을 수 있는 굳건한 마음과 경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음 가짐이 제일 중요하다.
사실, 프리 에이전트를 자처하며 일을 시작할 때 태도나 마음가짐이란 것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단순히 일을 맡아서 잘 처리하고 돈 받고 또 다른 일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막연한 과정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일을 어떻게 맡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고, 재정 관리를 어떻게 해서 프리 생활을 계속 연속시킬 것인 지만 궁리했다. 고객을 찾고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일을 따내는 일이 개인이 혼자 하기에 얼마나 험난한 과정일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고, 그 과정을 스스로 견디고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매사 술술 잘 풀리기만 하는 것도 아니요, 늘 이상적인 고객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자괴감이 들며 허탈할 때가 상당하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심이 흔들리기도 한다. 길을 걷다 조그마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을 뿐인데도 거대한 바위에 부딪힌 듯 좌절한다. 그럴 때 원하는 바와 자유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건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거절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상처에도 빨리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 조급함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기다리는 인내, 무엇보다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창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건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마음 근육을 키우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튼튼하게.
경제 독립 만세를 외치자
경제적 자유 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프리의 생활과 마음이 흔들리는 대다수 원인이 불안정한 재정 상태다. ‘먹고사니즘’을 해결할 일정 수준의 수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일의 구조부터 만들어야 원하는 일의 선택 가능성이 커진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수용 가능한 일의 성격이나 가격이 형성되겠지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먼저 갖추기 위해서는 초기 일의 수용에 있어 유연함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일만 골라해서는 백수와 한 끗 차이인 프리로 지내며 경제적 안정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원하는 일만 해도 돈이 알아서 따라오는 능력자거나 특정 분야에 있다면 걱정 붙들어 매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자유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부단한 노력과 때로는 투쟁이 필요하다. 책임도 따른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프리에게 자유를 포기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 Image by André Santana from Pixabay
※ 본 글은 친절한 마녀가 IT 조선에 기고한 [김정희의 프리한가(可)]의 원문을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친절한 마녀는
원하는 시간과 장소, 원하는 조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일하며 프리한 삶이 지속 가능한지 실험 중이다. 천국 같은 프리의 세계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