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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마녀 Aug 10. 2020

니 말은 브랜드고 내 말은 싸구려냐

모녀 대첩 1. 강여사가 기가 막혀

뜨거운 열기로 온몸이 달아올랐던 여름날 오후 한때,

강여사와 나 사이에 며칠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팽배했고 마침내 터져 버렸다.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그렇게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매섭게 싸웠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별거 아닌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엄마의 기가 막힌 한마디 직격탄 때문이었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고 아리송하기만 하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대강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 분노로 변해 더는 서로 봐줄  없는 상황이었다는 정도.  


엄마 말이면 다 맞아? 엄마 말이면 내가 다 해야 하냐고?
그럼, 니 말은 다 맞고 내 말은 다 틀리냐?


매서운 눈초리와 한치의 양보도 없는 말들로 서로를 할퀴며 한창 말다툼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터져 나온 강여사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논리를 무기로 '따다다 다' 따발총을 쏘며 강여사의 말을 집어삼키고 있었고, 더 들어줄 수 없다는 듯 화가 난 강여사는 소리를 질렀다.  


야, 니 말은 브랜드고 내 말은 싸구려냐!


그 극한 대립 속에서 터져 나온 강여사의 말에  순간 내 입은 얼어 붙었다

너무 기가 막혀 속으로 웃음이 '빵' 터졌다.  입 밖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지 않게 이를 꽉 물고 간신히 말을 했다.


됐어. 그만해. 더 할 말 없어요.


엄마와 대화가 안되니 그만 말하겠다는 뜻처럼 비치길 바라며 던진 말이었지만,  실은 할 말을 잃은 항복 선언이었다.  보기 좋게  패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는 궁여지책.  

 

강여사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나는 참았던 웃음이 '푸'하고 터져 나왔다.

'뭐야 대체, 그 웃기는 말은. 나 참'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왜 싸웠는지조차 기억도 안 날 만큼 충격적인 말이다.

완전히 나의 전의를 무력화시켰던 기똥찬 한방.


가끔씩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할 때면 강여사도 나도 왜 싸웠는지 기억을 못 한다.  

하지만 그 명대사만큼은 서로 또렷이 기억한다.  얼마나 강렬했던지...

다 컸다고 엄마 말을 무시하는 말과 태도를 보이지 말라는 강여사의 핵폭탄급 경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힌 명언이다.  


그 이후로도 강여사는 종종 모녀 대첩이 발발하면 그때의 명대사를 패러디해 융단폭격을 한다.


니 말은 백화점 명품이고 내 말은 시장 싸구려냐!


그 말을 들을 때면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엄마를 이겨서 뭐하겠냐는 깊은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매번 강여사에게 진다.  그때도 지금도 강여사의 말은 값비싼 브랜드라서 말이다.


현재까지 모녀 대첩 스코어, 강여사 백전백승!

    


P.S.  

이후 나는 강여사의 말을 끝까지 귀를 쫑긋해 듣고 명품 브랜드처럼 귀히 여긴다. 그리고 내 의견을 차근차근 전한다. 그 어떤 사람들보다 더 많은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것이 가족이다.   가족이라고 모두 의견이 일치하거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가족이 대립 상황에서는 더 힘든 법이다.  세상에서 무조건적인 내편이 가족이라고 생각할 때 그런 가족과 대립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더군다나 엄마와 대립한다면...


엄마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법에 대한 연구는 늘 -ing 현재 진행형이다.  그때 충격이 너무 컸어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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