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이 눔의 장마. 참 오래도 간다.
시장에 좀 가야 하는데...
강여사는 연일 비 오는 하늘에 대고 투정이다.
동네 장날이면 휙 나가서 찬거리도 사고 콧바람도 쐬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몸이 근질근질하신가 싶었다.
강여사의 볼멘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는 쌩하니 일하러 나왔다.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강여사랑 전날 밤에 투닥거린 지라 나의 화남을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날이 섰다. 과거를 생각하면 후회가 밀려오고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이 엄습해 마음을 가누기 어려웠다. 오프라인에서 강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내 일들이 모조리 폭우에 떠내려 가버린 듯 허망해 가슴이 아렸다.
디지털 비대면 사회로의 촉진은 내 일의 비전에 그치지 않고 내 삶 전체를 흔드는 불안도 촉진시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긍정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자꾸 주저앉고 말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불안을 어떻게 떨쳐 버릴까?
명상도 먹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공유하기도 버거웠다.
뻔한 위로와 힘이 나지 않는 격려에 지칠 내가 눈에 선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삐딱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떠돌 때는 그 어떤 선한 의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다 부질없는 말과 반사만 되풀이될 뿐이다. 도돌이표처럼.
내 일 하나도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데 집이라도 편하면 얼마나 좋아.
엄마는 맨날 약속해 놓고선 왜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해서 아프냔 말이야.
딸내미 걱정 안 시키고 마음 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돼?
울컥하고 말았다. 온통 답답한 머리와 가슴을 부여잡고 있으니 신경질이 나고 별일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날 수밖에. 자꾸 내 마음이 아닌 소리가 튀어나왔다.
일을 마치고 저녁에 귀가를 하니 강여사가 미안하다며 애교를 부렸다. "뭘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 화 풀어. 응?" 하며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아. 몰라. 진짜~” 이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녁 먹어야지? 배 고프지? 어서 나와 밥 먹어.
씻고 나오니 식탁에 전복장과 전복 삼계탕이 갓 담근 겉절이 김치와 함께 차려져 있었다.
"뭐가 이렇게 진수성찬이야~" 괜히 한 마디 툭 던졌다.
얼른 앉아 먹어. 우리 딸 이거 먹고 힘내!
강여사가 시장에 나가질 못하니 요 며칠 식탁에 오르는 반찬이 변변치가 않았다. 까칠하게 구니 입맛도 덩달아 까칠해져 어떤 맛난 반찬이 있었어도 아마 깨작거리다 숟가락을 놓았을 게 뻔했다. 하지만강여사는 가뜩이나 입도 짧고 반찬 투정이 심한 딸내미가 없는 반찬에 말없이 밥 먹고 나가는 것이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니었었나 보다.
"무슨 일 있어?" 물어봐도 "아니. 없어." 힘없이 내뱉는 대답에 더 노심초사였었나 보다.
전날 전복과 삼계탕 거리를 온라인으로 주문해 전복장을 만들고 삼계탕을 뜨끈하게 준비해 아침 밥상에 내놓을 참이었는데, 전날 한바탕 모녀 대첩을 치른 딸내미가 아침 말없이 쌩-하고 나가버리니 주지도 못하고 무지 속상하셨단다.
너 아침에 그렇게 나가서 엄마가 얼마나 속상했게. 이거 다 아침에 주려고 한 건데. 너 말없이 밥 먹고 나가는 거 보면 엄마 진짜 속상해. 일이 안되더라도 기죽지 말고. 일하다 보면 안 될 때도 있는 거고. 뭐 조그만 일이라도 계속 하다 보면 또 다른 일들이 생기겠지. 그러니까 이거 먹고 우리 딸 힘내. 알았지?!
힘이 안 날 내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었다 울 강여사는.
콧바람 쐬러 시장에 가려는 게 아니었다.
코 빠뜨리고 있는 딸내미 걱정에 뭘로 기운을 돋아줄까 고민하다 장마 탓을 한 거였다.
기가 죽다가 울 강여사 덕에 살아났네. 그래, 내 힘의 원천은 울 강여사였어.
잘났건 못났건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울 강여사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불안은 개나 물어가라 그러자.
까짓것 뭐든 뭐라도 해보는 거지 뭐.
자연스레 마음이 다잡아지는 게 당연했다.
p.s. 나이 든 딸내미 먹이랴 걱정하랴 울 강여사가 고생이 많다. 강여사 덜 속 썩일 방법을 궁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