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마케팅] 시사저널 연재 시리즈 ⑧ 팬덤 마케팅 편
올 초 유명 모터사이클 기업 할리데이비슨은 대한민국을 비롯한 9개의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한 제1회 아시아 버추얼 호그 랠리(Virtual HOG Rally)를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동시 개최했다. 브랜드 최초의 가상 랠리 이벤트로 약 7백여 명의 호그 회원과 만 천여 명의 라이더들이 실시간 참가한 해당 랠리 영상은 당시에만 8만 건의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호그는 그 브랜드를 타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인 ‘할리데이비슨 오너스 그룹(Harley Owners Group)’의 약자로 전 세계 회원이 130만 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전 세계적으로 열정적인 팬을 보유한 유명 브랜드 중 하나다.
이런 할리데이비슨에게도 1981년 커다란 위기가 있었다. 혼다 같은 외국 경쟁업체들의 공세에 한때 70%에 달했던 시장점유율이 곤두박질치며 시장 1위 자리를 빼앗겼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도 팬들은 떠나지 않고 브랜드 곁을 굳건히 지켰다. 회사는 커뮤니티 중심의 포지셔닝을 강화하기 위해 호그를 만들고 대리점 네트워크와 함께 매장 재설계 프로그램을 실시해 고객이 브랜드에 쉽고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매장 내 수익을 3배로 늘리며 위기 탈출과 더불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호그는 직접 자율적으로 운영하며 독특한 호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브랜드는 호그 문화의 일부가 되고 그 정체성이 개인과 커뮤니티의 정체성에 녹아들었다.
지금처럼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한 환경에서는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이 브랜드의 팬을 만들고 상호작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브랜드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인간적이고 감성적으로 고객과 상호작용할 때 팬을 만들 수 있다. 디지털 혁신에 힘입어 기업은 고객 개개인과 대화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게 됐다. 브랜드 팬을 식별하고 활성화하는 노력은 비즈니스에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브랜드의 팬은 참여도와 수익성이 높은 고객이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팬은 브랜드 홍보 마케팅은 물론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도 참여하며 비즈니스의 성공을 이끄는 강력한 파트너라 할 수 있다.
‘미펀’은 샤오미의 열혈 팬덤이다. 레이쥔 CEO는 고객을 신제품 개발 및 프로그램에 직접 참여시켰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의견이 제품에 적극 반영되자 고객은 큰 만족감을 느끼며 제품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열성적인 팬과 협력하는 브랜드는 중요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고객 참여가 적극적인 브랜드일수록 충성과 열정이 가득한 팬덤을 형성하고, 그 구성원은 브랜드를 지지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 강한 브랜드 애착으로 그들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관련 브랜드에 아낌없이 쏟으며 강력한 소비자 집단이 된다. 팬은 충성도 높은 고객 그 이상이며, 팬덤은 브랜드 가치에 맞춰 충성도 높은 브랜드 문화를 구축하며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한다.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팬덤을 "특정 개인, 팀, 허구 시리즈 등의 팬, 집합적으로 간주되는 커뮤니티 또는 하위문화"로 정의하고 있다. 팬덤의 모습은 오랜 시간 걸쳐 변화했다. 특히 K-팝을 필두로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K-컬처에 대한 팬덤이 소비자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소비자로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많은 많은 기업이 연구하고 배우며 브랜드에 적용시키고 있다. 팬덤은 대중문화의 산물로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하위문화를 창조하며 경제적 영향력까지 발휘하고 있다. 팬덤 마케팅, 팬덤 경제 등의 용어도 생겨났다. 고객의 열정이 기업 비즈니스의 슈퍼파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 공개된 아이폰 13 시리즈는 혁신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혹평과 달리 아이폰 13은 사전예약부터 품귀 현상을 빚었다. 이는 애플 생태계의 편리함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위 ‘애플빠’라고 하는 팬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민트 초코 식품을 좋아하는 ‘민초단’을 겨냥한 신제품이 쏟아졌다. 작년부터 소셜미디어에서 민트 초코에 대한 개인의 취향을 밝히며 놀이처럼 '민초단 대 반민초단'의 논쟁이 시작되자 식품업계에서 신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초연결 시대에 고객은 소셜 미디어에서 연결하고 연대할 수 있게 됐다. 강력한 연대를 이루는 팬덤은 사회적 목적, 브랜드 또는 다른 팬덤을 집단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커뮤니티로 출발한 무신사는 유명 브랜드의 한정판 운동화 사진과 국내 스트리트 패션 사진 등의 최신 정보를 공유하면서 패션에 관심 많은 1020 세대를 빠르게 유입시켰다. 커뮤니티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무신사닷컴’ 사이트를 별도로 구축한 무신사는 고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풍부한 콘텐츠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실시했다. 그러자 무신사를 놀이터로 생각하는 팬덤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무신사는 꾸준히 늘어나는 회원과 팬덤의 어깨에 올라타고 커뮤니티에서 패션 콘텐츠 미디어 기업으로, 지금은 패션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해 국내 10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마케팅 전문가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은 2020년 그의 저서 '패노크라시(Fanocracy)’에서 ‘팬을 고객으로, 고객을 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혼잡한 디지털 세계에서 제품이나 서비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정한 팬덤을 만드는 것이 모든 조직의 비즈니스 로켓 연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팬덤은 소셜미디어, 이메일, 검색 광고, 유튜브에 나오는 15초 광고보다 더 강력한 마케팅 파워를 가진다고 했다. 패노크라시는 팬(Fan)과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로 팬의 요구와 바람을 다른 모든 우선순위에 두는 조직을 뜻한다. 진정한 충성고객을 육성하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모두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다.
경쟁이 치열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상품이나 브랜드 팬을 만들고 팬덤을 형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는 특성과 페르소나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는 하나의 팬덤을 기업의 브랜드가 추구하는 잠재고객으로 어떻게 연결하여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만들 수 있을까? 지금 기업은 해답을 찾는 일에 골몰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 팬이 된 고객은 관망에서 참여로, 수동적인 청취에서 열정적인 전도로 기업 비즈니스에 새로운 기회와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기업은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을 넘어 브랜드 자체에 무한 애정을 보내는 ‘찐팬’의 어깨가 무엇보다 절실한 시대에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팬덤을 만드는 동기를 찾거나 팬덤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일에서 기억해야 할 점은 인간적인 경험과 교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브랜드가 판매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에 집중하며 고객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때, 고객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기업의 위기와 성장과 함께하는 다이하드(die-hard) 팬이 되어 줄 것이다.
위 글은 '시사저널' <아하! 마케팅>에 연재한 '팬덤의 어깨에 올라타라'의 원문입니다.
총 10회를 연재하며 B2B를 잠시 벗어나 마케팅 전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제에 따라 B2B 내용도 포함합니다. 원문과 발행된 글을 비교해 보는 재미를 위해 원문을 공유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들을 다시 소환하고 있으니 가지고 계신 인사이트도 다시 소환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봅니다.
* 이 글은 어때요?
시사저널 <아하! 마케팅> 시리즈
8회.
7회. 잘 키운 브랜드 하나 열 상품 안 부럽다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6회. 콜라보 달고 '묻고 더블로 가!' [김정희아하마케팅]
5회. 고객 몰려드는 콘텐츠 돼야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4회. 게임체인저, MZ세대를 톺아보다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3회. 뷰카VUCA 시대 생존 전략은 ‘상생’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2회. ESG 춘추전국시대, 마케팅 어떻게 하나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
1회. 마케팅, 기술을 입고 날다 [김정희의 아하! 마케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