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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혁렬 Apr 15. 2019

바르샤에는 있고, 맨유엔 없는 것.

- 조금 늦은 Review, 챔스 8강에 대하여

주말에 GSAT를 끝내고 이제서야 챔스 8강전 리뷰를 작성해봅니다. 유나이티드는 나름의 선전은 했으나, 결국 홈에서 바르셀로나에게 패배했습니다. 이 패배의 원인? 까진 아니더라도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 요소가 있죠. 그것은 바르샤에는 있었고, 맨유에는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요소'에 대해 조금 써보려고합니다.


# 수비수의 빌드업? 관점의 차이.


  제목만 봤을 때, 많은 팬들께서 '빌드업'을 언급하지 않을까 싶네요. 분명 바르샤의 빌드업은 매끄러운 반면, 맨유이 그것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경기에서 빌드업의 차이가 승패를 갈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빌드업의 문제를 전적으로 '센터백'의 문제로 해석하지도 않습니다. 


  축구 공은 둥글고, 포스트바 또한 둥급니다. 그렇기에 축구에서 가정을 하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태도임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글을 풀어나가기 위해 이번 글에선 약간의 가정을 해보려고 합니다. 제 가정은 이와 같습니다. ' 린델로프-스몰링- 데 헤아의 빌드업 역량과 랑글렛-피케- 슈테켄의 빌드업 역량이 서로 반대였다면, 맨유가 승리할 수 있었을까?' 제 대답은 No 입니다. 빌드업이 좋았다면 공격 찬스가 2~3차례 더 생겼을 수 있고, 어쩌면 상대가 진형을 완전히 갖추기 이전에 볼이 배급되면서 더 양질의 찬스가 만들어졌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맨유 공격진의 폼이 너무 안좋았고, 양질의 찬스라 할 지언정 결과를 맺었을 거란 기대치 자체가 너무 낮습니다. 지나친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수비진의 볼 배급이 원할했어도 공격진이 살리지 못했을거란 생각이 머리속에 지배적일 정도로, 이 경기에서 루카쿠와 래쉬포드의 퍼포먼스는 좋지 않았죠. 적어도 이 경기에서만큼은 빌드업을 문제로 지적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 빌드업, 센터백의 문제인가?


  여기서 빌드업에 관한 내용을 조금만 더 다뤄보죠. 분명 관점의 차이는 있고, 저와 다른 의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선 언제나 존중의 자세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며, 제 말이 옳다는 고지식한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알립니다. 커뮤니티의 많은 글들을 접하다보면, 빌드업의 문제를 온전히 센터백에게 전가하는 뉘앙스가 강한데, 이는 조금 잘못된 판단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이 두드러진 경기가 바로 지난 바르셀로나 경기이기도 합니다. 


  센터백이 빌드업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선택지는 크게 2가지입니다. 전방으로 직접 패스를 보내거나, 아니면 본인이 볼을 몰고 전진 드리블을 시도하거나. 그런데, 이 2가지에는 모두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수비진의 퀄리티를 떠나서, 전방의 움직임이 없으면 빌드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센터백이 아무리 좋은 킥력과 시야를 겸비했다 해도, 상대 필드 플레이어들이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발이 멈춰있는 전방의 팀원에게 볼을 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는 센터백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라, 상대팀의 대응이 좋지 않았을 때 가능한 상황, 즉 주도적인 플레이가 아닌 상대의 미스를 요구하는 요행이죠. 상대팀이 자신의 뒤에 맨유 공격수 혹은 미드필더가 '가만히' 있음을 인지하고,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수비수를 바라보면서 패스 루트를 의식하면서 대형을 유지하면 루트 차단은 어렵지 않습니다. 맨유 선수가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가져가주면? 상대 입장에선 빈틈이 생기게 되죠. 움직인 선수에게 내주거나, 아니면 이 선수의 움직임으로 균열이 생긴 공간에 볼을 전진시키는 것, 이것이 빌드업이라 생각합니다.


  직접 드리블로 전진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죠. 전방 팀원들의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아무리 좋은 드리블을 하더라도 결국 상대 선수들에게 협력수비를 당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전방의 움직임, 즉 오프 더 볼이 있어야 상대 선수들에게 '선택지'가 생기게 되고, 이로 인해 공간 혹은 노마크 선수가 발생하죠. 전방의 오프 더 볼이 없으면 상대는 눈 앞의 센터백만 의식하면 되고, 공격팀은 결국 빌드업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없게 됩니다. 빌드업의 아쉬움은 센터백의 퀄리티에 대한 의존도만큼이나, 전방 선수들의 오프 더 볼에 대한 의존도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바르셀로나전, 루카쿠와 래쉬포드는 발에 본드가 붙었는지 빌드업 과정을 돕지 않았습니다. 포그바도 마찬가지죠. 위로 밀고 올라가기 바쁠 뿐, 후방에서 전방으로 전달하는 허리 역할은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라키티치의 견제도 영향이 컸겠지만, 우리가 포그바에게 바라는 모습은 패널티 박스의 전봇대가 아니죠. 그는 상황에 따라 후방에 내려오거나 상대 수비 블록을 오가는 오프 더 볼로 '틈'을 만들어 줬어야 했습니다. 


  센터백이 아니라 공격진이 맨유-바르샤가 바뀌었다면? 스몰링- 린델로프의 빌드업은 충분히 효과적이었을 겁니다. 계속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이 경기에서 공격진의 무게감 차이가 너무 심각했죠.


# 공격진, 뭐가 그리 급한가


  1차전 홈경기에서, 이른 시간에 실점을 한 여파인지 맨유는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솔샤르 체제보단 무리뉴 체제의 색채가 드러난 경기였죠. 조급할 수 있겠으나 선제실점 이후에도 시간이 무려 78분이나 있었습니다. 심지어 단판 경기도 아닌, 2차전도 아닌 1차전임에도 맨유는 조급함이 플레이에서 보였습니다. 


  전방 움직임 부재로 빌드업의 어려움을 겪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전달된 공은 이내 허무하게 뺏기거나 어설픈 크로스 혹은 슛팅으로 마무리되었죠. 필드에서 뛴 선수들이 가장 잘 느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경기에서 바르샤는 에너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압박의 강도가 크지 않았고, 중원 장악력이 높지도 않았습니다. 맨유는 볼을 좀 더 소유하며, 지속적인 패스와 좌-우 사이드 체인지를 통해 바르샤를 더 흔들 수 있었죠. 그러나 솔샤르의 지시인지, 이런 플레이메이킹을 해줬어야 할 포그바는 볼 배급보단 페널티 박스 진입을 우선으로 두었습니다. 


  볼이 측면으로 빠지면 포그바-래쉬포드-루카쿠 상황에 따라 맥토미니까지 바르샤의 패널티 박스로 진입하기 바빴죠. 정작 양질의 크로스는 올라가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저 어떻게든 힘이든 높이든 밀어붙이겠다고 페널티 박스로 볼을 보내기 바빴습니다. 이런 장면은 경기 종료 10분전에 나와도 충분함에도, 맨유는 이런 공격 루트를 거의 90분 동안 보여줬습니다. 그 결과는 10개의 슛팅 중 유효슛팅 0을 기록하는 처참함을 보여주죠.


  이에 반해, 바르셀로나는 맨유보다 4개 적은  6개의 슛팅을 날렸으나, 이 중 3개를 유효슛팅으로 연결했습니다. 더 적은 기회에서 더 효과적인 결과를 뽑아냈죠. 그들은 때론 느긋하게 볼을 돌리면서 차근차근 맨유를 공략하기도 했고, 때론 빠르고 간결한 루트로 맨유를 공략하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에서 여유가 느껴졌죠. 분명 아르투르의 경우 맥토미니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며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바르샤 선수들 전반적으로 무리한 플레이나 드리블보단, 보다 효과적인 볼 소유의 차분함과 때로는 도전적인 패스를 통한 간결한 피니시를 보였습니다. 맨유와 매우 대조적인 부분이었죠.


  수비진 보단 공격진의 문제가 많았다고 판단된 경기였습니다.  그럼 바르샤에는 있고, 맨유에는 없는 것, 그 차이는 '공격진' 이냐? 아뇨. 보다 추상적이라는 문제는 있으나 전반적인 경기내에서의 모든 차이를 담을 수 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노련함. 그것이 바르샤에는 있었고, 맨유에는 없던 '차이' 혹은 '크랙' 이었습니다.


# 나이 든 선수는 있어도, 노련한 선수는 없다.

 

  수비진에서도, 중원에서도, 공격진에서도 맨유는 바르샤의 노련함에 무릎 꿇었습니다. 경기를 매끄럽게 끌고 나가기 위한 경기 운영은 없었고, 상대의 공격에 대한 노련한 대처도 없었습니다. 체력적 우위를 통한 '강' 은 있었어도, 노련한 '유'는 전혀 없던 경기였죠. 앞으로 때려 넣는 비효율적인 롱볼, 퀄리티 낮은 크로스, 잦은 턴 오버 등 '노련함' 의 부재로 경기를 효율적으로 리드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비록 스코어는 지고 있을지언정, 더 소유하고, 더 다양한 루트를 모색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맨유는 계속 급하게 경기에 임했고, 바르셀로나는 그 조급함을 노련하게 대처했습니다. 유나이티드는 바르샤에 비해 젊은 선수들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경험적 차이는 어쩔 수 없겠으나, 노련한 운영을 했어야 한 주장 애슐리 영마저 노련하지 못한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팬들을 좌절시켰습니다. 


  나이가 들면 피지컬의 하락세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 대신 '노련함'이 쌓이죠.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영이 보여준 모습은 당장 10년 전의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가 보여준 것과는 너무 차이가 큽니다. 멀리 갈 필요 없이 PSG의 알베스와 비교해도 애슐리 영의 플레이는 노련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장 어린 플레이를 난발했죠. 옆에 있는 맥토미니가 오히려 노련해보였을 정도였습니다.


  경기에 대한 분석은 솔직히 필요성을 못느꼈습니다. 솔샤르의 전술적 선택은 인상적이었으나 경기 중 어떠한 요인도 결국 '노련함'의 차이로 모두 해석이 되었기에 심도 있는 분석은 하지 않았습니다. 쓰다보니 리뷰 칼럼보단 후기에 가깝네요.


# 여담, 맨유의 리빌딩에 관하여


  위에서 충분히 노련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다가오는 이적시장, 맨유의 영입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이든 산초, 주앙 펠릭스, 데클란 라이스, 완 비사카 등 모두 좋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들만 영입된다면 절대 좋지 않습니다. 맨유는 지금 팀의 중심이 없는 상황입니다. 솔샤르 부임 초기에는 젊은 피들끼리 서로 신나서 축구하며 좋은 시너지로 좋은 결과를 뽑아냈지만, 부상과 컨디션 난조가 겹치면서 '젊음'의 강점은 점차 사라진 상태의 맨유입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베테랑이 필요한데, 맨유는 지난 6~7년 동안 이런 무게를 잡지 못했죠.


  당장 바르셀로나와 비교한다면 어떨까요? 약 10년 전을 기준으로 바르샤는 푸율의 경험이 피케에게 전달되었고, 메시와 부스케츠는 여전히 팀의 중심이며, 라키티치까지 함께하며 팀의 Old & Young의 균형을 맞추고 있습니다. 슈테켄도 충분한 시간동안 경험을 쌓았죠. 부스케츠의 경험은 이제 데 용에게 전해지고, 피케의 경험은 랑글렛이나 움티티 혹은 그들이 노리는 또 다른 센터백에게 전해질겁니다. 


  반면 맨유는 그 흐름이 끊겼죠. 퍼거슨시절까지 가지 않더라도, 불과 몇 년 전인 반할 시절의 선수들도 팀에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루크 쇼와 마샬이 남았을 뿐, 그 외의 선수들은 대부분 맨유를 떠나거나 떠날 예정이죠. 그렇다고 마샬이나 루크 쇼가 팀의 무게를 잡아줄 선수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센터백?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했으나 결국 존스와 스몰링이 살아남았죠. 린델로프가 한 축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은 하지만, 다음 이적시장에 영입되는 선수의 성향에 따라 린델로프보다 스몰링이 더 적합한 파트너가 될 수 있습니다. 


  경험과 노련함의 단절이 뼈저리게 느껴지는 맨유의 지난 역사들, 이런 상황에서 다시 또 젊은 피 수혈? 젊은 선수가 능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현 스쿼드에서 무게를 잡아주고, 핵심인 선수를 뼈대로 더 좋은 퀄리티와 더 역동성 있는 선수들로 조금씩 살을 붙여나가야 합니다. 그런 뼈대를 갖추지 못한다면 즉시 전력감인 베테랑을 영입해서 뼈대를 완성시켜야겠죠.


# 글을 마치며, 


  여러모로 바르셀로나라는 현재 최상위 클럽과 비교되는 경기였습니다. 그 와중에도 분명 여러 희망들은 보였습니다. 프레드가 조금씩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는 느낌이며, 맥토미니는 다음 시즌에 주전경쟁을 해도 아쉽지 않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직 부족함이 보이긴 하지만, 그의 정신력이 너무 인상적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시즌 '역전 할 수 있다.' 는 이상한 DNA가 쌓인 기분입니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기는 상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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