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습관
나는 조금 이상한 습관이 있다.
어디서든 ‘제대로’ 앉으라고 만들어진 모든 의자를 앞에 두고도, 기어코 끝에 걸터앉는다.
물론 매번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주 이렇게 앉는다.
식탁 의자든, 휴게실의 싸늘한 플라스틱이든, 푹신한 소파든, 침대든, 대합실의 공공의자든.
내 엉덩이는 늘 반만 신뢰한다. 나머지 반은 공중에 매달려, 세상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한 채 살아간다.
식탁 의자도 대충 끝에 걸터앉아 먹는다. 그러다 고쳐 앉기도 하지만.
건설노동 현장 함바집 식당도 아닌데, 빨리 먹고 일어서버린다.
휴게실의 의자에서도 마찬가지다.
플라스틱 의자 표면은 뭔가 이유를 알 수 없는 미끌거림을 품고 있다. 나는 그걸 몸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엉덩이는 의자 끝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마치 “너랑 나, 너무 깊게 얽히진 말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소파는 한술 더 뜬다.
그 부드러움, 그 포근함. 누가 봐도 앉으라고 유혹하는데, 나는 그 유혹을 의심한다. 그러니 반만 맡긴다. 소파와 나 사이에는 신뢰가 반쯤만 있다.
침대 끝에서 걸터앉는 건 그나마 이유가 분명하다.
침대 전체에 앉으면 늪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조금만 쉬었다 가…" 라며 모든 의지를 침몰시킨다. 그래서 난 끝에서 균형을 잡는다. 이것도 어쩌면 생존 본능이다.
대합실의 의자는 말할 것도 없다.
뭔가 ‘수많은 사람들의 역사’가 묻어 있는 것 같아서, 그 역사와 엉덩이로 너무 깊게 교감하기가 좀 그렇다. 그래서 걸터앉는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좋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보면 나는 의자를 믿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세계에게 완전히 기대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떠나지도 않는 그 절묘한 자리에 매혹되어 있다.
걸터앉는 그 순간, 몸이 살짝 흔들리며 균형을 잡고, 그 작은 긴장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더 생생해진다.
세계가 나를 붙잡으려 하고, 나는 세상과 연애하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결국엔 ‘거기’에 있으니까.
결국 나는 이렇게 산다.
반쯤 앉고, 반쯤 떠 있고, 반쯤 믿고, 반쯤 의심하면서. (전형적인 극소심 A형이라 그런가?^^)
여러분들은 어때요? 저만 이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