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한 단톡방의 침묵

침묵이 지나간 자리에서

by 원성진 화가

스무 살의 공기가 아직 남아 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 시절의 웃음과 술기운, 밤을 넘기던 이야기가 이름표처럼 달린 모임.

시간은 각자의 어깨 위에 다른 무게로 내려앉았고,

우리는 그 무게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견디며 살아왔다.

시간은 흐르면서 모든 것을 바꾸지만 관계의 형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는 변해도 흔적은 남는다.


우리는 여전히 1년에 몇 번쯤은 만나고, 단톡방이라는 작은 방에서 안부를 건넨다.

디지털의 방은 물리적 공간을 대신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감정이다.

기술이 관계를 얕게 만든다는 말도 있지만, 때로는 이 작은 창이 서로를 잊지 않게 붙잡아 둔다.

기억은 반복을 통해 유지되고, 반복은 관계의 숨결을 이어준다.


지난밤, 술이 조금 더 용기를 내게 했다.

나는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내일 창원 옥수골 농장에서 술 한잔 하고, 훌라 한판 치자!”

그 문장은 제안이면서 신호였다.

지금의 나와 과거의 우리가 다시 한 지점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인간은 언제나 현재에 살면서 과거를 호출하고, 그 호출이 받아들여질 때 안도한다.


답은 오지 않았다.

단톡방은 고요했고, 고요는 생각을 증폭시킨다.

침묵은 공백이지만, 해석을 요구하는 상태다.

우리는 그 침묵 위에 각자의 감정을 얹는다.

서운함은 타인의 무관심에서 오기보다, 나의 기대가 혼자 남았다는 감각에서 생겨난다.


나는 다시 한 줄을 남겼다.

“다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네, 담에 보자.”

말은 가벼운 농담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서운한 마음이 숨어 있었다.


맥주를 몇 캔 더 마셨다.

거품이 가라앉는 동안, 마음도 같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술은 감정을 키우기도 하고 눌러주기도 한다.

고대 철학자들이 절제를 말했던 이유를 이런 밤에야 조금 이해하게 된다.

감정은 흐르게 두면 지나가고, 붙잡으면 스스로 무게를 늘린다.


살아가다 보면 문득 친구들이 보고 싶어진다.

이유는 늘 분명하지 않다.

인간은 본래 관계적인 존재라는 말이 있다.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의 균형은 타인과의 연결에서 유지된다.

특히 친구란 가족과 사회 사이 어딘가에 놓인 독특한 존재다.

선택으로 맺은 인연이기에, 그만큼 자유롭고 또 그만큼 쉽게 허전해진다.


친구들은 모두 창원 인근에 살고 있고, 나만 서울에 있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서로의 일상은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우리는 함께 늙어가는가?, 각자 늙어가다 가끔 교차하는가?.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러다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어나니 단톡방에 말들이 올라왔다.

“담에 날 잡아 한잔 하자.”

“서운해하지 마라.”

“삐지지 마라.”

문장들은 짧았고,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그 간결함 속에 오래된 신뢰가 있었다.

관계가 오래될수록 말은 줄고, 의미는 늘어난다.


친구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익숙한 목소리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나를 달랬다.

목소리는 문자보다 오래된 매체다.

숨과 온기가 섞여 전달되는 말은 생각보다 깊이 닿는다.

그 순간, 괜히 커졌던 마음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인간은 결국 이해받는 순간에 안정을 회복한다.


친구란 이런 존재일 것이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한 번씩 마음을 건너와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술기운에 던진 말도 결국은 웃음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관계.

오래된 인연은 조용히 지속되며, 필요한 순간에만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크지 않아도 충분하고, 삶을 다시 하루쯤 견딜 만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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