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비름
오늘 유난히 춥다. 얼음처럼 맑은 추위가 출근길에 놓였다.
이런 날이면 몸은 현재에 있지만 생각은 자연스레 다른 계절로 흐른다.
따뜻했던 기억, 아니 거의 뜨거웠던 순간들로.
지난여름 끝자락의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자락길을 걷다 보면 발걸음이 느려지는 구간이 있다.
나무 데크가 끝나고 흙길이 드러나는 자리, 시선이 풍경에서 생각으로 이동하는 틈.
그 틈을 비집고, 가장자리에 늘어진 쇠비름을 보았다.
늘 낮은 곳에, 길의 중심에서 비켜난 채 엎드려 있었다.
질경이와 늘 이웃하면서도 묘하게 거리를 두는 태도까지,
관계에도 밀도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애써 중심에 서지 않는 삶. 도가적인가? 알 수 없다.
물처럼 낮은 곳으로 흐르며, 다투지 않고, 앞서려 하지 않는 태도.
쇠비름은 그 가르침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다.
햇볕이 가장 뜨거운 한낮, 그는 몸을 더 낮추고 잎을 접는다.
안산 능선 위로 빛이 쏟아질수록 드러남을 거둔다.
밤이 오고 온도가 내려가면, 그제야 조용히 숨을 연다.
시간을 거스르지 않고 시간을 바꾸는 선택.
억지 없는 판단.
장자가 말한 ‘무위’가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행위.
자락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부분 위를 본다.
나무의 키, 하늘의 깊이, 도시가 멀어지는 감각.
쇠비름은 그 시선 아래에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산다.
키를 키우지 않고, 잎을 두껍게 만든다. 보여주기보다 저장한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자기 몫의 질서를 단단히 지킨다.
열을 피하고 물을 모으며, 흙 속에 머문다.
기다림조차 우연에 맡기지 않는다.
이 길은 여러 번 뒤집혔을 것이다.
공사와 정비, 수많은 발걸음.
쇠비름의 씨앗은 그 모든 진동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땅속에서 몇 해를 잠들 수 있다는 건 미래를 가정한 삶의 방식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 시간을 신뢰하는 감각.
과거와 가능성을 함께 품은 순간.
쇠비름은 그 현재를 정확히 산다.
잘려 나간 줄기 옆에서도 다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개체라는 개념이 얼마나 인간적인 발상인지 생각한다.
하나의 완결보다 이어짐이 중요해 보였다.
흩어짐으로 형태는 바뀌어도 삶은 계속된다.
자락길을 오르며 나는 나 자신을 떠올린다.
더 높이 오르려다 지치고, 더 선명해지려다 마르는 순간들.
쇠비름은 다른 길을 제안한다.
낮게, 천천히, 필요한 순간에만 숨을 쉬는 방식.
세상의 속도를 바꾸려 애쓰지 않고, 속도 사이에 자리를 마련하는 삶.
인간의 삶은 존재 자체가 목적이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존재를 증명하는 순간, 삶은 의 목적은 존재를 떠난다.
쇠비름은 증명하지 않는다.
그냥 산다.
그 침묵 속에서, 철학은 문장이 되지 않고 태도가 된다.
추운 오늘, 그 여름의 쇠비름이 유난히 또렷하게 떠오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