밟혀야 산다.

질경이

by 원성진 화가

질경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 이야기는 자주 오른 지리산 등산길에서 시작된다.


진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원지를 지나 중산리 종점에 내려서 오르는 길에 가장 빠르다.

배낭을 메고, 중산리 매표소를 지나, 칼바위를 지나, 망바위에 다다를 때쯤. 숨은 가빠지고, 길은 더 단단해졌고, 사람들의 발자국이 겹쳐진 흙은 눌려 윤이 났다.

그 길 위에 짓밟힌 질경이가 있었다.

숲 속의 그늘도,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도 아닌 곳.

가장 많이 밟히는 중심에 몸을 낮춘 채 잎을 펼치고 있었다.

그 장면은 하나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사유의 문이었다.


질경이는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산다.

야산과 들판, 등산로와 골목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아남는다.

세계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세계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덕을 단련하는 삶.

질경이에게 피할 수 없는 압력. 밟힘은 감내해야 할 조건이 된다.

그 조건 속에서 잎맥은 더 단단해지고, 몸은 더 낮아진다.

견딤을 통해 형태를 얻는 법을 보여준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 질경이를 찾아도 좋다.

질경이는 사람이 지나다닌 자리에 있다.

인간의 흔적과 자연의 생명이 겹치는 지점에서 자란다.

실존주의의 언어로 말하자면,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질경이는 목적지를 알지 못한 채 존재하지 않는다.

발길이 놓인 곳에서 자신의 삶을 구성한다.

밟힘 속에서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 위에서 다시 살아간다.

길 위의 존재는 길 위에서 스스로를 정의한다.


질경이의 뿌리는 깊이를 포기하고 넓이를 택한다.

단단히 다져진 흙 속에서 틈을 찾아 퍼지며 작은 수분을 모은다.

강함은 부드러움에서 나오고, 지속은 낮음에서 비롯된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질경이는 스스로를 낮추어 세계의 압력을 흘려보낸다.

위로 치솟지 않기에 부러지지 않고, 넓게 퍼지기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서강대 철학교수를 지냈던 최진석 교수님은,

무위의 태도는 소극이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적극이라고 하셨다.


여름에 피는 꽃조차 과장되지 않는다.

잎 사이에서 가느다란 꽃대 하나가 조용히 올라온다.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드러낸다.

세계는 크고 장대한 개념으로만 이해되지 않는다.

발밑의 작은 잎 하나, 눌린 흙의 감촉, 그 반복 속에서 의미는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질경이는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그 자리에 머물며 보게 만든다.


고난과 역경은 흔히 삶을 소모시키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러나 질경이를 떠올리면 생각의 방향이 달라진다.

반복된 압력은 몸을 망가뜨리지 않고 구조를 바꾼다.

밟힘은 생존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그것은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인간의 삶도 비슷하다.

피할 수 없는 무게 앞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때로 더 낮아지고 더 넓어져야 한다.

상처는 삶의 결을 바꾸고, 그 결 위에서 새로운 리듬이 만들어진다.


지리산의 그 여름길에서 나는 질경이를 지나쳐 다시 걸었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마음의 방향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고, 밟히는 자리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남았다.

질경이는 오늘도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있다.

말없이 눌리며 자라고, 눌림 속에서 자신의 생을 완성한다.

그 낮은 풀 한 포기가 가르쳐 준 사유는 오래 남는다.

삶은 때로 입 꼭 다문 견딤 속에서 가장 깊은 형태를 얻는다는 사실을.


올 한해도 내뱉지 못한 말들 많았겠지만

입 꼭 다물고 넘어가봅시다.


꼭 하셔야한다면 댓글로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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