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책길의 사유

by 원성진 화가

밤새 눈이 많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고, 오늘 아침은 눈이 올 것처럼 하늘이 낮게 내려앉은 겨울날이다. 공기 속에는 이미 하얀 기척이 섞여 있다. 홍제사거리 메가커피로 가는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걷는다. 여름에는 그토록 성실하게 그늘을 만들던 나무들이 지금은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잎을 모두 내려놓은 나무들은 설명을 멈춘 철학자처럼 침묵하고 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도 많은 말을 건다.


이 길에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떤 이는 빠르고, 어떤 이는 느리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이고, 어떤 이는 하늘을 본다. 대립된 태도들이 같은 공간에 놓여 있다. 탐구는 이런 장면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나를 택해 나머지를 지워버리기보다, 서로 다른 방향의 시선을 잠시 같은 프레임 안에 두고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 긴장은 그때 생긴다. 그 긴장은 불편하지만, 살아 있다. 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하는 탐구? 배움? 깨우침? 연구? 수행 이런 게 아닐까?


은행나무는 매해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매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계절은 반복되지만 동일하지 않다. 우리가 하는 탐구 역시 그렇다. 한 번 세운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실패로 여기지 않고, 다음 질문으로 이어가는 용기.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어느 하나로 급히 도망치지 않고 머무는 인내. 겨울 가로수길을 걷는 발걸음이 느려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른다.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고, 어쩌면 끝내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 흐린 하늘 아래에서 걷는 시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답을 얻지 못해도,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질문을 품은 채 걷는 이 순간 자체가 하나의 사유가 된다. 야스퍼스가 니체의 철학을 말할 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탐구란 그렇게, 계속해서 열려 있는 상태로 살아가는 일에 닮아 있다. 은행나무들이 아무 말 없이 그 사실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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