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9도. 추운 아침 모두들 출근을 하는 중에, 나는 혈압약 처방받으러 내과로 향했다. 병원 문을 여는 순간, 공기는 따뜻했지만, 많은 분들이 마스트를 하고 있어 갑자기 불안해졌다. 소독약 냄새는 늘 그렇듯 뭔가 기분 나쁘다.
아침에 집에서 혈압을 잴 때만 해도 평화로웠다. 카시오 혈압계 숫자들은 얌전했고, 나는 아직 괜찮은 인간으로 판정받았다. 그런데 병원에만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커프가 팔을 조이는 그 짧은 순간, 내 마음도 함께 쥐어짜진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혈압계 주의사항을 속으로 읽기도 하고, 헛기침도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기대를 배신한다. 숫자는 껑충 뛰어오르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이구 이 새가슴 쫄보야!" 극 소심함이 또 한 번 증명되는구나. 혹시 병원 혈압계가 유독 엄격한 성격을 가진 건 아닐까?
집에 있는 혈압계는 관대하다. 내가 만지기 전까지는 하루 종일, 어떤 날은 몇 날 며칠을 짱 박혀 쉬어서 그런가? 그래도 나는 내 혈압계를 믿기로 한다. 믿음이 건강에 이롭다는 나만의 민간요법도 함께.
의사는 의사의 언어로 말한다. 필요한 말만 정확히, 온도는 미지근하게. 살을 빼야 혈압이 조절됩니다. (172에 92킬로. 지극히 정상 아닌가?^^) 이 문장은 병원에서 늘 반복 재생되는 배경음악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음성이 들린다. 나이 들면 살이 조금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사람이 덜 바스러진다고 말하던 누군가의 목소리.
그래서 나는 결론을 하나 택했다. 살이 조금 있는 쪽이 편하다. 마음이 편하면 혈압도 언젠가는 알아서 내려오겠지. 편안함을 만병통치약처럼 믿어보기로 한다. 헛웃음과 함께.
카드로 결제를 하면, 약 처방전이 간호사 데스크 프린터에서 미끄러져 나온다. 그리고 덧붙인다.
병원 옆 약국을 나서며 약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숫자들은 여전히 제멋대로였지만, 월요일의 하늘은 생각보다 너그러웠다. 집에 돌아가 다시 혈압을 재면, 아마도 내 혈압계는 나를 이해해 줄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괜찮다고, 인생은 원래 이런 소소한 자기 합리화로 굴러간다고. 그렇게 믿는 편이, 확실히 건강에 좋다.
워낙 소심해서 글도 소심하다. ㅠㅠ 한번쯤은 좀 팍팍 !! 강하게, 진하게 쓰고 싶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