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어붙은 칼레의 겨울밤은

GRASS GREEN

by 원성진 화가

2024/12/22/16:00


파리에서 출발해 부지런히 달렸고, 루이뷔통 재단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긴 했지만, 프랑스의 겨울 해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지막 햇살이 뒷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숙소에 짐을 내린 후, 천천히 칼레의 색을 품는다.

프랑스 북부, 칼레에서 멀지 않은 작은 마을, 오픈 뉘르퀸(Ouve-Wirquin).
난 이곳을 그냥 칼레라고 부른다. 겨울이 오면 이곳은 마치 세상의 끝. 절벽처럼 느껴진다. 흐릿한 태양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는 듯 희미하고, 짧아진 낮은 빠르게 저물어 버린다. 해가 진 후, 마을은 숨을 죽인 채 거대한 적막 속으로 스며든다. 흔들림 없이 단단한 겨울은 마치 어떤 깊은 메시지를 품고 있는 듯하다. 그 속에서 나는 내면의 파동을 듣는다. 외부의 소음이 사라진 순간, 오직 나 자신과의 대화만이 남는다. 이곳에서의 밤은, 매일 왔었던 어둠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대화의 공명과도 같았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밤길을 운전하다 보면 가로등 불빛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마련인데, 이곳에서는 그조차도 미동이 없다. 가로등조차도 빛을 머금고 조용히 서 있을 뿐이다. 고요한 밤, 어디선가 잊힌 시간들이 되살아나는 듯한 감각.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기다림을 품은 조용한 긴장감이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의 겨울은 시간마저도 멈춘 듯하다. 그 순간의 정적 속에서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지나온 계절들, 스쳐간 얼굴들,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차가운 공기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멈춤을 허락하는 계절. 멈춤을 강제하는 계절. 우리는 살아가며 때때로 그러한 멈춤이 필요하다. 바람은 분명 세차게 몰아치지만, 이곳에서는 그조차 한계에 부딪힌 듯하다. 이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대면하고, 가장 솔직한 마음을 마주한다. 하이데거가 말한 ‘현존재(Dasein)’란 결국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의 자기 이해인데, 이 겨울의 정지는 바로 그 이해의 시작점이 된다. 과거와 미래의 시간들이 이 순간의 적막 속에서 교차하며, 나는 ‘현재’라는 장소에서 더 깊이 머물게 된다.

앞으로 이 밤은, 이 글 속에서 길게, 계속 반복될 것이다.


시간이 얼어붙은 칼레의 겨울밤은 마치 빙하의 거대한 조각처럼 깊고 고요하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고요함은 더욱 진해지고, 그 속에서 마음은 서서히 자신의 결을 찾아간다. 차가운 공기는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고, 그 안에서 잊고 지낸 감정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의 겨울은 시간의 정지이자, 사색의 깊이를 더하는 순간이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교차하는 접점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도 시간이라는 것이 직선적이고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적이고, 상호 의존적이기에, 현재에서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상상할 수 있어서 이렇게, 이 멈춤이 시작된 접점에서 사유가 일어나야만 현존재가 완성된다고 했다.


칼레의 겨울밤은 호흡이 멈춘 듯 깊고 고요하다. 평생을 쉼 없이 달려온 나에게 이곳의 적막은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다. 그러나 그 적막 속에서 나는 마치 오래된 사진을 마주하듯 내 안의 감각을 다시금 깨우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 정지된 어느 공간(어딘지 모르겠다) 속에서 오히려 나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10년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느 순간, 나의 붓질은 점점 게을러져 갔다. 하루하루의 게으름 속에서 나의 손끝이 전하는 감각이 점점 희미해졌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의 의미도 퇴색되어 갔다. 예술이 삶을 확장시키는 도구라면, 나는 오히려 삶에 갇혀버린 듯했다. 칼레의 겨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나는 알아냈다. 나는 내 삶을 살아왔던 것이 아니라, 단지 생존하고 있었음을. 인간 삶의 목표는 생존이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너무 싫다. 살기 위해 산다. 왜?

니체는 ‘삶을 사랑하는 자는 그 고통조차도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림을 사랑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사랑을 게을리할 이유도 많이 만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지만 지금, 이 고요 속에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 그림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왜 이토록 게을리해 왔는가? 그림을 사랑하지만 창작이 가지는 고통은 삼키기 싫은가? 그렇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지금 내뱉는 말들은 인간이 가지는 이중적, 다중적 내면의 복잡함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으로 상처가 되라고 찌르듯이 내게 묻는 말이다. 날카로움으로 찔러야 한다. 존재의 인식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살아오면서 정리되지 않는 명사나 형용사들이 싫어서 나만의 정의를 곧잘 한다. 그래야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있고, 머리가 가벼워진다. 예를 들어 내게 "행복"은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이다. 그리고 "달콤함"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침대 이불속에서 빗소리를 들을 때'다. 이렇게 명쾌해지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림에 대한 생각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만다.


그때, 숙소 전체가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정전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가득 채웠던 작은 빛들이 사라졌다. 순간, 나는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졌다. 정전이란 것이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이 예정된 대로 흐르지 않을 때, 그제야 우리는 본질적인 것을 마주한다. 빛이 있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것처럼.

혼란 속에서도 식사 준비를 계속했고, 나는 찰나에 사유를 이어갔다. 내 안에 있던 또 다른 어둠을 마주한 채. 어쩌면 나는 오래전부터 정전 속을 걷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가슴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었다. 힘든 하루 끝에 캔버스에 남긴 색, 그리고 내가 그렸던 수많은 선과 점들.

그 순간, 어둠이 하나의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더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전력 공급이 약하다는 사실을 바로 인지하고, 불필요한 전기코드를 뽑고, 차단기를 올려 문제는 바로 해결했다. 이후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 칼. 바람이 불었다.
바람도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낮게 깔려 흐르고, 모든 풍경이 정지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떠돌지만, 불빛도 침묵을 방해하지 못한다. 이 조용한 밤의 공기에는 겨울의 냉기가 서려 있고, 그 차가움 속에서 오히려 내면의 따뜻한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겨울이 내려앉은 이 마을에서는 고독조차 하나의 온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이곳의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라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고독이야 말로 진정한 자아 발견의 길이며, 이 적막이야말로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이다. 나는 다시 붓을 들어야 한다. 무뎌진 손끝으로라도, 흐려진 감각이라도, 다시 나를 찾아 나서야 한다.

밤이 깊어질수록 칼레의 겨울은 더욱 단단해진다. 시간을 초월한 듯한 깊은 결정을 품고 있는 단단함이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내 생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곳에서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날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시간임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침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겨울밤은 검은 잉크 속 같이 막막했지만, 내 안에는 새로운 장작이 무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삶이란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멈추고, 되묻고, 다시금 시작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시작할 것이다. 클러치를 밟고, 기어를 넣었다.


더.이.상. 아.침.을. 기.다.리.지. 않.겠.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온전히 살아내고 있다.



칼레의 겨울밤


시간이 얼어붙은 어둠 안에

고요가 깊어진다

암전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그 속에서 잊혔던 내가 나타난다.


고독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그 너머에는 나의 가장 깊은 곳

침묵 속에서도 튀어 오르는

내면의 파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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