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BLUE
2024/12/23/09:00
칼레의 아침은 통영 언덕 마을의 화려한 벽화 같았다. 옅은 푸른빛이 퍼지는 하늘 위로 하얀 구름이 부드럽게 흐르고, 아침 햇살은 도시를 VIOLET BLUE 빛으로 겹쳐가고 있었다. 길었던 밤의 시간 뒤에, 오늘 같은 아침은 마치 오랜 기다림 끝에 주어진 선물 같았다. 천천히 핸들을 왼쪽으로 돌려 로댕의 걸작, "칼레의 시민"이 자리한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주차장에 주차하고, 작품을 향해 다가가며, 이 작품이 지닌 이야기를 생각했다. 14세기 백년전쟁 중, 프랑스의 항구 도시 칼레는 잉글랜드 군의 포위 속에서 절망적인 시간을 견뎠다. 1347년, 기아와 고통에 지친 시민들은 마침내 항복을 결정했고, 에두아르 3세는 여섯 명의 시민이 목숨을 내놓는 조건으로 도시의 생명을 보전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죽음을 각오한 여섯 명은 맨발에 자루를 걸친 채, 목에 밧줄을 두르고 왕 앞에 나아갔다. 그러나 당시 임신 중인 왕비 필리파의 청으로 극적인 순간에 그들의 목숨은 구제되었다.
이들은 시민을 위해 죽음을 자청한 지도층은 의인들이기도 하지만, 인간애와 연대, 그리고 숭고한 용기의 상징으로 남았다. 이 이야기가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도 회자되고 있지만, 중요한 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다. 고통의 경험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과거 칼레 시민들이 겪었던 고통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윤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고통 앞에서 침묵하거나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
로댕은 이 역사적 순간을 조각으로 새겨 넣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인물들은, 절망과 두려움, 그리고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살아있는 이야기였다. 작품 앞에 서서 마치 시간의 경계를 넘어 그들과 마주한 듯했다. 이들의 굳게 다문 입술과 침묵 속에 담긴 결기에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한 "타자가 나에게 요구하는 책임"을 나타내고 있다. 그 순간은 타자 앞에서 느끼는 절대적 책임의 부름이며, 인간의 존엄과 윤리적 행위가 어떻게 공동체를 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를 포함한 서양 철학을 비판하고, 그의 삶에서도 독일군의 포로로 몇 년을 보내며, 인간의 도구적 이성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내고, 홀로코스트와 같은 회복 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를 직관하며, 인간의 자아초월을 통한 타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요구했다.
눈을 감았다.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새들의 지저귐이 공원의 정적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순간, 역사의 무게와 새벽의 신선한 공기가 하나로 섞이며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칼레의 아침은 화려한 하늘과 경건함으로 완성됐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그리고 인류의 사회 공동체에 대한 희망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서사였다. 이 사건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을 넘어선, 무한한 윤리적 책임이라고 했다. 책임은 내가 선택해서 지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존재가 나에게 요구할 때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가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봐야 할 사유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타자의 요구에 따른 책임질 수 있는 용기가.
다시 돌아올 칼레를 잠시 떠난다. 도버 해협을 건너기 위해 유로터널로 향했다. 도버 해협을 자동차와 함께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배를 타고 가는 방법이고, 나머지는 이렇게 터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출입국 절차는 영국이 EU국가가 아니라 여러 국가 간 출입국 절차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지만, 단지 자동차 안에 승차한 그대로 진행되는 점이 달랐다.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차 안의 공기 속에서, 이국적인 여정의 시작이 더욱 실감 났다.
마침내 자동차와 함께 기차에 올랐다. 해저를 가로지르는 35분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 안에는 묘한 설렘과 호기심이 깃들어 있었다. 같은 칸 앞쪽에 자리한 차량의 가족은 이 여행의 특별한 조연이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일곱 명정도 되는 많은 가족 구성원들이 차에서 내려 자동차 뒷문을 열고, 각종 음식을 펼쳐 나누는 모습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한 편의 짧은 콩트 같았다. 각자의 행동은 예행연습을 한 듯 깔끔했다. 그들의 행동과 손놀림은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터널을 지나며, 가장 어색하게 느껴야 했던 것은, 내가 해저라는 비일상적인 공간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차창 밖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감싸고 있는 깊은 바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다. 나는 지금 물살이 넘실대는 심연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해저터널이 존재하지만, 국경을 넘어가는 바다 아래를 달린다는 것이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그렇게 영국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특별한 여정의 재미있는 순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시계가 한 시간 뒤로 돌아가 있었다. 프랑스와 영국의 시차 덕분에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기분을 의도적으로 느껴야 했다. 마치 삶이 나에게 짧은 여유를 선물한 것 같았다. 그 순간, 내가 조금 더 젊어진 것 같은 착각을 강요받았다.
포크스톤에 도착하자, 영국은 기대한 만큼 어색한 인상으로 나를 맞았다. 도로의 좌측통행이라는 낯선 규칙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줄곧 오른쪽으로만 다니는 교통상황에 있었는데, 익숙지 않은 방향에서의 운전은 긴장을 불러왔다. 시내 주행을 하며 감각을 익히고자, 잠시 도버 해안 쪽으로 달렸다.
이내 눈앞에 펼쳐진 도버 해안의 절경이 모든 불안감을 잊게 해 주었다. 태양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는 백악질의 하얀 절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었다. 어쩌면 저 절벽은 달빛을 받아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대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창조한 웅장함 앞에서 감탄사도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어색함의 긴장은 계속된다.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공원을 지난다는 일행의 말을 듣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나 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래전 인간이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측정했던 이곳에서, 끝없는 탐구심과 시간의 의미를 새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통행 방향이 생각을 오래가지 못하게 했다. 마침내 런던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은 여정의 피로가 깊은 안도감과 같이 밀려왔다.
여행은 낯선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우리의 감각과 사고를 확장하는 특별한 여정이다. 오늘 하루 동안 아침의 찬란함에서 시작해,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자연의 웅장함과 인간의 지성을 마주했다. 이 모든 순간들이 서로 얽히고 겹쳐지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우리는 종종 여행을 특별한 사건으로만 생각하지만, 진정한 여행은 목적지가 아닌 과정 속에서 완성된다. 오늘 내가 만난 풍경과 경험들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고,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여행은 삶과 닮아 있다. 각각의 순간이 쌓여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히 각인된다. 오늘의 여정이 그러했듯, 앞으로의 모든 날들도 그러할 것이다. 여행이 하는 말을 주머니 깊숙이 넣고, 나는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런던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낮게 드리운 회색 빛으로 가득했다. 잿빛 구름이 도시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런던 나지막한 건물들의 감성과 특유의 중후한 매력이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공기는 차가웠고, 바람에는 축축한 습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속에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옅은 푸른빛이 번지는 하늘
VIOLET BLUE 햇살이 잠든 세상을 깨운다.
침묵 속에 선 여섯 개의 그림자
그들의 발 밑엔 쓰러지지 않기 위해 바늘이 꼽힌다.
굳게 다문 입술
무거운 눈빛 속에 깃든 의지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걸음
그것이 곧 인간의 존엄이라 믿는다.
희생의 결의는 결코 바람처럼 사라지지 않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침묵으로 말한다
연대의 손길이, 결기의 숨결이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 된다고
칼레의 아침은 지켜내야 한다
칼레의 전사와 같이
바늘을 밟고 살아내는 삶처럼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