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했다. 바위가 굴러들었다.

by 왕구리

또 다시 바위가 굴러들었다.


방 한켠에서 바라본 주방이 길게 뻗은 황토색 길이 되고,

길의 가장 끝 지점에서부터 큰 바위가 굴러오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 이후로는 간혹 한번씩 굴러오던 바위가 언젠가부터는 점점 작아져 돌맹이가 되었고,

결혼 후에는 가끔 무언가가 굴러올 것 같다는 느낌만 있었다.

그런데 십수년 만에 다시,

공황이 굴러들었다.



"이제 더 이상 며느리 역할은 안하기로 했어요."


그 말을 뱉은 지 벌써 2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나가는 지금도 한번씩 이런 질문을 가져본다.


'더 좋은 말은 없었을까?'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고, 십수년 동안 옹졸히 숨겨두었던 하찮은 분노를 쏟아냈다.

어머니는 이게 무슨 말인지 수십번 되물으며, 결국 뒷목을 잡고 쓰러졌다.


천륜을 끊는 것은 이 세상 누구도 하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실제로 당신의 삶에 펼쳐진 것에 대해 절망했다.


이 혼돈의 상황에서,

눈을 주방쪽으로 돌리기만 하면

몇초간 아득해지면서 묵직한 소리와 함께 공황이 굴러들었다.



천륜을 끊는 게 아니었다.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며느리지, 아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지 못하는 관계를 더는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천륜이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기도 했다.

천륜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삶 모든 곳 구석구석, 깊숙이 새겨지고 연결된 인연이다.

그래서 내린 선택이었다. 부모를 부모답게 바라보기 위한 선택.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일이 아님을 당신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버지의 누이들은 부모, 형제와 연을 끊고 지냈다.

잠시만 눈을 돌리고 약간만 깊이 들어보면,

가족 중 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럴 순 없다' 였을 것이다.

'감히 니가 이런 일을 벌이다니, 괘씸하다' 일 수도 있겠다.


이제껏 사고 한번 안치고, 말 잘듣고 착하고, 자기 할일을 스스로 알아서 잘 했던 둘째 아들의 처음 치고 너무 쎈 거부와 반항이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했으니,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테다.


며느리의 관계를 끊어내겠다고 했는데,

인간이자 한 여자의 삶을 이야기했는데,

그게 '가족'으로 묶여 아들의 관계까지 끊어내는 천륜을 저버린 막장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잔잔한 수면처럼 보이던 물에 커다란 바위를 던졌다.




나는,

용기를 냈다.

인생 처음으로 부모를 거절했다.

오롯이, 온전히 내 선택을 했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었다.

불안했다. 바위가 굴러들었다.

분노했다. 부모에 대한 애잔함과 동시에.

그리고 조금은.. 후련했다.



'가'족으로부터의 '감'정을 가감없이 기록하다. 가감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