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만난 나
F는 나에게 과제였다.
첫 번째 F는 해부학 시험이었다.
단순 암기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나는 물리치료학을 전공하면서 해부학 역시 이해해 보려고 시도했었다.
대학교 1학년생이 이해하기는 너무 깊고 방대한 내용이었던 해부학은 나에게 큰 시련이었다.
결국 1학년 1학기, 해부학 시험에서 나는 이해의 덫에 빠져 F학점을 맞게 된다.
웬만하면 D학점 이상을 주었던 교수님이 보기에도 너무 했던 거였겠지.
충격을 받은 난 모든 걸 이해하며 지나갈 수 없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암기를 잘하는 내가 되었을까?
딱 필요한 만큼 암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부족한 부분을 이해로 채우는 게 좋아졌다.
결국 지나고 보면 암기와 이해가 어우러져 내 것이 되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F는 기타였다.
기타는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일찌감치 기타를 선물 받아 놓고는 몇 년 동안 방치하다 고마운 분을 만나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기타가 좋은 평생 취미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기타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놈의 F코드.
F가 나를 가로막았다.
기타로 치겠노라고 좋아하는 노래를 고르면 꼭 F가 들어 있었다.
아무리 해도, 도저히 F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난 기타를 칠 수 없는 손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완벽하진 않지만 코드가 잡히고, 부족하지만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난 F를 잡기 위해 틈날 때마다 손 모양을 만들었다.
근육을 늘리고, 자세를 만들고, 머리와 몸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래서 성공한 F.
첫 F의 성공 후 3~4년이 흐른 지금까지 난 드문드문 기타를 친다.
지금 F를 완벽히 잡을 수 있게 되었을까?
완벽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못한다고 볼 수 없다.
연습한 만큼. 그러나 한번 배워버린 자전거처럼 몸이 기억하게 되었다.
세 번째 F는 지금이다.
영어 F발음은 일상에서 부끄럽고 유난처럼 느껴졌다.
영어가 나에게 필요의 사각지대에 있어서 그럴지도, 혹은 내가 영어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유독 F발음은 제대로 내는 게 참 이상했다.
굳이 F를 F로 말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없는 일상에서
F가 당연히 F인 미국에 왔고,
시차 적응도 하기 전에 크루즈를 타게 되었다.
무지한 영어라도 F를 F로 말해야 하는 환경에 던져진 것이다.
F가 F가 되었다.
그런데 내 F가 F던, P던 미국인들은 못 알아듣는다.
바뀐 건 나, 내 F가 P에서 F로 되었다는 것.
결국 내 마음과 의지의 결과였다.
미국 여행에 와서 무엇을 얻고 있을까?
사소한 F를 가지고 나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전의 나를 탐색하고, 과정을 탐구하고, 변화를 탐지한다.
난 분명히,
F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