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림

미국에서 만난 나

by 왕구리


높은 확률로 다시없을 미국 여행을 왔다.
우리가 머무는 조지아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디즈니 월드가 있다.
디즈니랜드가 모여 있는 디즈니월드라니.
9살이 된 아이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아이와 함께 유튜브도 보고, 검색도 해보면서 디즈니 월드에 대한 상상을 펼쳐 나갔다.
펼치면 펼칠수록, 본전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큰돈 들여 갔는데, 그만큼 즐기지 못하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다 우린 결국 디즈니크루즈를 선택했다.
아이는 디즈니월드던, 디즈니크루즈던 상관없이
사촌형아, 누나와 함께 라면 만사 오케이, 땡큐다.
이렇게 미국여행의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채 디즈니크루즈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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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그 판타지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돈.

디즈니는 자본주의의 끝이라고 익히 들어왔다.
크루즈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게 돈처럼 보였다.
크기로 압도하는 거대한 배 안 친절한 미소와 제스처로 무장한 사람들이 마치


어서 와~ (너의 돈을) 환영해~


라고 환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괜히, 정당한 값을 지불했음에도 뭔가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정말이지 모든 게 갖추어져 있었다.
끊임없이 먹을 수 있는 음료와 음식,
거대한 선상 위에서 반복 재생되는 영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프로그램과 이벤트,
한 편의 뮤지컬과 신나는 파티들.

무료와 유료를 교묘히 번갈아가도록 만들어진 크루즈는 멋진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충분한 판타지였다.
황홀한 세계로의 항해에 스며들어 우리 역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심 속으로 몇 번 생각했다.

돈이 좋긴 좋구나.

배를 반바퀴 도는 워터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와 선상에서 잠시 쉬는 중.
아들은 조카와 물놀이를 가고, 아내와 함께 선배드에 걸터앉아 잠시 쉬는 중이었다.
우리는 한 푼이라도 아껴보자고 외부에서 가져온 캔맥주를 들키면 안 된다는 듯 조심히 방에서 가져와
음료를 따라 마시는 컵을 두 개 들고 맥주를 부어 마셨다.
그 컵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직원에게 버렸다.
몸에는 커다란 타월이 둘러져 있었다. 그날 하루만 몇 개의 타월을 썼는지 모를 정도였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버린 우리는 어느새,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씹고, 뜯고, 즐기고 있었다.

돈이 편리하긴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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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불편했다.
평소 우리의 삶과 정반대에 가까운 경험은 우리에게 마음 한편의 죄책감으로 자리 잡았다.
종종, 간간히 우린 영화 슬픔의 삼각형을 떠올렸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누릴 건 누리지만 죄책감이라도 조금 덜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미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이 부분이다.
돈이 좋고, 돈이 편리하고, 힘이 센 나라에서 산다는 것에 대한 '누림'.
이 누림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기준에 많은 영향을 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앞으로 한 달.
누릴 건 누리되,
잡아먹히지 말자.
이게 지금의 내가 일상을 온전히 누려나가는 방법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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