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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간 Dec 22. 2021

부평은 알아도 평리단길은 모른다?

구(古)와 신(新)의 조화, 홈패션 거리의 변신




 부평 문화의 거리에 들어서 왼쪽으로 꺾어 들어오면 네모반듯한 옛 간판의 노포와 커피, 동그라미 모양의 간판들이 뒤섞여 보인다. 궁서체의 커튼 가게들이 줄줄이 모여있는 곳 위에는 홈패션거리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조금 더 들어오면 깔끔한 카페들이 1층, 2층 할 거 없이 들어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간 시간은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가 별로 없었다. 한두 바퀴 구경하고 나니 푸르스름한 하늘이 점점 밝아져 온다. 처음 문을 여는 가게들은 누빔 옷이나 수세미 등을 파는 노포들이다. 옷가지와 소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런 광경을 요즈음에 내가 본 적이 있었던가.




카페 거리 한가운데 노포

 점심시간이 다가오니 배가 슬슬 고파왔다.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예쁜 브런치 집은 왜 없나 속으로 생각하며 카페 사이 눈에 띄는 시골집이라는 노포 앞으로 갔다. 딱 봐도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자리를 지킨 가게였다. 들어서니 왼쪽엔 남자 둘이 "크으..." 소리를 내면서 찌개를 먹고 있었다. 오른쪽에선 젊은 여자 둘이 앉아 뜨끈한 뚝배기를 들이킨다. 신발을 벗고 앉아 메뉴를 주문하면서 사장님께 가게가 얼마나 된 곳이냐 여쭈어봤더니 20년은 더 된 곳이라 하신다.

 "평리단길이 생기기도 전이네요?"

 질문을 하니 이전에는 이 골목이 다 커튼 집이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가게를 한 바퀴 유심히 더 볼 수밖에 없었다. 배달을 나가는 걸 보아하니 요 근처에서 대부분 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회용 용기가 아닌 씻어 쓰는 그릇들로 조심히 넣어서 청록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들고 가신다. 대부분 노포로 배달을 가지만 청년들도 많이 시켜 먹는다고 하셨다.



 김치찌개 백반을 주문했다. 보글보글 끓여 나오는 김치찌개, 시큼하고 시원하니 예술이다. 먹다 보니 꽤 맵다. 내 앞의 남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먹는 이유가 있었다. 반찬들도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소시지와 무생채, 고추장아찌 무침까지. 평소 같았으면 소시지만 먹었을 초딩 입맛이지만 김치찌개 맛집임을 알아챈 덕분에 반찬들도 골고루 집어 먹어본다. 정말 다 맛있어서 이 반찬만으로도 한 끼 해결이겠다 싶었다. 6,500원이라는 가격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푸짐한 한 상이었다. 반찬도 먹어야 해서 김치찌개를 다 먹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배가 불러도 숟가락을 쉬이 놓을 수가 없었다. 




나 홀로 평리단길


 시골집에서 과식을 하고 옆으로 조금 걸으니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은색의 번쩍거리는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더즌 매터라는 카페, '여기 굉장히 힙해 보이는데?' 하며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마자 크고 달콤해 보이는 프레첼들이 잔뜩 있었다. 시골집에서 조금만 먹을 걸 후회하며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카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뒤로 넘어가 보니 공간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컨셉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미국 주택에 딸린 차고지다. 알아챘다는 뿌듯한 마음에 자리를 잡았는데 아, 1층은 포토존이었나 보다. 앉자마자 허리가 아파온다. 가방을 챙겨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갔던 시점이 크리스마스 즈음이라 반짝거리는 트리와 나 홀로 집에 포스터, 선물 꾸러미가 구석 모퉁이에 장식되어 있었다. 어릴 적 엄마를 기다리며 TV나 무료 영화로 자주 봤던 90년대 미국 크리스마스 영화가 떠올라 잠시 추억에 잠겼다.



 3층, 4층까지 구경해 보니 확실히 이 카페, 8-90년대 미국 감성에 진심이다. 뉴키즈 온 더 블록, MC해머 등등 그 시절 LP판이 벽면을 채우고 있고 하이즈 케첩, 팝콘 과자가 소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찬찬히 LP판을 구경하고 아메리카노를 들고 4층으로 올라갔다. 고소한 커피를 마시며 물끄러미 창문 너머의 평리단길을 바라봤다. 카페 거리 치고 건물들이 참 오래됐음이 눈에 들어온다. '이전에는 여기가 커튼 가게였다는 거지...' 이 카페 거리는 어쩌다가 만들어진 걸까 하는 작은 궁금증을 가지고 카페를 나오기 전 일하던 직원에게 이 카페는 얼마나 됐냐고 물었다. 약 두 달 정도밖에 안 된 신상 카페라고 하셨다. 또 평리단길을 검색해보면 모두가 알만한 와인바 '양복점', 파스타집 '빌라'와 더즌 매터가 모두 같은 사장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리단길을 키우신 분이 이분이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즌 매터를 유유히 나왔다.




아기자기 감성 골목

 뜨개질 방이 보인다. 3면이 실들로 가득했고 난로 앞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이 따듯해 보여 조용히 들어섰다. 목도리 뜨려고 왔냐 해서 멋쩍게 웃으며 색이 너무 예뻐서 구경하러 왔다고 했다. 자연스레 여긴 얼마나 된 가게냐고 물으니 사장님 두 분이 30년이네 50년이네 실랑이를 하신다. 이 건물은 50년이 넘었는데 자기네들이 들어온 건 30년도 더 됐다고 하신다. 와 오랜 세월이다.. '우리 엄마도 태어나기 전이네..' 그 시절엔 엄마가 시집보낼 딸의 손을 잡고 이곳에서 혼수 마련할 이불을 고르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겨울을 대비해 아기 목도리를 뜨고 있었겠지. 길고 긴 추억들이 실처럼 묶여있는 이 공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구경하다 수줍게 인사를 하고 그 옆에 브룸이라는 소품샵으로 갔다. 엔틱하고 요즘 감성이 물씬 나는 예쁜 액세서리와 머리띠, 부츠가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취향을 저격하는지 정말로 살 뻔했다. 


 나와서 조금 더 걸어봤다. 4면이 전부 커튼 가게인 사거리도 있다. 사람들은 꽤 많다. 노포들 사이사이에는 카페보단 소품샵들이 더 많다. 수세미 집 옆에 소품샵, 그 옆에 모자가게, 또 그 옆에 카페. 이 골목은 내 맘대로 아기자기 감성 골목이라 부르기로 했다. 주류는 바뀌어도 그 감성은 남아있는 느낌이다.




부평 사람들이 사랑하는 터줏대감 맛집


 거리를 두세 바퀴 걸으니 배도 꺼진 것 같다. 이 거리의 맛집을 물으니 말해줬던 그랩어비, 최근에 리모델링을 거쳐 깔끔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는 붉은 벽에 액자가 잔뜩 걸린 펍 같은 감성이었다면 이제는 미국 드라마에 나올 법한 힙한 패스트푸드점 같아졌달까. 연두색 네 잎 클로버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여러 수제버거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몰라 직원분께 여쭈어봤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나는 치폴레 비비큐로 결정, 평일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매장에는 나밖에 없었다. 따뜻한 수제버거가 나왔다. 피클 3개는 데코인가. 역시나 그랩어비 수제버거는 맛있었다. 꽤 오래 있었기도 하고 음식점은 많지 않은 평리단길에 터줏대감 같은 이미지란다. 맛까지 있으니 여전히 부평 사람들이 사랑하는 맛집으로 자리 잡은 이유가 다 있다.




 평리단길은 깨끗하고 잔잔하다. 술집이나 고깃집이 아닌 와인바와 재즈 펍이 들어서 있고 술보다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있는 거리다. 보통 이런 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확 올리거나, 신상 카페들이 구역을 다 먹어 노포를 밀어내기도 하는데 구(古)와 신(新)이 조화를 이루고 상생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사랑하는 이와 따뜻한 커피를, 맛있는 파스타를, 씁쓸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평리단길로 오는 건 어떨까.



ⓒ editor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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