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육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추운 날씨를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래서 대만에서는 살라고 하면 10년도 더 살 자신이 있지만 러시아의 겨울은 1주일도 힘들 것만 같다. 특히 요즘 한국 날씨는 변덕이 심해서 가을을 건너 뛰어 곧바로 겨울이 올 모양이다. 겨울이 오기 전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도 좋긴 하지만 이제 곧 마주 해야 할 추위 녀석은 해마나 만나는 녀석인데도 적응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부쩍 추워지는 날씨에 대만에서 먹던 소고기면이 떠 올랐다. 5년 넘게 살았던 곳을 2년 가까이 못 가고 있어서 이제는 그 기억도 희미해지려고 하는 그 맛이 문득 그리워졌다.
한 여름에 대만을 여행해 본 사람들이라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습하고 더운 대만도 11월이 되면 비교적 선선한 가을? 아닌 가을이 찾아온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가오슝의 11월은 여전히 여름 같고 두꺼운 긴팔을 입기에는 여전히 고온다습하지만 타이베이의 11월은 비교적 선선하기도 하고, 반팔을 입으면 춥기도 하다.
물론 적당히 차가운 날씨가 따뜻한 국물 있는 면요리 먹기에는 적합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기면 집은 안타깝게도? 1년 중 겨울이라고는 1 ~ 2주가 전부인 가오슝에 위치해 있다. 그곳은 지하철을 내려서 5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그 사이에 흐르는 땀 때문에 이미 기진맥진해서 직진 거리임에도 한 없이 길게만 느껴지지만 나는 그것을 알면서도 발길을 돌린다.
하루는 함께 중국어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이곳을 알려주고 데리고 갔던 날이었다. 1층에 다 같이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아서 2층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입구부터 온갖 촬영 장비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어느 한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는데 중국어 공부 때문에 열심히 봤던 대만 드라마에서 본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만의 유명 연예인이 이 근처에서 촬영을 끝내고 식사를 하러 온 곳이었다. (나는 괜히 뿌듯했다. 그래 여기 유명하지! 연예인도 오는 곳이었어. 뭐 이런 거다) 처음에는 식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렸는데 몇몇 현지인(직원들 포함)들은 굳이? 말을 안 붙이는 눈치였고 내 일행 중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듯했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서 안 되는 중국어와 영어롤 섞어 가면서 겨우 겨우 내 의사를 전달했고 다행히도 자기를 알아봐 주는 외국인이 고마웠는지 기분 좋게 촬영에 응해주었다.
이날 이후로 나는 이 가게 단골? 로 인정 받았다. 그날 나의 용기?를 직원들이 기억해 준 탓이다.
그리고 한 이모는 나름 단골 된지 꽤 되었는데도 여전히 내게 한글 메뉴판을 준다.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대략 계산을 해 보니까 대만에 사는 동안에 족히 100번 정도는 간 것 같다. 너무 좋아해서 혼자 먹으러 간 적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한국인이 가오슝 여행 오면 절때 빼먹지 않고 데리고 갔던 곳이다. 사실 대만 음식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이 많지만 이곳만큼은 그런 부담감? 에서 자유로웠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호불호 없이 인정받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쫄깃한 면도 면이지만 시원 담백하면서도 얼큰한 국물이 정말 일품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기억들이 떠 올라서 미칠 것만 같다.
한 번은 정말 친한 동생이 놀러 와서 첫날부터 데리고 갔는데 '다음날 점심 때 내가 뭐 먹을래?'라고 물어봤을 때 "어제 거기 또 가자!"라고 했을 때 느꼈던 기분이란!
그리고 꼭 먹어야 하는 망고 빙수까지!
더운 날씨지만 뜨거운 소고기면으로 속을 달래며 땀을 충분히 흘려준 후에 근처 망고 빙수 맛집에서 망고까지 뚝딱! 해치우면 대만을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다.
개인적으로 가오슝에서 먹었던 소고기면의 그 첫맛을 아직도 잊지 못해 지금도 내 마음속 1등 소고기면 집은 가오슝에 있지만, 그래도 1등이 있으면 2등도 있는 법이다. 2등은 타이베이 역 근처에 숨어 있는데 가끔은 내 마음속 2등 소고기면 집이 그리울 때가 있다. 정확히는 맛보다는 그 분위기가 그리운 듯하다.
타이베이의 11월은 한국의 서울처럼 적당히 가을 분위기가 나고 한 여름에 익숙했던 우리는 급격하게 추위를 느끼고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면 이곳을 찾아간다. 타이베이 역에서 조금 벗어나 골목길로 뒤 섞여 있는 곳에 있는데 골목을 돌고 다시 한번 더 돌아야 나오는 그곳. 그리고 환한 불빛과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겹쳐서 보일 때 정겨움이 있다.
한국의 포장마차 정도로 작은 공간이라서 갈 때마다 합석은 기본이고 항상 대기줄이 있지만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하고 소고기면을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국물은 더 달라고 하면 무한정 더 퍼주는 정이 있다. 그런데 그랬던 기억들이 어느덧 2년 전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코로나 시국에 이제는 그때의 기억들이 조금은 희미해져 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글로 남겨 본다. 그때의 기억이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