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 좋았던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아마도 30가지는 줄줄이 나열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5개만 꼽으라고 한다면? 조금 고민은 하겠지만 아마도 '온천은 꼭 포함시킬 것'이다. 대만에 살면서 좋았던 순간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냥'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하나씩 열거하자면 그중 하나가 바로 '온천'이다. 얼마나 좋았길래? 이렇게까지 말할까? 싶을 텐데 한마디로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 입꼬리가 올라가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는 못 가는 이 상황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글로서 아쉬움을 달래 본다.
<첫 번째 온천 나들이 '관쯔링 온천'>
가오슝에 살 때였다. 가오슝 지역에는 온천이 없어서 갈 기회가 없었는데 한 번은 그곳에서 알게 된 한국분이 다녀온 이야기에 혹해서 가게 된 곳이 '관쯔링 온천'이었다. 타이난보다 약간 윗 지역에 위치한 '자이시'에 위치해 있었는데 가오슝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에 한번 더 환승해야 도착할 정도로 대중교통으로 가기가 쉽지는 않은 곳이었다. 집을 떠난 지 무려 약 2시간 30분이 걸려서 도착을 했는데 정작 온천은 1시간 만에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특히 이곳은 머드 온천이 유명했는데 혼자 가서였을까? 얼굴에 바른 머드가 마르는 시간조차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때만 해도 온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던 것 같다.
<유황온천 맛집 '스파이 역 황지 온천' - 식사과 노래방도 있는 곳 ->
타이베이로 이사 후에 본격적으로 온천에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온천이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베이터우 온천'이다. 그러나 베이터우는 여행객들을 위한 고급 호텔 형태의 온천이라면 '황지 온천' 은 현지인들이 동네 목욕탕 가듯이 찾는 곳이다. 나도 이곳을 다니면서 유황 온천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스파이는 대만을 한 번이라도 여행했던 한국인이라면 방문했을 '스린 야시장'에서 3개 역을 더 가면 위치해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온천이다. 지하철을 내려서 산속으로 가는 버스를 한번 더 타야 하지만 다른 온천에 비하면 접근성이 좋고 물도 좋다고 현지인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소문이 난 곳인데, 이제는 제법 많이 알고 찾아오는 곳이 되어버려서 가끔 가슴에 털이 북 실한 유럽, 아랍 친구들도 종종 보이는 편이다.
나는 타이베이에 사는 약 2년 동안 이곳의 온천을 무척이나 애용했었다. 이곳 온천들은 대부분 할인 쿠폰(10장 묶음을 30 ~ 50%까지 할인) 판매하는데, 이것도 매일 파는 것이 아니라서 날짜를 잘 맞춰서 가야 구매할 수 있다. 이 할인 쿠폰을 잘 이용하면 평일에 약 5 ~ 6,000원 가격으로 유황 노천탕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8,000원 정도를 추가하면 온천이 끝난 후에 곧바로 자연 속에서 식사도 가능하고 단체로 가면 노래방 이용도 가능한 한마디로 놀고먹기 좋은 곳이었다.
<평범한 목욕탕 같았던 '우라이 탄산 온천'>
우라이 온천(여기도 배틀 트립에 나왔다는)은 원주민들의 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은 타이베이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서 또다시 버스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는 아주 '외곽 + 산속'에 있어서 자주 가지는 못 했던 곳이다. 무엇보다 우라이 온천의 특징인 '무색무취' 온천은 내 취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라이 온천 성분이 피부에 좋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저 목욕탕 욕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밖에 받지 못했다. 하지만 유황 특유의 계란 썩은 냄새?를 싫어하는 분에게는 오히려 잘 맞을 수도 있다. 아, 그리고 이곳은 스파이처럼 대중탕 개념보다는 개인탕(메인 사진 참고) 위주로 되어 있어서 '대만 커플들에게 인기 데이트 장소' 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남자끼리 가면 오해? 를 할지도 모르지만 아, 대만은 그리 신경 쓰지 않으니 괜찮겠다.
<우라이 온천은 온천보다는 라오지에(옛 거리) 걷는 맛으로 간다. 아참 대만 떡은 아주 야무져서 오래 씹어줘야 한다 >
<이란시 인근 '쑤아오 역 레이크 소어 호텔'>
타이베이에서 버스 혹은 기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이란이라 불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파주?) 대만스러움이 묻어나는 지역이 있다. 정확히는 이란을 중심으로 쟈오 시 온천이 더 유명한데, 오늘은 이란시 안에 수아 오역 근처에 있는 온천 호텔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온천 호텔에서 1박은 이때가 유일했는데 호캉스가 뭔지 제대로 경험했던 날이었다. 온천에 몸을 담근 후에 숨이 막힐 즈음이면 간단하게 씻고 그대로 침대에 누우면 침대에 마약이라도 뿌렸는지 아니면 자석이 끌어당기는지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포근함을 느꼈었다. 시간이 된다면 베이토우보다 물 좋고 조용하고 가격도 좀 더 저렴한 이곳을 추천해 주고 싶다.
<전 세계 딱 세나라에만 있는 '해수 온천'>
해수 온천은 말 그대로 바닷물과 온천이 만나 생기는 뭐 암튼 전 세계 3개 나라에만 있을 정도로 진귀한 온천이다. 아쉬운 점은 타이베이에서도 기차로 5시간(혹은 비행기)을 달린 후에 녹도라 불리는 섬까지 배를 타야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는 여정이 길어서, 단기간 방문하는 여행객이 가기엔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나는 1박 2일로 다녀왔는데 온천의 경우는 남녀가 구분 없이 입장을 해야 하기에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불편함? 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리고 온천물에 계란을 삶아 먹을 수 있도록 날달걀을 팔아서 기대를 잔뜩 품고 계란을 삶아서 먹는데 식혜가 없었다.(아차, 여기는 대만이니까) 3개쯤 되니 먹기가 싫었지만 버리기도 아까워서 막힌 목을 부여잡고 삼킬 수밖에 없었던 여러 모로 아쉬웠던 경험이었지만 녹도 여행 자체는 작은 섬마을이 주는 여흥은 아직도 그대로이다.
<출처 : EBS, 이른 아침 도착하면 온천을 하면서 바다와 일출을 볼 수 있다>
- 온천하기 좋은 날 -
내가 온천을 선호하는 시간대는 오후 늦은 4시 ~ 5시이다. 아무리 온천이 좋아도 한 여름 낮 시간에는 따가운 햇볕을 그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실내가 아닌 노천에서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오후 4시 정도가 넘어가면 온도가 조금씩 떨어지고 10월 전후로는 비교적 선선한 상태에서 노천을 즐길 수 있다. 추우면 탕으로 더우면 다시 밖으로 나와서 준비해 둔 커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것이다. 몸을 충분히 담근 후에 잠깐 밖에 나와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시선을 위로 향하면 푸른 하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이때 기분이 정말이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신선들이 이렇게 휴식을 취하지 않았을까?라고 살며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물이 지겨우면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들어가면 며칠 쌓인 피로와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잠시나마 일상을 벗어난 기분을 주는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비가 오는 날에 온천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비가 오늘날엔
노천에서 몸을 담그고 있을 때 비가 내리면 감성이 충만해진다. 외출 중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옷이 젖을까 봐 걱정을 하지만 어차피 샤워를 할터이니 비가 몸에 닿는 것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피부에 비가 한없이 닿는 것이 시원할 따름이다. 특히 스파이는 24시간 운영을 하기에 가끔은 늦은 밤 시간에 가고는 했는데 낮에 비해 사람도 없고 바깥 온도도 산속 바람으로 시원해서 안은 하체는 뜨끈하게 상체는 시원하게 자연의 소리를 즐기며 몸을 휴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밤이라서 온천을 하면서 자연경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야간 온천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심야에 온천을 끝낸 후 온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여는 순간 머릿속에 아래와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 아, 이 문이 방문이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