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대만에서 맞이하며 드는 생각들.
199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 매주 일요일에 눈을 뜨면 하는 일이 TV를 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디즈니 만화를 그리고 오후에는 순수 한국 만화 (머털 도사, 은비 까비, 날아라 슈퍼보드 등등)를 챙겨보고는 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재미없게 봤지만 제목 때문에 더욱 잊을 수 없는 만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원더 키디(네이버 검색하니까 나오네?)라는 2020년을 배경으로 하는 당시에는 아주 먼 미래를 표현한 만화 영화였다.
제일 재미없게 봤다는 표현의 의미는 그 당시 만화 영화의 배경이 2020년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현실감이 없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머털 도사나 말하는 원숭이와 돼지가 등장하는 슈퍼보드가 더 비현실적이지만) 그 당시 나는 아직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만화 속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그 당시에는 현실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12월 24일 밤에는 오지도 않을 산타 할아버지를 순수하게 기다리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2020년이라는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시간이었다.
유년 시절이 지난 후에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에는 지구 종말설이 돌기 시작했다. 유년 시절의 상상력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였을까? 나에게 지구 종말설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고 사실 그때부터 버킷 리스트라는 것을 적기 시작했다. 다만 그때 적었던 버킷 리스트들은 지구 종말설만큼이나 꽤나 터무니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사춘기 소년의 반항이 가득 담긴 것들뿐)
그리고 지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2020년이라는 시간이 현실로 다가왔고 나는 그 시간을 주제 삼아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시간 기준으로는 아직 25시간 정도를 남겨두고 있지만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나는 다른 한 해를 살게 될 것이다.
2002년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던 해 나는 수능을 앞둔 고3이었다. 지구 종말설이 안타깝게도 빗나가는 바람에? 한국에서 월드컵은 무사하게 개최되었고 한국 역사에 기적과도 같은 시간을 함께 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이러다 2020년이 진짜 올지도 모르겠구나.라는 터무니없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여전히 미성년자 신분이었고 해외여행은 사치라는 사회적 분위기(저가 항공도 없던 시절)가 더 강했던 시절. 2020년을 대만에서 맞이하게 될 줄은 그 당시는 물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2020년을 대만에서 맞이하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대만이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왜 좋은지에 대해서 많이 써 볼 계획이다)
꼭 대만이 아니었더라도 2020년이라는 숫자가 가져다주는 느낌은 나를 설레게 만든다. 2020이라는 숫자 자체가 뭔가 먼 과거에서 먼 미래에 도착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어릴 적 상상만 해오던 먼 미래의 시간이 현재가 되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과 그 공간이 내가 좋아하는 대만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2020년 경자년' 은 무엇보다 나의 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웹툰 작가 기안 84랑 같은 84년생이다.
1990년 격변의 시기를 겪던 대한민국에서 30년 후 세상을 만화 영화에서만 보던 꼬마 아이가 지금은 몇 년 후에 40대 진급을 앞두고 있다. 만으로 깎으면 그래도 아직 4년이라는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주제와 동 떨어지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서론이 꽤나 길었다.
사실 위에 쓴 내용 때문에 제목을 좀 바꿔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사실 그러고 싶지는 않다.
사실 서론이 길었던 이유는 내가 적은 주제에 반박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외롭지만 사실 외롭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왜 주제를 저렇게 정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하자면
내가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물론 그분들은 진심으로 내가 걱정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해외에서 새해맞이가 몇 번만 더 하면 열 번을 채울 수 있다. 힘들고 외로웠다면 진작 한국에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1년 혹은 반년도 못 버티고 향수병으로 혹은 개인적인 여러 문제로 귀국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보신 분들의 경우는 '한국을 떠나 있는 것만으로도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듯하다. 사실 그건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까 반년도 못 버티고 귀국하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몇 년째 꿋꿋이 버티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에서의 생활과는 다르게 대만에서는 나는 남들 쉴 때 일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날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이 바쁘다. 물론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건 내가 타지에 있어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로움' 일 것이다.
내가 한국에 있어도 불현듯 찾아오는 그런 외로움 말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 후에 혼자 집에 갈 때 느끼는 감정 혹은 가끔은 누가 옆에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외롭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를 적으라면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그 말은 늘 바쁘게 좀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하루하루를 허투루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해야 할 일들이 대만과 관련된 것도 있고 그중에 하나는 꾸준히 브런치를 글을 쓰는 것도 포함이 되어 있다. 2018년. 브런치 작가의 자격을 갖추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발행한 것은 2019년 1월부터 디. 본업이 있고 본업 이외도 대만에서 학교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고 가끔 방송국에서 섭외 요청이 들어오면 절대 거절하지 않기에 글쓰기에만 집중 하지는 못 했지만 오늘 세어보니 총 12편의 글을 발행했다. 그래도 나름 월평균 1번은 발행한 셈이다. 그리고 아직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글들이 약 10편 남짓 되니 2021년이 올 때쯤이면 나의 브런치 속 이야기도 나름 풍성해질 듯하다.
<외롭지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순간 외로웠던 순간들>
12월의 마지막 날.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나니 새해가 약 2시간 정도 남았다. 그저 서야 점심도 저녁도 아닌 하루의 첫끼를 해결하고 또다시 내일 영업을 위해서 마무리를 하고 길을 나서니 시간이 11시 30분을 넘어섯다. 새해맞이에 대한 특별한 계획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이렇게 맞이하는 새해라? 한국에 있을 때는 그래도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에 가서 같이 10을 거꾸로 세기도 하고 퇴근 후에 집에서 영화 한 편 보면서 느긋한 새해를 맞이 했는데 뭔가 지친 하루를 마치고 지하철 안으로 걸어가는 그 시간에 약간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면서 새해를 맞이 했다. 그나마 위로가 되었던 사실은 지하철 안에 나 말고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새해를 맞이한다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시차로 인해 한국보다 새해를 1시간 늦게 맞이하는 것 정도? 사실 처음에는 새해를 2번 맞이하는 기분이 들어서 좀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해마다 반복이 되니 무뎌져서 특별함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언제부턴가 내 머릿속에는 1월 1일 영업을 준비하는 일로 가득할 뿐이다.
업무 특성상 남들 쉴 때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내일도 꽤나 바쁠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동시에 적응력이 빠른 동물이다. 추우면 추운 곳에 적응하게 되고 더우면 더운 곳에 적응하는 것처럼 작은 온도 변화에 쉽게 폐사하는 물고기 같은 생물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적응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외로움인 듯하다. (외로움을 크거나 길어지면 그 시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슬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 또한 즐길 수 있다면 즐기기를 권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소외되고 이야기할 대상이 없다면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특히나 해외에서 살게 되면 딱 그런 환경에 놓이기 쉽다. 게다가 말까지 안 통하니 '외로움 + 답답함' 감정은 사람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특히나 한국에서 가족이 있는데 혼자 오게 되는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그 사례의 부작용은 대부분은 뉴스나 이야기를 통해서 한 번씩은 접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자세히 적지는 않으련다. 나의 경우는 내 두 눈으로 본 것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와 닿기도 하다. 그나마 나는 미혼이었고 셰어 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살았기 때문에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단 하루도 외롭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건 필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전체를 봤을 때는 큰 문제는 없다.
한국어를 할 수 없으면 답답함을 호소하기에 앞서 부족한 내 중국어 실력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며 답답함을 극복했고 외로움은 셰어 하우스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최근에는 많은 지인들이 대만을 여행하면서 나에게도 연락을 주는 덕분에 하루하루가 정신이 없다. 게다가 대만에서는 인근 동남아 국가가 3시간 이내이기 때문에 나는 종종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일정은 내 마음대로이다. 남들 놀 때 실컷 일 했으니 남들 일 할 때 나는 내 시간을 갖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 찾아보길 바란다. 내가 외로울 틈이 어디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