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약을 마친 후에.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수도라고 불리는 도시의 물가'는 꽤나 사악하다. 이는 서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뉴스에 나오는 1인분에 2만 원 가까이하는 삼겹살집이며, 한 그릇에 16,000원짜리 냉면 가게들이 대게 서울이니까.
냉면이야 안 먹으면 그만이고, 삼겹살이야 2인분 먹을 거 1인분만 먹으면 된다. 그러나 의식주에서 주(住)에 해당하는 집은 어느 정도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마지노선이 나름 존재한다. 그리고 나에게 그 마지노선은 지상 1층부터였고, 가급적이면 '동물원과 다를 바 없는 원룸'보다는 작더라도 주방이 분리된 집이었다. 어쩌면, 원하는 것이 많아서였을까? 내가 찾는 조건의 월세는 아르바이트생들의 시급처럼 올라가 버렸다.
"포기할 것인가? 예산을 올릴 것인가?" 선택지 사이에서 수십 번도 고민하던 찰나에 꽤 괜찮은 매물들을 몇번 놓친 끝에 이번에는 부동산 어플에 올라온 지 1시간도 안 된 어느 집을 발견했다. 다만 집주인이 원하는 3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했는데 다행히 나는 3가지 모두 충족했고 그렇게 계약한 집이 바로 지금의 집이다.
직장인이어야 할 것
반려동물 금지
非흡연자 (정확히는 실내 흡연 時 퇴실이었다)
75만원, 내 월급이 300만 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실 수령액이 225만 원이라고 생각하거나 부업을 통해서 월세만큼의 추가 소득을 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서울에서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이곳 특히 잠실을 끼고 있는 이 동네에서 75만 원짜리 집은 품귀했음에도, 5만 원만 더 깎아줬으면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러나 눈치 빠른 부동산 중개인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여기는 지금 80만 원에 내놓아도 바로 나갑니다.
나는 달리 반박하지 앉았.. 아니, 못했다. 그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는 지난 2개월 동안 열심히 검색을 하며 쌓인 데이터였다. 아마, 내가 아니어도 이 집은 금방 나갈 것이었다. 서울에서 이 금액은 분명 저렴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 금액이 사실상 시작점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장바구니에 담아 놓고 3시간 내로 연락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자친구는 썩,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 이유에는 과도한 고정비 지출에 대한 속상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물리적 거리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만나게 된 사이에서, 이제는 지하철로 2시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하겠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물론 여자친구와 1시간 거리이면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던 연남과 망원동을 고려했었으나, 시세는 별반 다르지 않았기에 그렇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결국 나는 걸어서 출근할 수 있는 이 동네를 선택했다. 그동안 출퇴근을 위해 하루 4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던 나는 지하철 역만 봐도 뒷골이 땡길 지경이었다.
게다가 파주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면서 발생하는 차비만도 매달 10만 원 남짓이었는데, 차라리 이를 절약하여 월세에 보태면 75만원이 결코 비싸지 않다고 위안 삼기로 했다.
결정을 내린 나는 곧바로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계약금 100만 원을 건네었고 그렇게 가계약을 마쳤다. 앞으로 매달 75만 원이 사라질 생각을 하면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대신 '피로감을 줄이고 시간을 확보하는 투자'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사할 생각에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에 더 들떠 있었다.
얻은 것과 포기한 것
새로 이사한 집은 방이 2개짜리였고, 나름 거실과 주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통 큰 창문과 초대형 냉장고였다. (특히 집밥을 좋아하는 나에게 필수품이었다) 반대로 아쉬운 사실은 주차 공간과 층수였다. 이전 집은 7층 건물에서 6층이었고, 작지만 베란다와 2 ~ 3명이 고기를 구워 먹어도 될 정도의 테라스가 있었다. 높은 층수와 지리적 특성상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달라졌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오면서 비가 오는 날 창 밖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고기를 구워 먹는 낙은 포기해야만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서울의 삶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불과 1km 반경 내 같은 동네에서도 누군가는 반지하에 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수십억이 넘는 집에 살고 있기도 하다. 뒤에 가서 다루겠지만 '반지하' 또한 누군가에게 소중한 보금자리겠지만, 나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주거의 마지노선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괜찮다. 좋은 집주인을 만났고, 전입 신고도 마쳤다. 그렇다! 난 이제 송파구 방이동 주민이 된 것이다. 게다가 걸어서 1분이면 펼쳐지는 방이 전통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그래도 서울 한가운데 내가 살아가면서 숨 쉴 틈 정도는 곳곳에 보여서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나름 여러 번의 이사로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 조금은 더 높은 층으로 올라갈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