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지금은 조금 올랐지만.
만약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한다면, 이사를 끝낸후에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할까? 나의 경우는 가장 가까운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을 시킨다. 그리고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준 지인이 있다면 탕수육도 함께 말이다. "왜, 꼭 짜장면이어야 해?"라고 묻는다면, 딱히 술술 떠 오르는 이유는 없다. 그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기도 하고, 짜장면 특유의 미끌미끌한 면발은 "일이 술술 잘 풀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하지만 크게 그런 것들을 믿어서는 아니다.
그냥, 이삿날만큼은 화려한 식사보다는 조금은 일상에서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음식들과, 소박하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정리하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곳에서 천천히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과 마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짜장면을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천천히 동네 '정찰'을 준비한다. 통풍이 잘 되는 편한 옷차림에 가볍게 운동화 끈을 맨 채로. 이는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사러 나가기 위함도 있겠지만, 앞으로 내가 자주 다녀야 할 길목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두기 위함이다.
집 근처에는 절대 없다던 그 집 발견
유튜브에서 맛집 관련 된 영상 댓글들을 보면 가장 공감되는 댓글이 "이런 집은 꼭 근처에는 없더라"였다. "정말이지, 도대체 저렇게 싸고 맛있는 집은 왜 멀리 있는 거야?"라는 아쉬움이 일곤 했었는데, 그 영상에서나 보던 그 집 중 한 집이, 이번에 이사한 곳에서 걸어서 불과 1분 거리에 있었다.
나름 적잖게 이사를 해 봤지만 매체로만 보던 가게가 집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신기했다. 마치, 영화 촬영을 하는 연예인을 발견한 부산 촌놈처럼 말이다. 그것도 서울 강남권에 속해 있는 송파구에서 3,500원 하는 백반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는 사실은 더욱더 놀라울 따름이었다.
가격이 저렴한 진짜 이유
지나갈 때마다 이렇게나 싸게 파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혼자서 추측만 할 뿐,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던 어느 날. 하루는 양손에 과일을 들고 있는 어느 아저씨와 사장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순간, 나는 멈칫하며 발걸음의 속도를 늦추었다.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 분의 대화를 파악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저씨는 혼자 식당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을 보며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과일을 사 오신 손님이셨던 것이다. 그런 손님에게 감사해하면서도 사장님은 약간은 화가 나신 듯한 어머니 같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서 10년 넘게 음식 가격을 안 올렸다가, 최근에 물가가 너무 올라서 올릴 수밖에 없었어. 그래도 건물주가 월세 안 올리고, 나 혼자 운영하니까 찾아오는 손님들 생각에 하는 거야"
투박한 말투 속에서 사장님의 진심이 지나가는 나에게까지 전달이 되었다. 실제로 영상 속 인터뷰에서도 비슷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돈을 버는 게 목적은 아니시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한 번쯤은 '한 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퇴근 후 이곳의 식당 문을 열었다. '드르륵' 하고 열리는 미닫이 문. 그러나 사장님은 손님이 와도 주방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셨고, 한동안 기다리다 나는 소심하지 않은 척 큰 소리로 외쳤다!
"사장님, 여기 우렁 청국장 하나 주세요 ~"
주방에서는 별 다른 대답은 없었으나, 곧이어 삼첩 반상과 함께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고깃집 가면 볼 수 있는 3단 종지 그릇에 콩나물과 취나물 그리고 갓김치가 조금씩 담겨 나왔고, 작은 뚝배기와 삐뚤 삐뚤 퍼올린 밥 한 공기는 정갈하면서도 소박했다. 그리고 그때의 식사가 이곳에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이기도 했다.
굳이 이유를 언급하자면 가격은 저렴했지만, 내가 집에서 좋아하는 애호박과 두부를 넣고 조금 더 푸짐하게 끓여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별개로 맛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에 있기에 옳고 그름은 없다. 다만 서울 시내에서 이러한 가격으로 백반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사장님이 조금 무뚝뚝해 보여도 그 속내는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지나가는 길에 귀동냥을 통해서 확인했기에, 내가 사는 곳 근처에 이런 식당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이 같이 따뜻해지고는 한다. 그래서 난 이곳이 계속 누군가 찾아오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찾아오면, 사장님이 힘드실 테니까, 너무 많이는 말고 적당히. 그러다 손님이 너무 없어 보일 때는 나 같은 동네 주민이 채워주면 되니까 말이다.
2025년, 이곳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10년 넘게 유지하던 가격 인상을 하셨다. 이유는 위에 언급한 대로 피할 수 없는 물가 상승이었다. 그리고 가게는 더욱 넓어졌지만 여전히 직원을 두지 않고 장사를 하고 계신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살짝 빨라지신 것 같은데, 요즘에는 저녁 7시만 되어도 의자를 테이블에 하나도 개씩 올리며 문 닫을 준비를 하신다. 그래도 올려진 의자 사이사이로 식사 중인 분들이 계신 것을 보면, 배고픈 사람들을 빈 속으로 돌려보내시지는 않는 것 같다.
문득, 몇 번을 돌려봤던 일본 영화 '심야 식당'이 생각이 난다. 이곳도 영화 속 '심야 식당'처럼 조금 더 늦은 시간 까지는 아니어도 배고픈 사람들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도록 오래오래 운영해 주셨으면 한다. 이 동네가 갓 나온 청국장처럼 구수하고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