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집 계약은 3개월 후 만료된다.
평소처럼 안면 인증으로 출석하는 기계 앞에 서 있는데, '유효기간 만료' 경고등이 켜졌다.' 8월에 만료인 건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4일 자로 만료된 것이다.
지난달부터 헬스장을 바꿀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도 전. 연장이라는 기로에서, 관장님은 "계속 다니시는 거죠?" 천연덕스럽게 물었고, 나는 별 다른 선택지 없이 "네 ~^^"라고 답해 버리고 말았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쉽사리 내 진심을 내뱉지 못하는 태도', 꼭 거절이 아니어도, "아, 어쩌죠? 저 이사해요 ~ 혹은 2주만 좀 쉬려고요"라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할 줄 아는 뻔뻔함은 타고나질 못 한 듯하다.
결국 1년 더 연장을 해 버리고 말았다.
1년 회원권, 36만 원
한 달로 계산하면 3만 원. 하루 990원 꼴로 이용이 가능하니 결코 비싼 금액은 아니었다. 게다가 16kg를 감량하는 고통스러운 영광을 함께했고, 건강을 되찾으며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눈에 띄게 달라졌으니 나름 값어치는 해낸 곳이다.
그럼에도 '떠나고 싶은 이유와 익숙함 사이'에서 고민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오래된 연인들이 권태기가 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
떠나고 싶었던 이유
가장 큰 이유는 '위생 관리'의 문제였다. 사실상 직원 없이 혼자 운영해서였을까? 아니면, 저렴한 가격 때문이었을까?
헬스장은 먼지로, 샤워실은 늘 물때로.. 가득했다.
특히, 지하 1층이었기에 습기로 인해서 더욱 곰팡이가 서식하기 좋은 그런 곳에서, 때로는 바닥에 10cm 정도 공중부양 상태로 샤워를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환기 지옥'인 셈이다.
내가 1년 동안 이곳을 240일 정도 온다고 가정하면, 하루에 1시간씩 총 240시간 그러니까 꼬박 10일을 지하에 갇혀 지내는 셈이었다.
그래도 결국 연장을 한 이유는 '저렴한 가격'과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었다. '샤워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땀이 나지 않을 거리'가 허용되는 최대 거리였다.
하지만, 떠나지 못한 이유
스마트폰이 세상에 보급된 이후, 스몸비(스마트 좀비) 현상은 이제 깊이 뿌리내려 뽑아내기 힘들 지경이 되어 버렸다. (내 기준, 헬스장 꼴불견 1위!) 그럼에도 다른 헬스장에 비해서 회원수가 압도적으로 적었기에..? (응? 이게 뭔..)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데,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는 게 연장의 이유이기도 했다. 게다가, PT를 강요하는 직원도 없는, 화려한 의상으로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들도 없는.. 관장님 혼자서 운영하는 소박한 '동네 헬스장'이었다.
특히, 밤 10시가 되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여드는 아줌마들 덕분에 쇳소리 외에도, 사람 소리가 들리는 곳이었다. 그들의 대화 주제는 건강부터 자녀 걱정까지 그 범위가 측정이 안 될 정도였다. 어느샌가 동네 복덕방 같은 푸근함에 약간의 정겨움이 느껴졌다. 어느 날부터 저분들은 "처음부터 아는 사이였을까? 아니면, 여기서 친해진 사이일까?"라는 궁금증은 1년째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올림픽 공원에서 훈련을 하는 서울시청 여자 핸드볼팀이 가끔 운동을 하러 오기도 하는데, 분위기에 괜히 압도당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피하고는 한다.
또한, 저작권을 이유로 365일 똑같은 음악이 지겨울 때도 있지만 걸어서 2 ~ 3분 거리에 있는 유일한 헬스장이기에 미워도 소중하다. 문득, 나 같은 사람들이 계속 연장을 해야 사장님도 이 공간을 유지할 동력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은 그렇다. 이 세상에 이상적인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을 안다면, 헬스장이라는 공간 내에서 스쳐 지나갈 사람들과 환경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에, 신체 단련에만 집중하면서 더 높이 날아오를 생각만 하자. 그럼에도 시간은 부족하니까.
월세 만료 3개월 전
헬스장을 재등록하면서, 생각해 보니 지금 사는 집도 어느덧 계약 기간을 3개월 앞두고 있다. 아차, 설마 집주인이 나가주세요!라고.. 하지는 않겠지? 당연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마음 한편이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입자의 신세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이사에 대한 고민도 잊고, 이곳에서 더 살 생각으로 헬스장도 연장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내일은 넌지시 여쭤봐야겠다.
저, 조금 더 살아도 괜찮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