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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햇살 '지상과 지하사이' (반지하에 대한 고찰)

빛과 어둠의 경계. 같은 하늘 다른 빛.

by 타이완짹슨
'건축물에서, 절반쯤이 지면 아래에 있는 공간'

다름 아닌 '반지하의 사전적 의미'이다. 그 어떤 감정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사전이라는 역할 그 자체에 충실한 설명.

하지만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되는 반지하는 '한국 사회의 빈곤, 계층 격차를' 전 세계로 적나라하게 노출시켜 주었고, 덕분에 대만에 거주하던 시절 한국에 관심 많은 대만 친구들에게 반지하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곤 했었다. (근데... 어쩌지? 나도 살아본 적은 없어서 잘 몰라)

어쩌면, 그들에게 한국의 반지하는 '빈곤과 계층 격차'라는 사회적 고민거리보다는, 그저 새로운 호기심거리 중 하나일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반지하도 '반지층과 지층방'으로 나누어진다. '창문이 땅 위로 나와 있으면 반지층' , '창문이 땅 아래로 나오면 지층방'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흔히 우리가 보게 되는 반지층이 사실상 반지하이고, 사실상 지하실에 가까운 것이 지층방이다. 굳이 알 필요는 없을 것 같지만 혹여나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와서 서울에서 부동산 매물을 찾아야 하는 사회 초년생들이 참고하길 바라며.. 적어 보았다.

어쩌면, 반지하가 끝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 더 아래. 지층방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절반의 햇살조차도 들지 않는 곳.

강남에도, 반지하는 많다.

2025년 기준 서울 시 기준 반지하 가구수는 약 22만여 가구 라고 한다. 그중 강남구가 차지하는 가구수는 약 5,000여 가구. 이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가장 적은 편이며, 반대로 가장 많은 곳은 관악구로 약 15,000 가구라고 한다.

청소년 시절, 강남은 "소나타 타고 갈 거면, 차라리 지하철 타고 가야 한다"라고 세뇌? 받은 기억 때문에 '강남'은 흔히 부자들만 사는 동네인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이후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둠과 그늘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반지하를 본 이후로, 자본주의의 양극화는 더 또렷하게 일상 곳곳에서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강남역 인근에서 급하게 숙소를 구했을 때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위치도 괜찮아서 예약을 한 후 주소를 따라 도착한 곳이 오래된 건물 반지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뭔가 속은 기분으로 들어갔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관리가 잘 되어 있었고, 흔히 상상하는 습하고 축축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 느꼈다.

아, 화려한 건물숲에서 불과 안으로 100m 남짓 걸었을 뿐인데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는구나.

그리고 이곳이 숙소로 운영되기 전까지는 강남에 수많은 반지하 가구 중 하나였을 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반지하 월세는 얼마일까?

2020년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건대 입구, 성수동, 면목동, 파주'를 거쳐 현재 방이동에 터를 잡았다. 총 4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 부동산 매물을 찾는데 보낸 시간이 제법 될 것이다. 덕에 현재 월세 75만원에 살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지상 주거 조건의 시작점이라는 것도 체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월세 70만원 아래로는 반지하 매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방이동에 월세 60만 원으로 설정해서 검색을 해 보니, 단 1개의 집이 검색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반지하였다.

<월세 60만원 하는 반지하, 천고도 낮아 보인다. 그래도 방이 두개니까>

60만원, 심리적 저항선

생각해 보면 지금 집을 구하기 전에도 꽤나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월세 60만원으로는 아무리 검색해도 지상에서 살 수 있는 매물이 없었다. 결국,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60만원을 7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어쩌면, "고작 10만원 때문에 내 삶이 더 피폐해지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이다. 혹은 "다른 곳에서 조금 아끼면 되지 아니한가?" 혹은 "불 필요하게 10만원을 쓴 적은 없는가?"라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심리적 저항선이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치킨 한 마리가 3만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요즘 물가를 고려하더라도 선뜻 구매할 용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만원조차도 함부로 못 쓰는 삶이라서가 아니다. 이게, 바로 심리적 저항선을 넘어가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신라면 한 봉지를 2,000원에 구매해야 한다면? 비싸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고작 천원 차이일 뿐인데.


지상이라고 마냥 낙원은 아니다.

그렇다고 지상이라고 좋은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고시원이 그렇다. 요즘에는 '원룸텔, 리빙텔'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도 제법 보이는데, 애초에 주거 용도의 목적이 아닌 빌딩 건물에 칸막이로 구분을 했을 뿐이다. 마치 '마늘을 갈릭'이라고 하면 조금 더 인기 있는 메뉴가 되는 것처럼 고시원이라는 이름을 바꾸어 조금 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것 같지만, 거주 환경의 본질은 그대로이다.


그래서, 당신의 선택은 어디인가? 같은 예산이라면. 조금 넓지만 반지하와 내 얼굴보다 조금 큰 창문과 누워서 손을 뻗으면 끝과 끝이 닿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부엌과 세탁기를 같이 써야 하는 고시원 사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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