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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머뭄 사이, 돌고 돌아 결국은 서울이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과, 머물고 싶은 사람들의 공존

by 타이완짹슨

대만에 살 때였다. 하루는 이곳에서 알게 된 홍콩친구의 입을 통해서 홍콩 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만약에 네가 홍콩으로 여행(참고로 대만에서 홍콩은 비행기로 약 90분 거리에 위치)을 오면, 집으로 초대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왜냐하면 집이 너무 작아서 네가 앉을 곳이 없거든"

당시에는 홍콩의 주거 환경에 대해서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했고, 집으로 초대라는 말 또한 으레 하는 말 정도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러나 최근 각종 매체에서 보이는 홍콩의 주거 실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해 보였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보면서, 2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1. 뭐, 이게 진짜 집이라고?
2. 와, 진짜 여기서 사람이 산다고?
<어쩌면, 서울 어딘가 있을 반지하 환경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사 내용은 아주 소수의 사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난해 가을. 처음으로 홍콩을 방문했을 때 그 유명한 청킹맨션에서 숙박을 하고, 최근 '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홍콩 국적의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과한 포장도 아니었고, 엄살도 아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오늘이기도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6amK2BgjXk8

<문득, 홍콩의 오늘이 서울의 미래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홍콩 N 서울의 월세 사이

주거지 문제 즉 높은 월세는 오늘날의 문제도 아니고, 비단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도 최근 전세대란과 물가 상승으로 본격적으로 사회적 대두가 되었을 뿐, 언제 터질지 모를 화산이 터진 것과도 같다. 본격적인 용암 분출은 지금부터 시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가 더 심각할까?


서울의 경우 건대입구역 같은 입지 좋은 역세권 원룸 월세는 평균 70만원 ~ 150만원에 형성이 되어있지만, 홍콩의 경우는 120만원부터 비싼 곳은 380만원인 곳도 있다. 물론 단순 금액만 볼 것이 아니라 주거 환경의 컨디션을 좀 따져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즉, 비싼 값어치를 하느냐?'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홍콩 원룸(혹은 스튜디오) 크기는 평균 5평 ~ 8평이다. 자료를 찾아보면서도 이걸 믿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대안 없는 홍콩과, 대안은 있지만 답은 없는 서울

두 지역의 주거에 대한 문제는 비슷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서울의 경우는 경기도, 인천 즉 수도권이라 불리는 대체제가 있다.

하지만, 홍콩은 도시가 곧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사실상 벗어날 곳도 없다. 다시 말해서 옮길 곳도 떠날 곳도 없는 곳. 어쩌면, 홍콩이라는 섬 자체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옴싹 달짝 못하는 초대형 닭장 감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천,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경우 하루 3시간 길게는 4시간 정도를 길 위에서 버리곤 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더 크지만 그만큼 밀도 높은 감옥 생활일지도 모른다. 어떨 때는 집이 없어서 참 고달픈 현실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특히, 방이동으로 이사 오기 전 경기도민으로 하루 4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내는 것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는 것을 몸소 겪었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수도권에 모여들어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굳이? 서울에 남은 이유

간혹, 나처럼 각자의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모였을 때, 으레 비슷한 어려움을 토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는 지방러들의 문제만은 아닐 수도 있다. 서울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외국인 유학생들, 대한민국 산업 기반을 지탱하는 외국인 근로자들, 인식 변화로 인한 국제결혼 증가. 여기에 태생 자체가 서울인 사람들이 서울 25개 자치구 곳곳에 엉켜 살아가고 있다.

나 또한 전입 신고를 마친 후, 그들 사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살아가면서도, 이따금, 나 자신에게 묻곤 한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서 사는 게 맞는 걸까?"라고 말이다. "굳이, 불확실하고 낮은 가능성에 이토록 치열하게 도전하는 이유가 뭘까?"라고. 차라리 고향에서 몇 년 우직하게 열심히 돈이라도 모으면, 그래도 작은 집 하나 정도는 마련해서 살 수 있을 텐데, 그럼 너무 치열하지도 않고 삶의 여유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상황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답을 하자면, 결국 서울살이는 로또와 비슷한 것이다. 알다시피 로또가 당첨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매주 수많은 사람들은 로또를 구입한다. 왜냐하면, 사지 않으면 그 작은 확률마저도 0%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은 기대를 품고 희망을 꿈꾸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서울은 그런 도전의 시작점일지도 모르겠다.

결코, 큰 기대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도전 자체만으로 0%에서 아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오늘도 숨 막히는 지하철을 타고, 치열한 경쟁을 참아내 집으로 돌아온 후에 좁아터진 집일지라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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