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만난 사람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입니다. 많은 분들이 필리핀을 이야기하면 '카지노, 범죄의 온상, 유흥' 등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세부, 보라카이, 보홀 등 꽤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휴양지들의 나라이기도합니다. 단지, 양면성이 있는 것이죠. 마치 대한민국 수도 서울 외에도 섬으로 이루어진 천혜 환경 제주도, 카지노와 양양 해변?으로 유명한 강원도가 있는 것처럼요.
그나저나, 이번 마닐라 방문 목적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 번째, 추억의 흔적을 찾아서
두 번째, 대만과 인접한 섬나라
세 번째, 한국 브랜드를 집어삼키는 '졸리비'의 근황 파악
그리고 가끔은 하루하루 버티는 것 자체가 힘이 들고 버거울 때, 혹은 삶의 불만과 원망이 하늘을 찌를 것 같을 때, 되려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기 위해 소위 말하는 개발도상국가를 찾곤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이 전 글들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여행 및 봉사활동 등을 통해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은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라는 어쩌면 지극히 일반적인 여행의 목적과는 대비되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마지막 날 하루는 아이들과 처음 만난 호스텔로 예약했지만, 아이들이 뛰어놀던 자리에는 'Don't sleep here'이라는 팻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드라마틱한 해후를 기대했던 만큼 허무함과 아쉬움이 가슴을 툭툭 치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추억에 너무 취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인정을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진심은 See you라고 말하지만, 진실은 Good Bye라는 것을요.
돌이켜보면 가까운 가족들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못 보고 살아가는데, 낯선 이국 땅에서 맺은 인연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0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만에 하나 1,000만 분의 1의 확률로 다시 만났다고 하더라도, '결국 결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다시금 See you를 외치며 헤어지겠죠. 안타깝지만 때로는 좋은 기억들만 아름답게 간직한 채, 가끔 꺼내보는 정도가 맞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삶을 위해서도 더 이로운 선택'이라는 것도요.
어쨌든, 아이들이 이곳에 없다는 사실은 임시 숙소였던 이곳을 벗어나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구했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로 했습니다. 어디에서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으면서요.
돌이켜 보면 한동안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때의 여운이 이번 일정에도 큰 영향을 미친것이죠. "즉흥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은 배제된 그저 감정에 내 맡겨진 그런 여정이었죠." 체류 시간(25년 8월 20일 ~ 24일)을 계산해 보니 대만에서 약 36시간, 필리핀에서는 약 50시간 정도 머무른 셈입니다. 한 나라에만 머물기도 짧은 시간에 두 나라를 쪼갤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마닐라에서는 졸리비만 4번을 먹었으니 놀러 간 건지, 일하러 간 건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 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 처음으로 여행 후에 '후회'라는 감정이 밀려듭니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결국 결말은 똑같을 텐데, 결과적으로 소모적일 수 있는 불확실성에 모험을 했던 것이죠. 그에 반해 이번 여행을 얻고자 하면서, 반대로 잃은 것은 너무나 많게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작게는 면도날에 입술을 다쳐 피(불길한 징조)를 보기도 하였고, 크게는 여행 첫날 제수씨의 할아버지 부고 소식까지.(외에도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것 같은 아픔에, 잠이 오지 않는 이 새벽에 빗소리를 안주 삼아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래는 중입니다)
이제 추억 이야기는 접어 두고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제목처럼 마닐라의 밤 그리고 '거리의 사람들'을 관찰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낮에는 빈민가에서, 밤에는 유흥가에서 말이죠.'
빈민가라고 해서 특별히 찾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도이자 필리핀 최대 경제 도시라고 하는 이곳에서도, 빈민가는 이외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사실은 빈민가는커녕 비를 피할 집조차도 없어서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마닐라였고, 그 모든 종합 집합체가 모인 곳은 다름 아닌 맥도널드였습니다.
맥도널드 커피 한잔 값 1,400원
떠나기 전 날, 마닐라 최대 유흥가이자 한인타운으로 알려진 거리에 위치한 맥도널드로 향했습니다. 간혹, "필리핀에도 맥도널드가 있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졸리비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곳곳에 보입니다. 그리고 부동산 기업답게 좋은 목을 차지하고 있지요.
https://news.jtbc.co.kr/article/NB10961668
참고로 이건 2015년 기사입니다. 경찰이 되고 싶다던 빈민가 소년은 어느덧 20살 청년으로 성장했을 텐데,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아직 후속 기사는 없었습니다. 핵심은 이 기사는 필리핀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부의 양극화. 다시 말해서 빈부격차가 보여주는 대조적 현실을 투영하는 듯합니다.
한때 대한민국보다 국민 소득이 높았던 필리핀이지만,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휴양을 목적으로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과 달리, 이곳에서 한국행은 코리안 드림을 위한 수단이고, 맥도널드에서 원 없이 햄버거 먹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으니까요.
맥도널드, 창 밖 너머 사람들
졸리비를 너무 먹은 탓에 도저히 햄버거는 당기지 않아서 커피만 한잔 시킨 채, 창가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둠이 깔린 마닐라의 밤은 화려한 조명들 덕에 환하였지만, 어딘가 깊은 어둠까지 숨기지는 못 했습니다.
특히 창문 너머 빛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은 제 마음을 여지없이 짓밟았습니다. 신발도 없이 티셔츠 하나로 신체의 일부만을 가린 채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이 볼 때마다 더욱 그랬습니다.
특히, 외국인이 보이면 더욱 애절하게 손을 붙잡는 것을 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도 아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의 연민을 유발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물론 저도 붙잡혀 봤습니다. 문득 인도에서 겪었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인도를 처음 갔을 때 길거리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게 느껴져서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부탁하여 인근 맥도널드에서 사 온 햄버거를 사서 나눠주는데 순간 주변이 아수라장이 된 것입니다.
본인 또한 사랑받고 커야 할 나이에 이제 갓 태어난 생명이라는 커다란 책임감을 짊어진 채 모든 걸 내려놓고 살기 위한 몸부림. 어쩌면, 애초에 내려놓을 것이 없었을지도 모를 삶의 시작일지도요.
결국 저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이동을 할려는데, 제 다리에 무언가 붙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돌아보니 불과 5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아였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때 저를 바라보는 그 애절한 표정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니면, "자기를 데려가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호의라고 생각한 내 행동이 괜한 오지랖은 아니었을까' 반성하고는 합니다)
그럼에도 한동안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었는데, 이번 마닐라 맥도널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쓰나미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어쩌면, 휴식이 필요한 시간에 되려 감정 소모가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애써, 크게 숨을 내쉬며 시선을 매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비슷한 생김새를 한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옷가지며, 몸에 지닌 각종 액세서리와 고가의 전자 제품. 그리고 표정에서 나오는 여유까지 창 밖 사람들하고는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맥도널드 입구에는 장미를 파는 아이부터 아이의 엄마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손을 입 쪽으로 가져가며 아련한 표정을 짓습니다. 한 손엔 여전히 장미를 쥔 채로요. 이 또한 구걸이나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장미의 역할은 '사랑의 표현'이 아니라, '생존의 징검다리' 였을지도요.
마지막으로 사각형으로 된 창문 너머 모서리를 틀면, 이번에는 어린 소녀들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이들은 마사지 호객을 하고 있지만 유독 '혼자 있는 남성에게만 집중적으로 호객'을 하는 걸로 보아서, 그들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어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거리로 이끌었을까?" 오래전 해외 봉사활동을 해 왔던 단원의 감정과 시각에서 그리고 이제는 여행 이야기를 쓰는 작가의 시선에서 궁금해졌습니다.
특히 가십에 목마른 사람들을 자극하는 기사나 유튜브 영상이 아니라, 오롯이 진솔하게 느낀 다양한 감정들과 그들의 삶을 세세하게 들어보고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나름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흡사, 한국에서 문제 되는 가출팸이 떠 올랐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막 기어 다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 정도. 아이는 익숙한 듯 바닥을 놀이터 삼아 놀기를 반복했습니다.
종이보다 조금 굵은 창문 하나 사이. 그리고 저와의 물리적 거리는 고작 1미터나 될까 싶습니다. 그 짧은 간격이었지만 '삶의 온도 차이'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아이는 거리에서 혼자 놀고 있었고,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할 아이들은 짙은 화장과 문신을 하고 거리에 나와서 성인 남성들을 상대로 호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이곳에서는 당연하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제 곧 떠날 외국인이기에, 남은 화폐를 다 준다고 한들 저의 삶이 휘청거리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저들의 삶 또한 나아지지도 않겠죠. 그저, 하루 연명할 뿐이고 어제보다 조금 배부를 순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제가 지금 이 순간 작은 온정을 베풀 순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그들의 삶을 바꿔줄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본질은 개인이 나설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까요.
어찌 보면 오지랖 넓은 연민일지도 모릅니다. 정작 이 글을 쓰는 저 자신부터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지구 반대편 만날 일도 없는 아이들 걱정이라니요.
그래서 이번 여행을 통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추억을 찾아서'라는 명분으로 함부로 떠나지 말자.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인연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낭만으로 포장된 여행보다는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집중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위해서 옳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제 삶에 작은 불평이 끊임없이 쌓일 때, 그때는 다시 이곳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을 반성하기 위한 것이죠.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현재 내가 가진 행복의 위치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연민을 이용하는 옳지 않은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저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끝내고 개운한 상태에서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는 저의 행동은 선민의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필리핀의 밤은 제가 가진 행복의 위치를 확인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먼저는 내일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함께 밥을 먹는 동료들과의 시간을 감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조차도 지나친 선민의식이라면 비워내야 할 것이고, 연민 같은 인간적인 정이라면 현재보다는 적당히 거리를 두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정말 다시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때는 혼자가 아닌 함께 오려고 합니다.
필리핀의 수도에는 '바세코'라는 일명 쓰레기 마을(쓰레기 매립장 위에 세워진 무허가 판자촌)이 있습니다. 세계 3대 도시 빈민촌으로 늘 언급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201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습니다. 그때 느꼈던 충격적인 경험들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생생하게 글로 담아낼 자신은 있지만,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진 속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해맑게 웃고 있으니까요.' 그들의 일상을 소재로 삼는 건 제가 가진 작가의 철학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12년 전이야기지만 그날 제 삶에서 마지막 해외 봉사활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 깊숙이 스스로와 약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내 삶에서 걷잡을 수 없는 시련이 찾아온다면, 더 내려앉기 전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겠다고. 그래서 이들과 순수하게 웃으면서 추억을 되새기며 힘을 내겠다고요. 한편으로는 이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잠시나마 불평으로 가득했던 내 삶을 다시 반성하겠다고요.
하지만 법륜 스님의 말씀처럼 "내 인생도 제대로 못 살면서 남인생 걱정하고 간섭하는 것"은 헛 된 일이라고요. 그래서 다시 한번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더 이상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 휩쓸리는 감정을 합리화하지 않기로요.
어쩌면,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던 행복론의 정의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아픔을 겪어보니, 그 진정한 가치를요.
https://brunch.co.kr/@kingka840625/220 (예전에 '행복론' 수업을 듣고, 직접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