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발행 직전, 내가 쓴 글이 사라졌다.

허무와 상실 사이에서

by 타이완짹슨

열심히 쓴 글이... 발행을 앞두고 사라졌다. 유독 글쓰기에 소홀했던 구월을 뒤로한 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월부터 조금씩 속도를 냈건만. 급한 마음에 아무래도

저장이 아닌 삭제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처음에는 글을 발행해 버려서 안 보이는 줄 알았으나 그것도 아니었다. 혹시나 서랍장이며 임시 보관함이며 찾아봤지만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은 반쯤 체념한 채. 아까 상황을 비슷하게 시뮬레이션하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저장을 누른다는 것이 삭제를 눌렀구나.

원인은 크게 2가지. 탈고 직전에 토시 하나라도 마음에 안 들면 지속적인 수정 작업을 거치고는 하는데, 저장 버튼을 누른다는 것이 관성적인 행동에 의해 아마도, 삭제 버튼이 눌러진 듯하다.


그리고 분명히! "예 / 아니요"라고 물어봤을 때 한번 더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이었다.

문득 어릴 적 읽었던 우화가 생각이 난다. 바닷가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돌멩이를 찾기 위해서, 바닷가에 손만 넣고 돌멩이를 줍고 던지고를 반복하던 주인공이 3년째 되던 해. 드디어 찾아 헤매던 돌멩이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3년 내내 그랬던 것처럼 돌멩이를 다시 바닷가로 던져버렸다는 이야기.

오늘 그 우화의 어리석은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하는 복원 관련 된 후기들을 찾아봤지만, 카톡 내용이 다 날아간 것처럼. 달리 방법은 없어 보였다.

이미 씻겨 흘러간 비눗물처럼 내 손을 떠나다 못해 사그라든 것이다. 그저, 감정을 잡고 며칠간에 걸쳐 써 내려갔던 지난 이야기들을 하나씩 떠올려가며... 쓰는 수밖에.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치러진 파도타기 결승전. 해설을 맡은 어느 위원이 했던 말이 떠 오른다.

"아까와 같은 파도는 절대 오지 않아요!"

파도타기 선수가 아까와 같은 파도가 오기를 기대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내가 날려버린 글 또한 절대 똑같이 세상에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사실, 그래서 더 속상하지만)


어디선가 "짜잔! 서프라이즈 ~ 짹슨!" 하고 나타나면 너무 좋겠지만, 대학생 시절 복사실에서 USB를 함부로 뽑다가 열심히 준비 한 PPT를 날려먹은 지난 실수들을 떠 올리며 그때나 지금이나 결국 칠칠맞지 못 한 내 태도에 반성을 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글이라는 건 엄밀히 말해서 '물체도 아니고 허공에 존재하지도 않는 실체가 없는 녀석'이기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겠구나'
라고 애써 마음을 달래 보기로 했다.

열심히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는 꽤 괜찮은 파도를 만나게 될 서퍼처럼, 나의 속상함을 위로할 또 다른 좋은 글이 어느 날 문득 큐피드의 화살처럼 내 마음속으로 쏙 날아들지 않을까?

마치, 이번에 겪은 속상함을 영감 삼아 지금 발행하게 될 이 글처럼.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01화마닐라, 거리에서 장미를 파는 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