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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완짹슨 Feb 28. 2021

서른,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토익 점수 250점, 내 나이 스물아홉

토익 점수 250점과 내 나이 29살은 대학 졸업을 앞둔 취업 준비생 신분에서는 '형편없는 스펙'이었다. 고민 끝에 29살 끝자락에 어학연수를 결정 했다. '250점을 750점으로!' 라는 표면적인 이유를 들었지만, 속내는 '한국을 좀 길게 떠나보고 싶다'라는 강한 끌림이었다. 


'그래, 가 보자' 해외 여행, 아니! 어학연수!

29살에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전까지는 몇 차례의 일본 여행과 멀리는 해외 봉사 단원으로 선발되어서 다녀온 인도네시아가 전부였다. 그랬던 나에게 첫 유럽 여행은 그동안 나의 상식을 부셔주는 경험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유럽의 첫인상에 대해서.

처음으로 간 곳은 로마였다. 로마를 갈려고 했다라기보다는 경유하는 김에 잠시 머물던 곳이었는데, 책으로 읽고 상상했던 로마는 '생각보다 참 더러웠다' 뭐 그게 전부였다. 비록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을 잘개 잘개 부셔주기에는 충분한 일정이었다. 


로마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터키였다. 그 시기에 때마침 유로 2012년이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터키의 경기가 열리는 중이었는지 주변 사람들은 다들 축구에 미친 사람들만 보였었다. (그 뒤로 조용했던 것을 보면 터키가 탈락 한 것 같다) 암튼, 유럽이라고 하기에는 중앙아시아 색깔이 강했지만 약 2주간 머무른 터키에서 느낀 점은 '유럽 사람도 똑같이 두 개의 눈 그리고 하나의 코와 입을 가지고 있었고, 코가 아닌 입으로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는 점이다.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러니까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도 나는 그것을 망각하며 살아왔던 것이었다. 


다시, 어학연수 이야기로

필리핀에서는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었다면 유럽 몰타에서는 나는 끊임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것이 문법이 틀렸고 발음이 틀렸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듣는 사람이 판단할 문제였다. 상대방이 알아들으면 되는 것이었다. 때로는 친하게 지냈던 독일 친구와 일본 친구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바라보며 '뭔 소리야?'라는 표정을 지을 때 그제야 '아 내가 말한 게 뭐가 문제가 있구나'라고 인지를 하고 고쳐나가는 식이었다.


그리고 파티라는 파티는 무조건 참석을 했다.


파티나 모임에 가면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은 인사가 반복적이어서 재미없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건 반대로 보면 똑같은 문장을 수십 번 노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는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당연했고 그 인사에서 좋은 인상을 주어야 호감과 깊이가 있는 대화로도 이어졌다. 만약 외국인과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으면 인사하는 방법을 다르게 해 보는 건 어떨까?  



서른 두살, 이번에는 중국어를 시작했다

서른 살에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라는 나의 이야기를 알게 된 어느 회사 대표님은 귀국 후 입사를 제안했고 실제 귀국 후 채용이 되어서 그 후 여러 국가를 다니며 근무를 할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그렇게 다양한 국가에서 근무를 하면서 지내던 중에 인도에서 갑작스럽게 중국어를 사용하는 대만으로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국어를 공부하게 된 제일 큰 이유이기에 고마운 마음이 크지만 그때는 나를 인도에서 대만으로 보낸 것에 섭섭한 감이 있었다. 인도에서 그 나라 비즈니스 속도에 맞추다 보니 한국 본사 입장에서는 답답했을 부분이 내가 대만으로 가게 된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쨌든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어라는 것을 이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현지에서 업무만큼이나 언어 공부에 집중을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더 큰 꿈과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서 결국에는 퇴사를 했다. 그리고 현지 어학당 등록을 마쳤다. 


그 후로 대만에 5년을 더 머물렀고 한국 나이 37살이 되던 해, 2020년 4월이 되어서야 다시 한국에 오게 된 것이다. 



서른여덟, 이번에는 인도네시아어를

2021년이 되면서 몇 가지 계획들을 세웠고 오늘은 어느덧 2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나는 현재 어디까지 와 있을까?라는 질문을 답을 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인도네시아 언어를 배우고 있다.

이유를 나열하자면 몇 가지 된다.


기존에 학습하던 언어 공부 큰 변화 대신에 권태기는 새로운 언어에 대한 갈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저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예전처럼 현지에 가서 어학당을 다닐 수는 없기에 우선 독학이 가능한 언어이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거리가 있는 언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며 전 세계 인구 5위권의 대국(인도, 중국, 미국, 인도네시아 순)이라는 점이 끌렸다. 


그리고 인도에서 인연을 맺은 'Jason From Korea (그 역시 브런치 작가이다)' 이 인도네시아 법인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나 또한 자카르타에 갈 이유가 생겼는데 그때 인도네시아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라고 할 수 있겠다. 영어와 중국어도 끊임없이 공부해야겠지만 삶의 새로운 목표가 추가되었다.라는 것은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3월부터는 대학원 수업에 회사에서 진행하는 신규 사업의 운영 업무 일부를 맡게 되었다. 그 어느 해보다 바쁜 2021년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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