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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Feb 11. 2020

제90화:사람사이에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감은 남겨두자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친구와 신나게 커피를 마시던 중,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친구의 전화가 방정맞게 울려 된다. 순간 친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지며 미간을 찡그린다. 받기 싫은 전화인가 보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농담을 건네본다.


"왜 사채업자냐?"


친구가 썩소를 날리더니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면서, 한마디 툭 뱉는다.


"아니. 평소에 연락 안 하던 친구인데... 결혼하나?"


비슷한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갑자기 연락 오는 친구의 연락은 십중팔구 결혼 소식이거나 아니면 상이 거나, 때론 돌잔치인 경우도 있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는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왠지


"필요할 때만 연락하네"라는 생각이 앞선다.


물론 하루하루가 바쁘고 정신없기에 서로 연락하기가 쉽지 않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다음에 갖춰야 할 예의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혼식에 참석을 하고, 축하 인사를 건네고, 봉투를 건네고, 밥 한 끼를 먹고 빠르게 빠져나온다.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빠르게 돌아온다. 결혼식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고맙다는 연락 한번 없다. 다시 청첩장을 받기 전의 상태로 빠르게 돌아간다. 밥을 산다거나 술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와줘서 고맙다는 메시지 한통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돈인지 머리수를 채우기 위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필요에 따라 이용되는 인간이 된다. 관계적인 측면이나 인간적인 유대감을 기대하고 가보지만, 역시나 그다음은 없다. 최소한의 예의가 사라진 것은 아닌가라는 씁쓸함만이 남는다.


비슷한 경험은 취업 현장에서도 이어진다. 사회적으로 거의 매일 이슈화되는 것 중의 하나가 청년실업이다. ‘실업률이 어떻네’, ‘일할 자리가 없네’ 등으로 청년 실업의 사회적인 측면만 부각된다. 하지만, 나는 그  이면의 이유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잠깐 중소 컨설팅 업체에 다닌 적이 있었다. 10명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나름 성장세에 있어서 계속해서 사람을 채용해야 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거의 없어서 채용에 어려움이 있었다. 대기업 캐논에 있을 때는 쏟아지는 이력서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는데, 중소기업이라 그런지 가뭄에 콩 나듯 이력서가 들어온다. 겨우 한 두 명 어렌지가 되고, 면접 당일 약속시간이 되었다. 정시가 되었는데, 면접자가 안 온다. 다급한 마음에 전화를 해보지만, 우연찮은 타이밍인 건지 전화기도 꺼져있다. 마치 나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것 같다.


거절도 일방적인 권리인 것일까? 사회적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닌가? 사정상 면접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치자. 시작이 반이고, 시작이 중요하기에 좀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다. 다만 '사정이 있어서 면접에 못 가게 되었다.'라는 최소한의 예의와 책임은 지켰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당사자야 면접에 안 오면 그만이지만, 면접시간을 맞추기 위해 미팅도 제대로 못 끝내고 사무실로 복귀한 사람이며, 다른 일을 할 시간에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에 쓸 질문을 준비한 사람의 시간은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그런데 이건 양반에 해당한다. 겨우 한 사람을 채용했다. 회의를 통해 업무 분장을 끝내고, 이제 좀 나아지려니 하는 기대를 안고 출근을 한다. 아 근데 이건 또 뭐지? 출근 당일 채용된 친구가 나타나지를 않는다. 전화는 당연히 꺼져있다. 허망하기 그지없다. 이걸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굉장히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안 나오는 일, 퇴사 하루 전날 통보받는 일 등을 겪으면서 이게 당연한 건지 아니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수 없이 고민했었다. 다른 사람보다 개인이 우선이고, 책임감보다 자율성이 우선인 것일까? 부정할 필요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현대 사회 인간관계의 단면은 아닌지 고민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는 어느 정도 현대사회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인관관계의 특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1. 남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

2. 인간관계를 단편적, 도구적, 목적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3. 사람 사이에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내가 싫으면 그만이고, 내가 안 나가겠다는 데 뭔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서로가 서로를 도구나 이용 가치쯤으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마음속에서 차오르는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이 힘들어서 그냥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마 전 단골 고깃집에 갔는데, 두 가지가 변해 있었다. 서빙을 하던 직원이 사라졌고, 반찬 수가 꼴랑 한 가지로 변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몇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직원이 다음 날 바로 그만두겠다고 해서 그냥 혼자서 하신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이제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싫고, 더 이상 기대하기도 싫어서 차라리 효율성을 택했다고 한다. 마음이 편하다고 하신다. 물론 그 아르바이트 생에게도 사정이 있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렇게 덩그러니 남겨진 사장님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졌다.  


요즘 사람들이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예전보다 좀 더 목적 중심적이라고 한다. 예전처럼 끈끈한 유대관계보다 느슨한 관계(Weak ties)가 선호된다. 밥 한 끼 같이 먹기 위해 모이고, 단지 달리기 위해 모이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피로도 때문이기도 하고, 시대적인 반영이기도 하다. 예전처럼 인간관계의 중요성이 강조되지도 않고, 다른 중요한 것들에 가치의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한다.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스마트폰 약정이 끝나면 새 폰으로 갈아타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교환가치의 기술이 적용되는 영역이 되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한 가지만큼은 지켜졌으면 좋겠다.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어찌 되었던, 최소한의 예의만큼은 남겨뒀으면 한다. 


최소한의 것들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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