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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Feb 20. 2020

제92화: 나는 나에게 얼만큼 공정하고 객관적일까?

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바야흐로 인사평가 시즌이다. 이때 직장인들의 마음은 기대 반 설렘 반이다. 일 년 농사에 대해 평가를 잘 받아서, 그에 따를 두둑한 인센티브가 입금되길 기다린다. 봄에 씨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농부의 마음 이상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고, 혹시나 상사의 심기를 건드릴까 이전보다는 온순한 양이되어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다.


그렇게 인사철이 지나면서, 드디어 내 인사 고과나 평가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되었다. 과연 회사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정확히 이 날을 기점으로 회사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는다. 직원들의 로열티가 가장 바닥을 찍는 시절이 되고,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자신의 평가 결과에 만족하기보다, 불평과 불만이 더 넘쳐나기 때문이다.  


“내가 B라고? 그럼 누가 A야? “

“와 더러워서 못 다니겠네… 이게 말이되?”

“내가 B인데.. 쟤는 A라고?”


이런 불만의 기저에는 두 가지 생각이 자리한다. ‘나는 잘했다’와 ‘평가 시스템이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생각이다. 이 두 생각이 합쳐져서 나는 잘했는데 공정하지 못한 평가시스템으로 인해 나는 피해자라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나 또한 그런 부류 중에 하나였다. 팀장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B라는 평가 시트를 받고 나오는 날이면, 부당함에 치를 떨었고, 팀장님 방을 나오자마자 평가서를 찢어 버리고 분노했다.


‘나는 잘했는데, 평가 시스템이 XX 맞네’


라고 생각했다.


물론 후자에는 동의한다. 평가시스템은 절대 공정할 수 없다. 회사마다 공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AI가 아닌 사람이 평가를 하는 이상 객관적이거나 공정할 수 없다. 개인의 주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평가를 하는 입장에서도 합리적으로 한다고는 하지만, 그 합리라는 것은 우선 감정적으로 판단하고, 그 감정의 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덧붙이는 장치일 뿐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평가의 장면에서 승진 대상자 밀어주기가 횡횡하고, 우는 놈 떡 하나 더 주는 시추에이션이 만들어지는 사례도 빈번하다. 물론 회사마다 평가 기준이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가지 논리로 재단하기는 힘들지만, 어느 정도 평가자와 평가 대상자의 동상이몽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평가자: 쟤는 B 줘도 감지덕지인데.....

평가 대상자: 나는 A 받겠지??


평가가 공정하지 못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나는 잘했는가?’라는 질문에는 퀘스천으로 남겨두고 싶다. 지난 나의 회사 생활을 돌아봐도, 나는 과연 진짜 객관적으로 잘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보통 내가 지난 1년간 한 일을 돌아보면, 자연스레 내가 잘한 일, 고생한 일, 회사에 기여한 일들이 떠오른다. 실수나 과오보다 긍정적인 기억이 더 많이 남아있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은 딱히 한 게 없는 것 같다. 때로는 그 사람들이 한 실수나 과오가 더 진하게 남아있다. 상대적으로 내가 더 좋은 평가를 받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긴다. 하지만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


내가 한 행동은 ‘의도’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남의 행동은 눈에 보이는 '결과'만 가지고 판단한다.

내가 한 일의 결과나 행동은 그 안에 담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판단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은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결과만 가지고 판단하기에 상대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게 된다.


게다가 전체를 보는 눈이 없다. 위에 있어야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실력이나 태도가 비교해서 보이는 데, 자기 자신의 눈에는 오직 내가 한 일, 내 노력만이 투영된다. 나만 볼뿐, 전체 상황을 객관적으로는 보지 못한다. 객관적이기가 쉽지 않다.


비슷한 현상은 TV 속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은 여러 명의 경쟁자를 줄이면서 하나의 옥석을 가려내는 과정이다. 조직의 피라미드 구조와 똑같고, 인사 평가의 상대평가 장면과 유사하다. 이때 떨어지는 참가자들 중에는 결과에 승복하기보다는 자기가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 평가 기준이나 심사 위원에 불만을 가진다. 하지만 시청자는 제대로 알고 있다. 떨어질 사람은 떨어지고, 결국 우승할 사람은 그 실력이 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상황 속에 매몰되어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면 실력의 편차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평가 결과나 심사 기준에 승복하고 다음 해에 개선해서 나오는 사람은 더 좋은 실력으로 더 높은 곳으로 가거나 우승까지 바라본다. 작년의 평가 결과로 인해 분노의 칼을 갈았든, 피 터지는 노력을 했던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했다. 설령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더 단단해지고 한 뼘 성장한 지원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평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그 실력 그대로 다음 해에 오디션에 참가한 사람은 결국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 전보다 더 못한 평가를 받게 된다. 자신이 잘한다고 생각할 뿐, 개선의 노력이 없거나 추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받는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받지 못하면 정말 화나고 회사에 대한 원망만 쌓인다. 회사를 더 다녀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고, 때론 스스로를 자책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직장인이 내가 한만큼 공정하게 평가받으면 좋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보상이 자리하는 조직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평가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그런 평가 제도에 얽매이거나 연연해하지 말자.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어차피 바꿀 수는 없는 결과이니, 차라리 수용하고 받아들이자.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자. 평가 결과가 내 정확한 실력에 대한 평가는 아니니 낙담할 필요도 없다. 그냥  그대로    지나가는 인사철이니 하고 넘겨버리는 것이 속편하다.


개인적으로, 이제는 예능인에 가까운 서장훈 씨를 좋아하는데, 그가 항상 선수 시절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입에 올리는 말이 있다.


‘압도적인' 일등이 되자


여기서 '압도적인'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보고 싶다. 나는 압도적인 말이, 누가 뭐래도, 어떤 평가 기준을 들이대도 그 위에 서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서장훈 씨는 그런 목표를 가지고 노력했기에 당대 최고의 선수가 되었고, 그런 노력으로 지금까지 잘 나가는 방송인이 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인사 평가는 과연 공정할까?’라는 질문은 수년이 지나도, 수십 년이 지나도 제기될 질문이자, 회사 인사팀에서 죽을 때까지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 질문은 회사에 맡겨 두자. 언젠가는 더 완벽하고 공정한 평가제도가 만들어질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 질문은 접어두고 대신 나는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과연 객관적으로 잘하는가, 나는 과연 압도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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