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그동안 우리나라를 스쳐간 바이러스가 여럿 있었다. 지금은 추억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등.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킨 치명적인 바이러스였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바이러스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아니겠지?’라는 자조적인 위로와 ‘금방 지나가겠지’라는 안이한 마음으로 버티다 보면 그냥 없었던 것처럼 쓱하고 지나가는 수준이었다. 마스크 쓰고 다니는 게 짜증 나고 불편했을 뿐, 바이러스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좀 다르다. 위기의식을 넘어 생존의 위협 문제까지 직결되고 있다. 강의를 주업으로 하는 직업의 특성상 이런 바이러스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뭐 별거 있겠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하루에 한 두통씩 강의 취소 전화가 오더니, 지금은 3-4월에 잡혀 있는 강의가 거의 다 취소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헉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찰나 일이 날아가고, 돈이 날아가고, 멘탈이 날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깟 바이러스가 뭐라고 강의가 취소되나’라는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의 사태가 국가적 위기에 이른 지금 내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는 그저 우리 가족 건강하고, 대한민국에서 하루 빨리 이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생계의 막막함은 코로나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 엄습해 온다. 병보다 돈이 더 무서운 현실 앞에 하루에도 몇 번씩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인이었을 때가 더 좋았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독립을 선언한 것에 대한 후회이자 직장인 시절에 대한 그리움, 직장인에 대한 부러움이 밀려온다. 작년 8월인가 직장인일 때 쓰던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하면서 느꼈던 감정 이후 두 번째로 느끼는 회환의 감정이었다.
작년 8월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마이너스 통장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수십 년간 당연한 내 돈처럼 쓴 통장이자 매년 거의 자동으로 갱신이 되었고, 한도는 매년 올라갔는데, 단지 직장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은행에서는 단칼에 그 돈을 갚으라고 요구했다. 두 달 만에 그 돈을 마련하느라 있는 적금 없는 적금 다 깨고, 보험 철회하고, 결국 가까스로 해결은 했지만, 탈탈 털린 자금 줄 앞에 ‘그냥 얌전히 직장에 다닐걸’ 하고 처음으로 후회를 했던 적이 있었다. 회사가 보장해주던 신용. 그때는 거기에서 아무런 가치도 느낄 수 없었는데 막상 그것이 없어지고 나니 비로소 그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다시 한번 직장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그동안은 머릿속으로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떨까?’라고 막연하게 상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월급이 끊기는 현실을 직면하고 보니, 그 임팩트는 상상외로 크고 신선(?)하다. 지난 15년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난제 앞에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내 힘이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차피 과거는 돌이킬 수 없고, 미래는 통제할 수 없으니, 대신 나는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다시 좋은 상황으로 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코로나 너 또한 지나가리니…’ 하고 버텨본다.
지난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장 생활에 만족한 적이 많지 않다. 아마 이 시대 많은 직장인들의 비슷한 고민이자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연봉이 작고, 복리후생이 빈약하고, 회사 시스템이 별로이고, 때로는 사람들이 짜증 나게 하는 곳이다. 하지만 나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직장이라는 곳은 보이지 않게 내 삶의 안전망이자 버팀목이 되어 주는 곳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는 나를 대신해서 신뢰가 되어 주고,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버틸 수 있는 안전한 현금 창고가 되어준다. 때로는 같이 힘을 보태고, 소주 한잔 같이 해줄 동료가 힘이 되고 큰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다. 아침에 출근하기가 힘들기는 해도 일하러 갈 곳이 있고, 일할 책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 모든 것이 직장인이게 가능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직장은 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연습무대가 되어 준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지만, 지난 15년간 직장생활의 경험과 기반이 있기에 지금의 작가로, 강사로, 컨설턴트로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좀 더 영향력 있고 유명한 사람이 된다면, 강의를 할 때 마지막은 꼭 이런 말로 마무리를 하고 싶다.
“이미 내가 잡아 놓은 물고기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 마리만 더, 더 큰 물고기를 잡고 싶다는 생각에 호수에서 유영하는 다른 물고기에서 행복을 찾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이미 내가 잡아 놓은 물고기, 내가 가지고 있는 현재에 행복이 있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걸 보는 눈이 없을 뿐입니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에서 행복을 찾고 즐길 수 있는 눈이 있다면 그 미래도 좀 더 빨리, 가까워 질 것입니다. ”
오늘은 코로나로 인해 매우(?) 불안한 나 자신의 미래를 위로하고, 이 시대 직장인들 분께 소소한 위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