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라서 할 말은 좀 할게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중에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남한의 여자와 북한의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모티브로 한 드라마였는데, 소재 자체도 신선했고 무엇보다 남자 주인공 현빈, 여자 주인공 손예진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흥행이 보장된 드라마였다. 물론 여기에 탄탄한 스토리, 꿀잼 대사들, 극적인 반전 등이 더해지면서 드라마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오늘은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면서 느낀 점을 가지고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어찌어찌하여 북한의 군인 남자 현빈은 휴전선을 넘어 남한에 오게 되었다. 사랑하는 여자 손예진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지라 집에서 빈둥거리는 시간이 많아지게 되고, 이때 온라인 게임을 접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게임에 ‘게’ 자로 모르고 살았는데, 현빈은 급속도로 게임에 빠져들게 되고, *현질을 넘어 *현피까지 시도하게 된다.
*현질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을 사는데 현금을 쓰는 것
*현피 : 현실 PK(player kill). 게임에 과하게 몰입하여 그 캐릭터의 주인공끼리 현실세계에서 만나 실제 싸우는 것
물론 드라마 속 가상 상황이기는 하지만, 현빈이 게임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누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누구나 게임을 하고, 게임에 쉽게 빠져들기 때문이다. 때론 킬링 타임용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루 몇 시간 이상씩 투자하는 취미이자 삶의 일부가 된다.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 이유나 게임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사람들이 게임에 빠져드는 데는 몇 가지 공통된 이유가 있다. 물론 재미가 가장 큰 요인이겠지만, 그 재미를 일으키는 데는 게임 속에 잘 설계된 몇 가지 요소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 번째, 다양한 난이도의 QUEST가 주어진다.
우선 게임에서는 끊임없이 Quest (과제)가 주어지는데, 크게 두 가지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적당한 난이도의 퀘스트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집중하고 노력해야 깰 수 있는 퀘스트이다. 게임 속에서 우리는 적당한 난이도의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경험치를 쌓고 레벨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게임을 해가는 노하우가 생기기 기도 하고, 이런 퀘스트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하기에 게임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생긴다.
하지만, 게임에서의 퀘스트가 평이하고 쉬운 난도로만 주어진다면 몰입감은 떨어질지 모른다. 사람의 도전의식이라는 것을 자극하지 못하는 순간 흥미는 반감된다. ‘쉽다’, ‘별거 아니네’라는 자만심이 드는 순간 몰입감이 떨어지고 손에서 게임을 놓을 수 있다. 그래서 게임 내에서는 지속적인 과제 수행과 더불어 유저가 할 수 있는 능력보다 살짝 어려운 수준의 퀘스트가 주어진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퀘스트를 해낼 때 더 큰 성취감을 느끼고, 이때의 짜릿함으로 인해 점점 게임에 몰입하게 된다.
두 번째, 보상과 성장이 있다.
게임에 빠져들게 되는 두 번째 요인은 보상이다. 게임 속에서 내가 수행한 퀘스트에 대한 철저한 보상으로 인해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게임 속 보상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주어진다. 첫 번째는 주어진 퀘스트를 해결할 때마다 게임 머니나 특별한 아이템이 주어진다. 때로는 이 아이템에 희귀성이 있어서 그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더욱더 퀘스트에 빠져들게 되고, 시간을 투자하기도 한다.
이런 즉각적인 보상 외에, 게임에 좀 더 몰입하게 하는 보상은 성장이다. 사람들은 게임 속에서 레벨업이라는 성장 과정을 맛보면서 게임에 좀 더 몰입하고 빠져든다. 게임 속 성장이라는 보상은 현실과 매우 대비되는 상황이기에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현실 속에 나는 매일 정체되어 있고, 현재에 머문다. 때로는 찌질이 궁상 같기도 하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기만 하다. 하지만 게임 속에서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매일매일이 다르고 성장한다. 어제는 레벨 10이었는데, 오늘은 11 레벨이고, 내일은 12 레벨이 기대된다.
인간에게 있어 성장만큼 큰 보상이 또 있을까?
하루하루 달라지는 내 모습, 성장해 나간다는 보상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 싶다. 그리고 게임은 누구보다 그런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이용한다. 게임 속 잘 설계된 성장 시스템으로 인해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열어 게임을 시작하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세 번째, 경쟁과 협력이 있다.
게임에서는 묘하게 사람의 승부욕과 소속감을 자극한다. 우선 게임 속에는 리더보드나 친구와의 순위 등을 표시함으로써 묘하게 경쟁심을 자극하고 있다. 근데 이게 게임에 빠져들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몇 점만 더 올리면 내가 이기는데’, ‘나보다 못한 저 사람보다 내가 레벨이 낮네’, ‘조금만 더 노력하면 10위권에 들어가겠는데?’ 등으로 경쟁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나를 게임으로 끌어들이는 요소가 된다.
또한 게임 속 나는 혼자가 아니다. 게임 속에서는 커뮤니티나 길드 등으로 몇몇 사람들이 그룹을 맺을 수 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자연스레 소속감을 느끼게 되고, 서로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기도 한다. 혼자 하기 어려운 퀘스트를 다 같이 수행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 때로는 이 그룹이 현실 속 가족이나 친구, 동료보다 더 큰 위로를 전해주기고 하고, 뭔가 함께 해간다는 생각에 진한 동료애를 느끼면서 지속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처럼 게임은 단순히 즐거움이나 쾌락만을 제공하며, 우리를 중독시키는 것이 아니다. 소위 게이미피케이션(게임화 기법)이라고 하는 다양한 설계 요소들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잡아 두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과제, 성취와 보상, 경쟁과 협력이라는 3가지 요소가 사람들로 하여금 참여하게 하고, 몰입하게 하고, 동기부여를 해서 자신도 모르게 재미를 느끼고 빠져드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게이미피케이션은 비단 게임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잡아 두기 위한 기법이 게임이 아닌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깝게는 우리가 매일 들락거리는 커피숍에서 제공하는 마일리지나 스탬프 카드, 사무실이나 아파트 계단에서 만나는 칼로리 계단, 카레나 떡볶이 가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맵기 난이도에 따른 보상 정책 등도 게임의 요소를 끌어들여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도 게임처럼 할 수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게이미피케이션을 일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된 논리이기는 하지만, 일을 게임처럼 할 수 있다면 좀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물론 일과 게임은 그 시작이나 근본부터 다르다. 일을 게임처럼 즐겁게, 몰입해서,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보면 하나의 가능성이 보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왕이면 즐기면서 하면 조금이나 낫다. 그런 의미에서 게임은 몇 가지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게이미피케이션의 요소들을 일하는 것에는 어떻게 적용해 볼 수 있을까?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