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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실종시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언어

by 갓기획

강의를 하면서 먹고 산지 언 3개월째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강사들과 차별화를 시도하던 중, 강의 자료를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고안해 냈다. 처음에는 요청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강의가 끝나면 어김없이 메일 몇 통이 와 있다.


특히 신입사원 교육이 끝나고 나면, 강의자료 요청 메일이 쇄도하고는 했다. 메일에는 교육 자료가 필요한 이유와 명분으로 시작해서, 꼭 필요하니 보내 달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가끔은 오히려 내가 미안할 정도로 구구절절하게 사연을 쓰는 친구들도 있다. 바쁘더라도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거절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회의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화장실 가기 전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자료를 요청할 때와 받은 후에 보이는 태도가 다르다. 이것은 내가 통계로도 증명할 수가 있는데, 10명 중에 9명은 자료를 받기 전까지의 예의만 보여준다. 딱 거기까지가 그들이 보여주는 예의의 전부이다. ‘잘 받았다, 고맙다’라는 회신은 없다. '00님께서 0월 0시 00분에 메일을 확인하셨습니다'라는 확인 메일만 올 뿐, 그 누구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몇 명에게는 자료를 잘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메일까지 보내 봤지만, 이 역시 확인만 할 뿐 회신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료를 보내줬다고 해서 어떤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잘 받았다’, 나아가서 ‘고맙다’는 인사 정도면 충분한데 그 마저 돌아오지 않는 현실 앞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며칠 전에 위의 상황과 대조되는 경험을 통해, ‘아 그래도 아직 사람 사이의 정이 남아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지인과 야구장에 가기로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후배인 내가 티켓 예매를 자청했다. 예매를 진행하기 전에, 지인에게 약속 일정을 확인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답장의 내용에는 티켓을 예매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알기에 고마움의 표시로 티켓 값은 본인이 내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물론 괜찮다고 했다. 대신 두산 팬인 지인과 한화 팬인 내가 경기 결과에 따라 티켓 값을 내는 내기를 제안했다. 지인이 흔쾌히 동의했다.


물론, 그 내기에 이겨서 10만원의 티켓값을 세이브할 얄팍함(?)도 있지만, 설령 그 내기에 져서 티켓값을 내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에 충분히 보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인이 내뱉은 '고맙다'는 한 마디에 티켓 오픈 시간 30분 전부터 노트북 앞에 앉아서 좋은 좌석을 차지하기 위해 스트레스 받고, 광클릭을 해대느라 손목은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충분히 따뜻했다.


커피 한잔 사주는 것,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주는 것, 길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사소한 배려에도 상대방의 노력과 마음은 담겨있다. 보이는 것은 비록 작을 지라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유명한 빙산 이론을 뭔가를 분석할 때나 문제를 해결할 때만 쓰지 말고, 인간관계에서도 써먹었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여준 그 빙산의 일각이 나에게 보이기까지 상대방의 마음속에 드러나지 않는 빙산의 크기는 얼마나 클지를 헤아릴 줄 아는 안목도 있었으면 한다.


다른 사람이 베푸는 배려나 관심에는 최소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예의는 갖추자. '고맙습니다'에는 인정과 보상의 의미가 담겨있다. 인정과 존중은 인간의 가장 고차원적인 욕구라고 하는데, 이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노력과 번거로움에 대한 나의 인정이며,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큰 의미를 전할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권리가 되고, 권리가 생기면 거기서부터 갑질이 시작된다. 권력을 휘두르고 진상 짓을 하는 것만이 갑질은 아니다. 상대방의 배려에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는 것, 그것도 소소한 갑질이다.


올 여름에도 '하의 실종시대'가 왔다고 언론에서 떠들어 되는데, 언젠가는 '고맙습니다 실종시대'가 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 둘씩 집 나가있는 ‘고맙습니다’가 하루빨리 컴백홈 하기를 기대해 본다. 상대방이 나에게 보이는 호의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 밑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마음과 배려를 알고, 꼭 이렇게 말해 보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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