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는 SNS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얻는 언어
얼마 전, 평소 친하게 지내는 선배가 부탁 하나를 해왔다. 회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모대학교의 기획력 과정 교재개발을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교재 개발비는 없으니, 대신 나중에 강의가 있을 때 불러주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무료봉사(?)였다. 평소 도움을 많이 받은 선배이기에 거절할 수도 없고, 마침 7월이 한가한 시즌이라 흔쾌히 허락했다.
그리고 며칠 후, 선배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교재의 내용이 너무 좋고, 고객사에서도 매우 흡족해한다는 것이었다. 회사 대표가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고 한다. 선배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감사의 의미로 소정의 수고비를 입금해 왔다. 물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다시 한번 마음을 써주는 선배의 마음이 고마웠다. 꽤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 며칠 후, 낯선 번호로 문자 하나가 왔다.
‘작가님. 박 실장에게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이번 교재 개발에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 덕에 저희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00 컨설팅 대표 000 배상-
‘오잉? 이건 또 뭐지?’ 싶었다. 하지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보니, 대략적인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그 선배가 이번 교재 개발을 하는데 내 도움이 컸다고 회사 대표에게 공치사를 해준 것 같았다. 아마 이런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싶다.
“박실장, 이번 교재 개발 아주 성공적이었어. 수고 많았어”
“네 대표님.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는 아니었던 것 같다. 선배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표님. 이번 교재 개발은 제 힘으로만 한 것은 아닙니다. 000 작가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지원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이다.
내가 한 일이 어떤 성과를 내고 상사나 선배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순간, 과연 내 실력이나 노력 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K 대리의 도움이 컸습니다.’, ‘00팀의 지원이 좋았습니다.’, ‘L과장이 낸 아이디어 덕분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함을 본 적이 있나 싶다.
보이지 않는 경쟁이 펼쳐지고 암암리에 사내 정치가 만연한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남을 칭찬하고 공을 나누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나를 드러내고 싶은 이기심이나 모든 것을 내 공으로 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때론 그 사람의 도움을 잊어버렸거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기 싫어서 일부로 안 하고, 몰라서 안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00 덕분입니다.’, ’ 00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00가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상사에게 나의 겸손함을 드러낼 뿐만이 아니라, 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준다. 나아가 내가 인정한 그 사람이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한번 나를 도와줄 수도 있다. 논공행상을 하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잊지 않고 같이 드러내 줌으로써 그 사람은 다음 기회에도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영화배우들이 영화제 시상식에서 다 외우지도 못하는 그 많은 이름들을 열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TV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 미션 중 1:1로 배틀을 해서 한 명이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배틀에 임하는 두 명의 모습이 사뭇 비장하다. 본 공연을 앞두고 둘이 연습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10년쯤 선배로 보이는 A씨가 후배 B씨에게 마지막 부분을 이런 가사와 리듬으로 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한다. B씨는 그 조언을 받아들였고, 본 공연에서 둘의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심사위원들의 칭찬이 이어진다.
“와. B 씨 마지막 부분 정말 좋았어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B 씨의 답변이 이어진다.
“네 감사합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 순간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B 씨를 향했고, B 씨는 가장 빛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승리도 B 씨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운이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다. B 씨는 심사위원들이 칭찬 앞에 겸손의 미덕은 발휘했지만, 결정적으로 이 한 마디를 생략했기 때문이다.
‘A 씨의 도움이 컸습니다.’
혹시 B씨가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이 강해서 깜박했는지는 몰라도, 다른 누군가는 알고 있다. 그게 온전히 B 씨만의 실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오디션을 이어나갈 B 씨에게 누군가 다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모르겠다. 남을 이용만 하고, 남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할 줄 모르는 B씨를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얼마 전 왠지 씁쓸한 명언 하나를 본 적이 있다. ‘기쁨을 나눴더니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더라’는 말이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말이었다. 직장생활 인간관계의 민낯이자 본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는 남들보다 더 잘나야 하고, 앞서가야 인정받는 곳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를 드러내고 싶고, 칭찬과 인정 욕구 앞에 약해지기 마련이다. 남의 약점은 필터 없이 드러내고 깎아 내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지도 모른다. 인간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회사라는 공간이 기본적으로 경쟁을 전제로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는 싸움터도 아니며, 어떤 일이든지 혼자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많든 적든 누군가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때 그 도움을 기억하고 알아주는 것, 나아가 그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고 티 나게 값을 줄 아는 것, 그것은 분명 그 사람을 좀 더 빛나게 하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남의 결점은 감추고, 장점은 적극 알리는 것 그것의 진정으로 경쟁을 즐길줄 알고, 성공하는 사람의 표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혼나는 경우도 있고, 깨지는 경우도 있다. 그때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겸손하고, 책임감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깨질 때는 내 탓이요, 잘 될 때는 남의 탓이다.'
특히 상사의 칭찬이 날아드는 순간에는 '누구의 도움을 해시태그로 걸지?'가 첫 번째 질문이 되어야 한다. #김대리님 아이디어, # 박사원 자료 지원 # 회계팀 협조 인터뷰 등의 태그를 걸어 둔다면, 앞으로 더 큰 기회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해시태그는 SNS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