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갓기획 Aug 02. 2019

제12화:사소함에서 실력이 묻어난다.

꼰대니까 할 말은 좀 할게

“따르르릉…따르르릉..”


책상 건너편 상사의 자리에서 전화벨이 울려 된다. 바빠 죽겠고, 귀찮아 죽겠지만 막내인 내가 전화기를 든다. 대충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는다. 메모를 남긴다.


[00 회사, 00 부장 전화 요청]


최소한의 메모만 남긴다. 자리에 돌아온 팀장님은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다.


"언제 전화 왔어?" , "왜 전화했데?" , "다시 전화를 해야 하나?"


등의 질문이 이어진다. 일일이 질문에 응대하느라 또다시 귀찮은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렇게 질문하는 상사도 귀찮기는 매한가지다. 그리고 상사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돌아간다.


‘메모를 이 따위로 해놨네. 내가 다시 이것저것 물어봐야 하잖아. 전화메모 하나 제대로 못하는 직원이 무슨 일인들 제대로 하겠어’


회사에서 그때그때 직접적으로, 즉각적으로 피드백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늘 잔소리를 해대고 지적질을 해대는 상사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일단 말을 아낀다. 대신 그 말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사소한 일을 대하고 처리하는 직원들의 태도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간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사의 머릿속에는 항상 '김사원 업무 능력. xls'이라는 엑셀 파일이 열려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 파일을 열어 직원들의 실력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의미를 담고 나만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실력은 사소한 일에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더해서 120%, 150%, 200%를 만들어 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복사하는 일, 회의실 정리하는 일, 자료를 출력하는 일 등 별일 아닌 듯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력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중요한 일, 멋있는 일만 하면서 거기서 내 실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일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이런 사소한 일을 하는 자세나 결과에서도 차이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회사 일에는 분명 귀천이 있다. 핵심적이고 중요한 일이 있고, 하찮고 귀찮은 일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판단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내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주어진 일을 100% 이상 어떻게 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실력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고 쌓여간다.  ‘내가 꼭 이런 일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 일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 일을 하는 내 신세는 처량하기 그지없다. 매일매일이 의미 없고, 퇴사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로 말이다.


비서계의 대모로 불리며 대상그룹의 임원까지 지낸 '전성희 이사'라는 분이 있다. 이사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늘 손님이 오면 손수 커피를 타는 그녀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다. 커피를 타는 하찮은 일까지 직접 하실 필요는 없지 않냐고 말이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의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저는 커피를 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손님에게 커피를 드리는 일은 저희 회사의 이미지를 나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이 분이 00 대학을 나오고, 00개의 외국어를 구사하고, 00라는 직급에 ‘내가 커피 타는 일이나 해야 돼?’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신입사원 시절, 팀장님께서 수백 건에 달하는 문서를 정리하라는 지시를 했다. 크게 비중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냥 널브러져 있는 문서들을 정리하라고 시킨 일이었다. 하지만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사소한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나까지 사소한 사람일 수는 없었다. 잘하고 싶었다. 그 문서들을 가지고 가장 큰 회의실로 갔다. 거기에 그 문서들을 다 펼쳐 놓고, 그룹화하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갔다.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문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따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팀장님께서 흐뭇하게 보고 있다가, 나랑 눈이 마주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펼쳐 놓고 정리하는 거 어디서 배웠어?"


그때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사소한 일도 제대로 하려고 하는 자네의 모습이 참 보기 좋네. 그런 태도는 어디서 배웠어? 앞으로도 그렇게 일해주기를 바래’


는 아니었을까? 물론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나에게는 다른 신입사원들보다 조금 더 빠른 시기에 기획서를 쓰고, 프레젠테이션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을 보면 분명 긍정적인 의미였음을 알 수 있다. 사소한 일에 내 실력을 묻어나가다 보면, 누군가는 그것을 인정해주고 사소한 일이 아닌 멋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과학용어이자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소한 일에서 큰일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중요하고 , 의미 있는 일을 잘 해내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놓인 사소한 일에 의미를 담고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처리해 내는 것, 거기서부터 긍정의 나비효과는 시작될 것이다


저 앞에 상사의 전화벨이 울려대고 있다. 이제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제11화: 랍스터에게 배우는 직장생활의 한 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