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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05. 2019

제13화: 나만 꼰대냐, 너도 꼰대다.

꼰대니까 할 말은 좀 할게

나는 MBN 예능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의 애청자이다. 홀연히 도시를 떠나 산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힐링이 된다. 방송에서는 2박 3일 동안 산 속에 사는 자연인 한 명과 개그맨 이승윤 씨가 함께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재미도 있고 삶의 애환이나 의미도 잘 녹아있다. 그래서일까? 2012년 첫 방송이래 꾸준한 인기와 함께 현재까지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개그맨 이승윤씨에게 첫 단독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그 만큼 기대감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승윤 씨는 1회분을 찍고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더러움’ 때문이었다. 자연인들의 생활 방식이나 그들의 몸이 더러워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인들의 흙 묻은 손이나 손톱에 낀 때를 보고 있으면, 그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기가 너무 역겨웠다고 한다. 솔직히 화면으로 보는 우리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걸 직접 먹어야 하는 본인은 어땠겠는가?


어쨌든 방송이고, 어르신들이 주시는 거 안 먹을 수도 없고 해서, 억지로 먹었다고 한다. 그렇게 더럽고, 지저분한 음식을 먹고 촬영이 끝난 후 도시로 돌아갔는데, 그의 걱정과는 다르게 배가 아프거나 탈이 난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도시에서 먹은 햄버거, 짜장면을 먹고 탈이 난 적은 많았지만, 자연인이 준 그 음식을 먹고 탈이 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오히려 더러운 것은 나였다. 스마트폰의 세균, 온갖 화학조미료 가득한 음식을 먹고사는 내가 더러운 사람이었다."


그동안 뭔가 불편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으면 남 탓을 하거나 상황 탓을 하고는 했는데, 이승윤 씨의 말을 들으면서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하면 내 생각이 잘못되었거나 나한테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 이어졌다. 남 탓을 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승윤씨가 나는 자연인이다 첫 촬영에서 느꼈던 것처럼 요즘 세대가 마주한 회사라는 공간이 비슷할 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답답하고, 꽉 막혀있고, 이해가 가지 않는 공간이다. 특히 그 안에서 상사라는 이름으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가 많다. 요즘 세대들이 살아온 경험에 비춰볼 때 선배나 상사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아직 가보지 못한 길과 입장에 대해서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과 경험으로 판단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적어도 꼰대라는 일관된 기준으로 선배와 상사를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할 수 있는 얘기, 책임감에 하는 얘기, 리더로서 하는 얘기까지 다 싸잡아 꼰대라고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비난의 화살을 윗사람이나 상사에게만 돌려서 그들을 꼰대라고 몰아세우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성숙함을 키웠으면 좋겠다.


- 8시 50분까지는 자리에 앉아 있어라는 충고에, '꼰대네'

- 상사에게 피드백을 받을 때는 메모를 좀 하라는 조언에, '꼰대네'


라고 딱 세 글자의 답을 정해 놓지 말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저 말이 나한테 도움이 되지는 않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꼰대를 특정짓는 말과 행동은 수없이 많지만 꼰대의 특징 중에 핵심은 '내가 가진 것, 내 생각이 전부이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꼰대의 본질이자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럼 다시 이 지점부터 생각해 보자. ‘내 생각만이 옳은 것’ 이 꼰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내가 가진 생각으로 선배를 꼰대라고 비난하는 것도 결국 같은 꼰대는 아닐까?  


어쩌면 이승윤 씨가 그랬던 것처럼, 자연인의 더러움을 욕하고 피하기 전에, 내가 충분히 그 안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지를 한 번쯤 돌아볼 수 있는 성숙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굳이 옛날 말 꺼내고 싶지는 않지만, '어른들 말 들어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오래된 격언에 담긴 의미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단 10%라도 믿고 실천하려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어쩌면 이승윤 씨가 그랬던 것처럼, 그 말 듣고 따라 한다고 해서 진짜로 탈 날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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