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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07. 2019

제14화: 일할때는 '왜' 라고 좀 묻고 시작할까?

꼰대니까 할 말은 좀 할게

모회사 교육팀 과장님과 하반기 교육 방향에 대한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점심시간 직후 진행된 미팅이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는 그렇고, 지난 7월에 있었던 교육에 대한 리뷰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저런 과장님의 피드백이 끝나고, 혹시 교육 때 찍은 사진 몇 장만 받을 수 있냐고 요청했다. 그리고 정확히 그때부터 약 20여 분간 과장님의 끝도 없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요즘세대들을 향한 하소연이었다.


“대표님, 안 그래도 사진 말인데요. 그때 저랑 같이 뒤에서 청강했던 신입사원 있죠? 제가 그 친구에게 교육 시작 전에, 교육하는 거 사진 좀 찍으라고 얘기했거든요. 다음날 메일로 사진을 보내왔더라고요. 일처리가 빨라서 좋다 했는데, 파일을 열어보니 글쎄 사진이 꼴랑 2~3장 밖에 없는 거 있죠? 그래서 제가 이게 전부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실습하는 장면은?’, ‘발표하는 장면은?’이라고 되물었더니 한다는 이야기가 ‘그건 시킨 적이 없잖아요’라고 되받아 치더라고요. 거기다 대고 제가 무슨 말을 더하겠어요.”


속에 천불이 나서 씩씩거리며 말하는 과장님의 표정과 억양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과장님이 느꼈을 답답함이 고구마 100개는 삼킨 듯한 텁텁함으로 아직까지 내 뇌리에도 남아 있다. 


물론 ‘교육 사진을 왜 찍는지’, ‘어떤 어떤 장면을 찍어야 하는지’, ‘어디에 쓸 것인지’ 등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해 주지 않은 과장님의 실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쌍방과실이다. 하지만 업무 지시를 받고 딱 한 번만, ‘사진을 왜 찍으라고 하셨을까?’, ‘교육 사진을 찍는 이유가 뭐지?’ 하고 일을 하는 이유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게 아니라면 상사에게 한 번쯤 질문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과장님 말씀 그대로 꼴랑 2~3장의 사진을 메일로 보내면서, 나는 할 일 다 했다는 표정으로 돌아서는 쌔드 엔딩은 연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과연, 과장님은 왜 사진을 찍으라고 했을까?


물론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추측해 보건대, ‘교육생들에게 기념으로 보내 주거나’ 아니면 ‘교육결과보고서에 시각적인 이미지로 삽입하기 위해서’, ‘전달 교육 자료를 만들기 위해서’ 등 어떤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일을 완수해 내기 위한 기초 자료로 사진을 요청했던 것인데, 신입사원이 보내준 2~3장의 사진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시간을 되돌려 교육생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CG로 가짜 사진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텍스트만 가득 담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처참함은 온전히 과장님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이나 연차가 적은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일은 A to Z로 끝을 책임지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 중간 과정인 경우가 많다. 그 일이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누군가가 하는 다른 일의 인풋으로 활용된다. 이때 그 직원이 처리한 일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최종일의 결과도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간에서 그걸 수습하기 위한 상사의 고단함과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내가 해낸 일의 '아웃풋'은 또 다른 누군가가 하는 일의 '인풋'이 된다. 최소한 그 일이 전체 과정 중 어디쯤에 있는 지, 일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 내 일의 아웃풋이 다른 누군가의 정확한 인풋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을 하는 일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하고 시작하자. 일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내가 하는 일의 최종 아웃풋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그 일이 끝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하는 일의 인풋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 제대로 알고 일해도 내가 하는 일의 퀄리티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물론 전문성이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적어도 처음부터 일을 다시 하거나 상사의 답답증을 유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상사가 시킨 일에 1이 아닌 1.5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다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항상 '왜' 라고 묻고 시작해보자.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뭐지?'  


오늘 과장님과의 미팅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캐논에서 파트장으로 일할 때 파트원으로 일했던 후배가 보고 싶어 졌다. 굳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는 행사, 교육, 워크숍 등 모든 사진을 찍어서 기록했고, 주요 장면 위주로, 내가 원하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파악해서 사진에 의미까지 담아내는 후배였다. 사진 하나를 찍는 일을 해도, 일을 하는 이유와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일하는 후배였다. 어느덧 이 녀석도 팀장이 되어있을 나이인데, 지금은 어디에서 다른 후배들에게 '일의 목적을 확인하고 해라' 라고 훈계하며, 따뜻한 꼰대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난히 보고 싶어 지는 오늘이다.



 왜 라고 묻고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1아 1.5로 바뀐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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