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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기획 Aug 09. 2019

제15화:신뢰를 '쌓는다'라는 것의 의미

꼰대니까 할 말은 좀 할게


신뢰라는 키워드를 꺼내면서 많이 망설였다. 과연 나는 신뢰라는 단어 앞에 얼마나 당당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막아섰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친구나 선후배들과,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신뢰 있는 사람인가’를 자신할 수 없기에 글을 쓰기까지 망설였다. 하지만 최근 겪은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며 신뢰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 보기로 했다.  


최근 나는 일주일 사이에 3 연타로 약속을 캔슬당했다. 세 약속 모두 오래전에 한 약속이었고, 약속이 깨진 것은 약속 당일이었다. 그 약속을 취소한 상대방에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도 비슷한 이유로 그 약속을 취소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유혹(?)이 있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가 포기했던 일들과 희생했던 가치들이 아깝게 느껴지고,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첫 번째 약속은 처음 만나기로 한 어느 기업교육 강사님과의 만남이었다. 만남 당일 아침에 카톡이 왔다. 갑자기 강의 스케줄이 잡혀서 다음에 보자는 것이었다. 나와의 만남이 생계보다는 중요하지는 않기에,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나라도 그럴 수 있다. 괜찮다’는 말로 정리했다.


두 번째 약속은 후배 한 명과 선배 한 명, 셋이 만나는 약속이었다. 까탈스러운 선배 2명의 비위를 맞추며, 중간에서 후배가 일정과 장소를 잡기 위해 매우 수고스러운 노력을 했다. 약속 당일 후배에게 카톡이 왔다.


‘형님, 000 형님이 몸이 안 좋으셔서 오늘 약속 취소하자고 하십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래?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근데 네가 왜 죄송하니? 그 형님이 죄송해야지.’라는 말로 약속을 정리했다.


마지막 약속은 어느 선배와 야구장을 가기로 한 약속이었는데, 앞의 두 경우와는 전개가 조금 다르다. 일단 약속 당일 카톡이 오지는 않았다. 선배는 약속 시간에 야구장으로 왔고, 우리는 치킨과 음료를 사서 야구장에 입장했다. 서로 응원하는 팀이 다른지라 멱살만 잡지 않았을 뿐, 피 튀기는 말싸움을 하며 신나게 야구를 봤다. 그러던 중 4회 정도 되었을 때, 그 선배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대표님. 죄송한데, 사실 오늘이 어머니 생신이셨네요. 대표님과의 약속을 깰 수는 없어서 일단 오기는 왔는데, 어머님과 저녁은 같이 먹지 못하더라도 가서 얼굴 보고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가 저녁 8시였다. 집에 간다 해도 9시는 넘을 텐데,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럴 거면 미리 말씀을 주시지. 야구 다음에 봐도 괜찮은데”


라고 말했더니 선배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오래전에 한 약속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약속을 깰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야구를 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혼자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사주시고, 티켓 값을 주시고는 홀연히 떠나셨다.


위의 세 경우 모두 나는 상대방의 일방적인 이유로 약속을 캔슬당한 희생자(?)였다. 마지막 야구장 선배의 경우도 정확하게 말하면 약속을 지키지는 못한 것이다. 그리고 셋 모두에게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이유가 충분했다.


‘강의가 잡혀서, 몸이 아파서, 어머니 생신이라.’


그런데 그 약속을 깨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기대하는 바가 달라서, 위의 상황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이번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앞에 두 사람은 나에게 최선의 변명을 했고, 마지막 사람은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사실 약속을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다. 내 ‘몸’과 ‘마음’이 허락해야 하고, 주변에서도 도와줘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에 약속을 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까지 더해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약속을 하기는 쉽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회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만큼 약속과 규칙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출근 시간을 지키는 것,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자리에 앉아 있는 것, 점심 약속이나 저녁 약속을 지키는 것, 해야 할 일을 제 때야 하는 것, 보고서 제출 날짜를 지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 개인과 회사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이다.


하지만, 이 별것 아닌 것 같은 약속들을 지켜 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정한 규칙이나 약속이 아니기에, 지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입사하기도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약속이기에, 불평불만을 하기 전에 일단 지키는 것이 맞다. 신뢰는 이런 소소한 것들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된다. 신뢰는 찰나의 예술이 아니라 기다림의 미학이다. 어떤 결정적인 계기를 통해서 한 방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쌓여가는 것이다.  나와 회사 사이의 약속을 지키고, 내가 한 말에 대해 책임지고 그대로 행동하는 것에서부터 신뢰가 싹트고 쌓여간다.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 항목이 있지만, 나는 ‘실력’보다 ‘인성과 태도’가 우선이라고 본다.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성과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단연 신뢰이다. 신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네 가지 조언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1.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라.

생각 없이 약속하지 말라는 뜻이다. 쉽게 약속하고 쉽게 결정하지 말고, 충분히 생각해 보고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 봐야 한다. 특히 보고서 마감 날짜 같은 것을 잡을 때는, 의욕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확실히 내가 제출할 수 있는 날짜를 정해서 약속하는 것이 좋다.


2. 말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라. 

실력에는 공부가 필요하지만 신뢰에는 의지가 필요하다.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의지와 노력이 더 필요한 일이다. 어느 정도 자기희생이 필 요하고 불편함이 따른다. 교통체증과 지옥철을 뚫고 9시까지 회사에 가는 일부터 정해진 일자에 맞춰 일을 마무리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든 내가 정한 것이든, 그 약속들을 꾸역꾸역 지켜 나가는 것, 그것에서부터 신뢰는 쌓여갈 것이다.


3. 사소한 것들부터 실천한다.  

인생은 한방이라고 하는데, 신뢰에는 한방이 없다. 신뢰는 뭔가 대단한 계기를 통해서 한방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에서부터 신뢰를 쌓아가다 보면, 나는 조금씩 신뢰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다. 신뢰는 시간과 인내의 산물이다. 주변에 소소한 일부터 책임감 있게 하고, 약속을 지켜보자.


4. 쌓는 것 못지않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앞에 한 말을 바꿔본다. 신뢰에는 한방이 없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신뢰에도 한방이 있다. 신뢰가 무너지는 데는 쌓는 것의 10분의 1, 100분의 1이면 충분하다. 말 그대로 한방에 훅 간다. 그래서 신뢰는 쌓는 것 못지않게 그것을 꾸준히 관리하고 지켜 나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 글은 사회 생활을 막 시작한 요즘 세대들에게 향하는 메시지 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쓰는 반성문과 같은 글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들을 겪고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약속들, 하기로 하고 하지 않았던 나의 무책임함, ‘약속 시간 5분쯤 늦으면 어때. 이해해 주겠지?’라고 일방적으로 상대에게 강요했던 나의 오만함 등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의 신뢰 없는 말과 행동에는 상대방의 배려와 희생이 담보되어 있었을 텐데,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신뢰’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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