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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설득하고 싶다면, 상대의 마음속에 닻을 내려라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by 갓기획

"당했다"


정확하게 친구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며칠 전 친구가 모 교육기관에서 온라인 강의를 찍기로 했다면서 좋아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계약 날이었는데, 뭔가 잘못되었나 보다. 일단 친구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한다.


“야. 나 오늘 계약하는 날이었잖아. 편당 50만 원에 찍기로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른 기관에서는 보통 60만 원은 주더라고. 근데 나는 50만 원에 도장 찍었다. 아 뭔가 기분이 좀 그러네”

“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도장 찍은 거야? 안 한다고 하지 그랬냐?”

“아니 그때는 몰랐지. 계약 담당자가 그러는 거야. 보통 대학교수, CEO 등이 40만 원에 계약한데. 근데, 50만원 준다고 하니까, 이거 웬떡이야 하고 냅다 도장 찍었지.”

*위 금액은 실제 금액이 아닌 가상의 금액입니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꾹 참았다. 내 친구가 돈은 매우 밝히는데, ’아직 많이 순수하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스쳐가는 개념이 하나 있었다.


'앵커링 이펙트 (Anchoring Effect)'


우리말로 하면 닻 효과라는 것이다. 정박하기 위해 닻을 내린 배는 닻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처음에 들은 정보를 머릿속에 Anchor(닻)로 삼아 기준으로 정하고, 다음 선택을 결정하는 행동 패턴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처음 접한 정보가 내 머릿속에 자리하여 어떤 기준으로 형성이 되고, 추후 어떤 의사결정에 대한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느 옷 가게에 들어가서 내가 처음 본 물건이 10만 원짜리라고 하면, 그 다음부터 접하는 8만 원, 5만 원짜리 왠지 싸게 느껴진다. 반대로 처음 접한 옷이 2만 원이라면, 그 다음부터 접하는 5만 원짜리 옷은 왠지 비싸게 느껴지고, 8만 원짜리 옷은 언감생심이 되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백화점 명품 매장에 가면 왜 사람들이 사지도 않을 수천만 원짜리 옷이나 소품을 가장 잘 보이는데 전시해 놓는 것일까?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아마 사람들이 그 제품을 보고 나면, 다른 곳에 진열되어 있는 200-300만 원짜리 가방이 상대적으로 싸다고 느끼는 것은 아닐까? 다른 예로, 1억 원에 1만 원은 코 묻은 푼돈처럼 느껴지지만, 10만 원에 1만 원은 제법 큰돈처럼 느껴지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발동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친구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친구의 머릿속에 '경영자, 교수 40만 원'이라는 앵커가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강사님께는 50만 원 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으니까, 상대적으로 대접받고 많은 금액을 받는구나라고 생각이 앞섰던 것이다. 담당자의 앵커링 이펙트 전략에 제대로 걸려들어, 한 방에 설득당한 것이다. 그걸 뒤늦게 깨달은 친구의 외마디 외침이


“당했다” 였던 것이다.


앵커링 이펙트와 관련하여 어느 옷가게의 사장님과 점원이 빚어낸 환상의 콜라보, 탁월한 판매전략에 관한 사례가 있어 소개해 본다. 어느 옷가게 점원이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다. 손님이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지, 점원에게 묻는다.


“이 옷 얼마예요.”

“제가 가격을 잘 몰라서요. 잠시만요. 사장님! 이 옷 얼마라고 하셨죠?”


멀리서 옷을 정리하던 사장님이 대답한다.


“그거 8만 원. 아 아니구나. 그 앞에 있는 옷이 8만 원이고, 그 옷은 5만 원이다.”


청년이 묘한 미소를 띠며 손님에게 이렇게 전한다.


“손님. 5만 원입니다. 비싼 거 아니에요.”


손님은 빛의 속도로 지갑을 꺼내서 계산을 하고, 만족해하며 사라진다.


이런 전략은 일상생활이나 업무를 할 때,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만족도를 올리는 데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약속에 10분 정도 늦는 상황이라면, ‘조금 늦어’, ‘금방 갈게’라고 말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자.


“야 진짜 미안. 나 20분 정도 늦어. 빨리 갈게"


그러고 나서, 20분이 아닌 10분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자. 분명 잘못은 내가 했는데, 오히려 친구가 고마워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퇴근 전까지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내일 오전에 보고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퇴근 전에 딱 가져가 보자. 팀장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면서 ‘오~ 요놈 일 좀 하는데? 일이 빠르네’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내가 내린 덫에 팀장님이 제대로 정박했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만남을 끝내고, 오늘은 밥을 차리기 싫다는 아내를 위해 중국집에서 시켜 먹기로 한다.


“짜장 두 개. 탕수육 하나. 군만두 하나요. 배달까지 얼마나 걸리죠?”

“40분 걸립니다.”

“허걱. 40분이요?”


피크 시간도 아닌데, 40분이라는 배달 시간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일단 기다려 보기로 한다. 다행히 음식이 20분 만에 도착한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음식에 흥분하는 아내와 딸아이를 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와 요즘은 중국집도 많이 똑똑해졌네. 예전에는 ‘금방 갑니다. 지금 방금 출발했습니다’라고 해놓고, 한참 지나고 음식이 와서 사람을 짜증 나게 했는데. 요즘은 제대로 앵커링 이펙트를 활용하네. 40분이라는 앵커를 만들어 놓고, 20분 만에 가져준다.’


이런 조삼모사가 따로 있나 싶어서 괘씸하기도 했지만, ‘사람 만족시키고 설득하는 거 별거 없네’라는 생각에 그냥 웃어 넘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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