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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해라

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by 갓기획

오늘따라 친구의 어깨가 푹 쳐져있다. 왠지 모르게 표정도 썩어있고,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뭔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렇게 한참을 시무룩해 있다가, 입에 방언이 터진다.


“야 나 진짜 빡돌아 미칠 것 같아. 너 알지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된 거? 내가 그거 좀 산다고 하니까 와이프가 뭐라는 줄 아냐? 나이 마흔에 pc 게임하고 싶냐? 집이 pc방이냐? 애가 뭘 배우겠냐? 그러는 거야. 아 진짜 같이 살기 힘들다.”


'스타크래프트'는 90년대를 휩쓸었던 pc게임으로, 현재로 따지면 배틀그라운드나 오버 와치 이상의 인기를 구가했던 게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돌' 세계에 비유해 보자면, 거의 BTS급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30-40대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해봤거나, 가슴 한켠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게임이 20년 만에 선명한 그래픽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출시가 되는데, 그 설렘을 와이프가 알아주지 못하니 친구가 꽤 속상한 모양이다. 가격도 겨우 3만 원 남짓밖에 안 하는데, 와이프는 죽어도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네가 아무리 스타크래프트의 고귀함과 가치와 추억을 떠들어 봐야 와이프는 이해 못할 거다. 니 와이프한테는 그저 한심한 게임일 뿐이지. 대부분의 여자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와이프에게 다짜고짜 게임 산다고 하지 말고,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때?


뭔가 특별한 대안이라도 기대하는 듯, 친구의 흥분이 좀 가라앉는다. 내가 다시 말을 이어간다.


“한때 니 와이프가 싸이월드 마니아라고 했지. 지금은 그 사이트 없어졌잖아. 아마 사진이고 뭐고, 다 날아가서 많이 속상했을 거야. 니 와이프한테 먼저 이렇게 말해봐. ‘여보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출시는 여보에게 있어서 없어졌던 싸이월드 사이트가 몇 년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거랑 똑같은 거야. 평생 3만 원에 싸이월드를 다시 할 수 있는데, 여보 같으면 그거 안 할 거야?”


말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 한다. 한마디로 상대의 언어로 치환해서 말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언어로 치환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네가 알고 있는 00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알고 있을 만한 것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상대방의 뇌에 이미 자리하고 있는 익숙한 정보에 링크를 걸어주는 것이다.



그림1.jpg A라고 말하지 않고, B로 치환해서 말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내가 하고 싶은 말 A를 말하지 않고, 상대방이 알고 있을 만한 B로 바꿔말해서 상대방의 이해를 돕고 공감을 유도한다. 관련해서, 도쿄대 하타무라 요타로는 책 ‘직관 수학’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은 나름대로 머릿속에 ‘형판’을 가지고 있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어떠한 현상이나 정보가 자신의 형판과 합치될 때 비로소 ‘알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상대방이 이미 가지고 있는 형판(틀)과 연결시켜 말하는 능력이 말 잘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친구가 바로 접수했다는 눈빛을 보내고, 바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하려고 한다. 성격 하나는 제대로 급한 놈이다. 일단 멈춰 세운다.


“야 아직, 한 가지가 빠졌어. 기다려봐.”

“빨리 사야 돼. 나 급하단 말이야”

“급할수록 돌아가. 그러다 일 그르친다. 기다려”


성미 급한 친구의 손모가지를 잡아 두고, 결정적인 한마디를 더 건넨다.


“네가 뭔가 설득을 할 때는 그것으로 인한 이익만 강조하려고 하지만 말고,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손실을 제거하는 전략도 필요해. 일명 손실회피전략이야.

“손실회피 전략? 그게 뭔데?


사람에게는 ‘손실회피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같은 크기의 가치라도 이익으로 얻은 크기보다, 손실로 잃는 크기를 상대적으로 크게 느끼는 것이다. 쉽게 말해 500원을 얻는 것의 가치는 ‘고작 500원’이라고 느끼지만, 500원을 잃는다고 생각하면 ‘아까운 내 500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면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내가 하는 제안이 뭐가 좋고, 이익이 있고, 장점이 있다고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걱정하는 부분이나, 상대방 입장에서 장애가 되는 부분을 사전에 파악하고 이를 제거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것도 중요하다. 주구장창 이익이나 장점을 이야기할 때, 상대방의 머릿속에는 ‘그런데, 00일이 발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자리할 수 있다. 그 순간, 앞에서 내가 이야기 한 장점과 이익은 한 순간에 허공에 흩어질 뿐, 상대방의 머릿속에 자리하지 못한다. 이익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상대방의 손실을 제거하는 전략이 주효한 이유이다. 철저하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느낄 불안함과 손실을 염두해 두고 설득에 임해야 한다.


“네가 그 게임을 사서 스트레스도 풀고, 추가적으로 에너지를 얻어서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중요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네가 게임을 샀을 때 와이프가 느낄 불안감이나, 와이프가 손실이라고 느낄 것들을 생각하고, 그걸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해봐. 아마 와이프가 조금은 더 수긍할지도 몰라”

“그래?그렇단 말이지....근데 우리 와이프가 뭘 걱정할까?”

“아마 하루 종일 게임만 한다거나, 아이가 보는 데서 게임을 하거나, 뭐 그런 걸 걱정하지 않을까?”

“그럼 하루 1시간 이하로 한다. 아이가 있을 때는 게임을 하지 않고, 밤에만 한다. 뭐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


자신감을 얻은 친구는 곧바로 와이프에게 전화를 해서 설득을 했고, 각서를 쓰는 조건으로 스타크래프트 구매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친구와의 만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튜브의 세계로 빠져본다. 예전에 코미디 빅리그에서 방영했던 ‘사망토론’을 몰아본다. 사망 토론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주제로, 남자 개그맨 두 명이서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주제가 이런 식이다.


"집에 귀신이 사는데 전지현 귀신이라면 그냥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군대에서 100일 휴가를 나오는데, 정문 앞에서 국민 여동생 수지가 기다리고 있다가 여행을 가자고 하면 수지랑 여행을 가야 하나, 고향에서 기다리는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나"


주제가 공개되면 방청객으로 앉아있는 남자들이 빵빵 터지기 시작한다. 꽤 공감(?)되고, 갈등이 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들의 반응은 왠지 그저 그런 것 같다. 이때 사회자가 한 마디 덧붙인다.


“여자분들이라면 집에 사는 귀신이 정우성 귀신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여자분들이라면 지방 파견 근무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데, 조인성이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토론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는 힘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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