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설득하는 언어
어느 날, 친구의 후배와 함께 자리를 한 적이 있다. 친구의 후배는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조심스럽게 강사로써의 삶을 고민하고 있는 와중에, 친구와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오늘 만남이 성사되었다. 친구 후배의 고민 얘기가 끝나고, 친구의 조언이 이어진다.
“잘 생각했다. 강사로 일하는 거 꽤 괜찮아. 수입도 훨씬 나을 걸? 나 지난달에 2천 찍었잖아. 연봉으로 따져도 1억이 넘을 걸? 게다가 아침에 출근 안 해도 되지. 시간 자유롭게 쓰지. 잔소리하는 상사 없지. 이런 직업이 어디 있냐? 빨리 준비해서 나와”
그렇게 1시간 가량의 고민 상담과 조언이 끝나고 친구 후배가 약속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멀어지는 친구 후배의 뒷모습을 보며, 친구는 뭔가 큰 일이라도 한 듯이 의기양양해 보인다. 그런 친구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본다.
“야. 니 후배 인생이 걸린 이야기인데, 그렇게 장밋빛 미래만 그려주면 어떻게 하냐? 객관적으로 균형 있게 이야기를 해줘야, 니 후배가 정확하게 판단을 하지.
“나는 진짜 강사라는 직업이 너무 좋은데?”
“그래 알아. 근데 진짜 좋은 점만 있냐는 거지. 나는 아니던데?”
“그렇지 따지고 보면, 안 좋은 점도 있기는 하지.”
“나는 늘 불안해. 직장 다닐 때는 꼬박꼬박 월급이 나왔는데, 지금은 매달 매달이 전쟁이고 불안하다. 게다가 매일 새로운 사람 앞에 서는 게 좀 스트레스받는 일이냐? 잔소리하는 상사가 없다고? 나는 그 상사보다 고객들의 요구사항이 더 겁나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던데?”
간혹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이미 경험해 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판단을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대부분 좋은 면만 이야기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미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동조를 구하거나,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거 써보니까 좋아. 효과 있어’
‘우리 동네 살기 좋지. 이사와’
'이 커피숍 진짜 끝내주네. 너도 한번 가봐'
특히 그 상황이 내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경우, 이런 경향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의 단점을 이야기하면 현재의 내 삶을 부정하게 되어서 그러는 것일까? 대부분 좋은 점 위주로 이야기한다. 어쩌면 친구도 그런 의미에서 현재 자신이 가진 ‘강사’로라는 직업에 대해서,좋은 점만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상담을 하거나 조언을 구하는 상황에서는 정보의 비대칭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상대방에 비해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나의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정보의 균형 감각을 잃고 어떤 것의 좋은 점, 장점만 이야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너무 좋은 점만 이야기하게 되면, 상대방에게는 편향된 정보가 유입되게 되고 잘못된 판단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판단에 대해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할 경우, 상대방의 마음에 배신감이 들고 그 원망이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또는 너무 좋은 점만 이야기하면 ‘진짜 다 좋아?’, ‘안 좋은 점은 없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말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질 수 있다. 물론 단점을 섞어서 균형 있게 말하는 방식이 당장의 설득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마음속에 신뢰는 남길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신뢰가 설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점과 장점을 균형 있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에게 내 말이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주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데, 이때 좀 더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그 순서도 중요하다. 단점 그리고 장점 순서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먼저 간단한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만난 지 1년쯤 되는 남녀 이야기인데, 분위 좋은 레스토랑에서 남자가 청혼을 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남: 수경 씨, 저랑 결혼해 주세요.
여: 아직 결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남: 그럼 제 얘기를 듣고 결정해 주세요.
여: 일단 들어나 볼게요.
남: 저 사실 올해 50살이에요... 게다가 제 머리도 가발이에요.
여: 뭐라고요? 그게 사실이에요?
남: 사실..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저에게는 중학생 아들도 하나 있어요.
여: 막장이 따로 없군요. 당장 헤어져요.
남: 사실대로 말하지 못해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어요. 사실 저는 직장인이 아니에요. 00구에 상가 빌딩이 하나 있는데, 그거 관리하면서 살고 있어요.
여: 그런가요?
남: 네. 강원도에 땅도 좀 있는데… 팔면 평생 여행 다니면서 살 수 있을 거예요.
여: 음… 왜 처음부터 사실대로 이야기 안 했어요.
남: 좀 더 알아간 후에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말하려고 했어요.
물론 다소 과장된 상황이기는 하지만, 남자의 말하는 방식에만 주목해 주길 바란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느낌적인 느낌일까? 수많은 단점이 있지만, 그를 상쇄하고도 남을 이런 장점이 있다는 논리로 접근하는 방식이 왠지 모르게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제 반대의 상황으로 가본다.
(중략)
남: 저 사실 00구에 빌딩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예요.
여: 와 진짜요? 대단하네요.
남: 사실 강원도에 땅도 좀 있어서 처분하면 여행만 다니면서 살 수 있어요.
여: (웃음) 날 언제 잡을까요?
남: 근데 사실 제 나이가 올해 50살 입니다. 머리도 제 머리가 아니라 가발이에요. 이해하실 수 있죠?
여: 그런가요? 음….
남: 마지막으로, 제가 사실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큰 방해는 안될 거예요.
여: 지금 미친 거 아니에요? 돈이 많으면 뭘 해요? 없었던 걸로 해요.
말의 내용에 변화가 없다. 단지 말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후자의 경우, 이런 장점이 있는데, 이런 단점도 있다는 순서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처음의 상황과는 다르게, 왠지 기분 나쁘게 들리고 점점 부정적인 생각이 자리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이지는 걸까? 크게 3가지 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최신 효과이다. 사람은 어떤 정보들이 순차적으로 제시될 때 가장 마지막에 들은 정보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A라는 사람 채용해봐. 일 하나는 잘해. 그런데 좀 게을러’
‘A라는 사람 채용해봐. 좀 게으르기는 한데, 일 하나는 잘해’
같은 내용이지만 후자의 내용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면, 최신 효과가 발동했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두 번째는 기대치 배반 효과이다. 사람의 심리가 계속 좋은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계속해서 좋은 것을 기대하게 된다. 기대치는 계속해서 높아진다. 이때 부정적인 점을 듣게 되면, 그 상실감은 배가 되어 느껴진다. 반대로 기대치를 땅에 떨어뜨려 놓고, 그와 상반되는 장점을 이야기하는 순간 그 효과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뢰 효과이다. 상대방에게 먼저 부정적인 측면을 언급하면 객관적이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게 되고, 다음에 이야기하는 장점이 더 사실처럼 들리게 된다. 사전에 상대방이 가지고 있을 만한 리스크나 불안함을 언급해 줌으로써 신뢰를 쌓게 되고, 이 신뢰는 다음 이야기에 대한 더 확고한 믿음으로 자리하게 된다.
친구 후배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온다.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 되어서 이사를 고민하고 있는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야 너네 동네 살기 어떠냐?”
“일단 살만 해. 이사 와도 돼. 물론 상업 시설이 좀 멀고, 대중교통이 불편한 것은 있어. 하지만 주거지역으로 조용하고,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편리해. 물론 주변 아파트에 비해 시세가 싸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검토해 봐”
친구의 이야기가 묘하게 설득력 있게 들리면서,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되는 것은 친구의 말하기 방식 때문은 아니었을까? 설득을 원한다면 객관적으로 장단을 맞춰서 이야기하되, 단점을 먼저 그리고 장점의 순서로 내말을 단.장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