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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때문에’ 때문에 안 되는 거야

상대방을 배려하는 언어

by 갓기획

친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전화를 했다. 근데 주변이 꽤 소란해서 통화가 불가능한 듯 보인다.


“야 나 급하게 물어볼 것 있는데, 통화 안 되냐?”

“아니 돼. 근데 네가 좀 이해해라. 우리 딸내미가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지금 와이프가 집안 다 뒤집어엎고 난리 났어. 딸내미 때문에 지금 집이 장난이 아니다. 시끄러워도 이해해.”


아니나 다를까 뭐가 부서지고, 옮겨지고 난리가 난리도 아닌 것 같다. 내가 하는 말이 친구에게 들릴까 싶다. 친구가 잘 들리지 않는지 전화기 건너로 짜증 내는 소리를 낸다.


“여보 때문에 잘 안 들리잖아. 잠깐 조용히 해봐”

“야. 나중에 다시 통화하면 되지. 니 와이프한테 짜증이야. 와이프 때문이라니, 타이밍 잘못 잡은 내 탓이지”


짧은 통화였지만, 친구는 ‘때문에’라는 말을 참 많이 쓰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평소에도 습관처럼 ‘~때문에’라는 말을 달고 사는 놈이었다. 같이 차를 타고 가다가도, 자기가 길을 잘못 들어놓고,

“네가 말 시켜서, 너 때문에 길을 잘못 들었네.”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내가 선택한 메뉴가 맛이라도 없으면,

“너 때문에 오늘 맛없는 것 먹었네. 돈 아깝네”


같이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도,

“너 때문에 시끄러워서 일을 못하겠네. 집중이 안되잖아”


물론 ‘때문에 라는 말 자체에 부정적인 뜻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 단어 그 자체는 ‘어떤 일의 원인이나 이유’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단어를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묘하게 부정적인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그 안에 누군가나 상황을 탓하기 위한 의미가 숨겨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때문에'라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장난스럽게 쓰는 말이기도 했다. '너 때문에 분위기 다 망쳤네, 너 때문에 될 것도 안되네.' 등으로 누군가를 핀잔주거나 갈구기 위해서 쓰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을 상대방의 마음까지는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반면에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는 사람이 있다. '네 덕분에 시간을 줄였네', '김대리 분에 해결이 수월했네', '엄마가 추천해 준 덕분에 맛있게 먹었네.' 등 으로 이야기한다. 감사와 긍정의 화법이다. 남 탓, 상황 탓하기 전에 감사할 일을 찾는다. 이처럼 사소한 말투 하나이지만, ‘때문에’ 대신 ‘덕분에’를 쓰면 몇 가지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3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봤다.


첫째, 부정적인 감정을 누르고 긍정적인 면을 찾게 된다.

'덕분에'라고 말하는 순간 불평불만이 가득한 순간에서도, 희망을 찾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는 화법이다. 관련해서 성공한 기업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파나소닉 회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하나님은 저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 가난입니다. 집이 몹시 가난했던 덕분에 어릴 적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같은 고생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허약한 체질입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몸이 몹시 약했던 덕분에 항상 운동에 힘써 왔기 때문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무식입니다. 나는 초등학교도 못 다닌 덕분에 모든 사람을 다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누구에게 물어가며 배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 허약한 체질, 무식 때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가난, 허약한 체질, 무식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이 성공의 반열에 오르고 나서 되돌아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사 그런 사고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라는 말이 생각을 바꾸고 인생을 바꾼 것은 아니었을까?


둘째,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표현된다.


비즈니스 법칙 중에 ‘웨이터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웨이터의 법칙’이란 최종 비즈니스 거래를 하기 전에 거래처의 사장을 테스트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식당에서 웨이터가 일부러 거래처 사장에게 와인을 쏟는다거나, 음식을 엎는다거나 하는 식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때 거래처 사장의 반응을 통해 계약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 옷이 얼마짜리인 줄 알아?, 이 식당은 도대체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라고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다.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으며, 상대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사람과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는 것이 웨이터의 법칙의 핵심 원칙이다. 반대로,


“어차피 빨려고 했는데, 덕분에 하루 빠르게 세탁할 수 잌있을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더웠는데, 덕분에 시원합니다”


라고 센스 있게 말하며, 그 웨이터가 무안하지 않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는 흔쾌히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셋째, 상황을 바꾸고 센스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몇 년 전인가 신혼부부의 집들이에서 있었던 일이다. 으레적인 집들이 순서에 따라 집안을 둘러보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 어느 직원이 이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집이 작네.”

순간 집주인의 동공이 흔들린다. 얘는 농담을 한 걸까? 센스가 없는 걸까? 이때 타이밍 좋게 부장님께서 이렇게 받아치신다.


“집이 아담한 덕분에, 신혼부부가 붙어 살기 딱 좋겠네.”


덕분에 라는 말 한마디로 순간 얼어붙었던 분위기가 바뀌고, 그 부장님은 말을 참 센스 있게 한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친구와의 통화를 끝내면서, 핸드폰 잃어버린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핸드폰을 찾지 못하더라도 딸이나 와이프한테 이렇게 말해보라고 조언했다.


“딸아. 네가 핸드폰을 잃어버린 덕분에 오랜 만에 방청소도 하고 정리도 했네? 얼마나 깔끔해.”


친구의 마음도 한결 편해지고, 핸드폰을 잃어버린 딸도 덜 민망하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다시 가던 길을 재촉했다. 마침 라디오에서 오래된 트로트 가요 ‘도로남’이라는 노래가 나온다. ‘도루묵’도 아니고 ‘도로남’이라라는 제목이 재미 있는데, 이 노래 가사는 좀 더 재미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I’와 ‘ㅏ’가 만들어 내는 절묘한 차이를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일종의 말장난 일수도 있다. 하지만 말이라는 게 어쩌면 다 장난 인지도 모른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한 긋 차이에서 장난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같은 생각이나 의도라고 할 지라도 ‘아’라고 말하는 경우랑 ‘어’라고 말하는 경우랑 다른 의미가 전달된다.


말은 생각을 비추는 거울이다. 단순히 말투이고 입에 밴 습관일 수도 있지만, 아주 작은 단어 차이 하나가 내 인상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생을 결정할 수 있다. 말투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투에 담긴 생각 때문이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됐어'가 아니라, '네 덕분에 이렇게 됐어'를 더 많이 쓰는 사람이 되자. '남'이 '님'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가 펼쳐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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